일본인이 만들어낸 괴수 '고질라'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1954년 소위 '특수촬영물' 영화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이래, 일련의 후속 영화와 TV 드라마 등을 통해 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이 이야기를 변형하거나 재해석한 결과물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새로 등장하고 있다. 이번에는 넷플릭스가 일본산 애니메이션을 내놓았다.

지난해 11월 17일 일본에서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작 영화 <고질라 괴수행성>(원제 Godzilla: monster Planet) 첫 번째 이야기는 지구에서 11.9광년 떨어진 공간에서 항행하고 있는 우주선 '아라트룸'에서 시작된다. 이 우주선은 인류 생존의 마지막 보루다. 이들은 22년 전 지구에서 쫓겨났다. 1999년 여름 갑자기 출현한 괴수 고질라가 지구를 깡그리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땅한 정착지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비축했던 식량과 물자까지 바닥을 보이게 되면서 생존자들은 지구로 귀환을 결정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이렇게 다시 돌아온 이들이 몰라보게 달라진 지구 환경을 목도하고 고질라를 대면하고 고향을 되찾기 위해 고질라와 사투를 벌이는 일련의 줄거리를 전개한다. 그 과정에서 고질라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 아라트룸에서 외계종족이 같이 살게 된 사연, 새로운 생존 전략 채택을 둘러싼 아라트룸 구성원들의 반목 양상 등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에 흥미를 더한다.

세심한 전투묘사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전망까지

 신작 애니메이션 ‘고질라’

ⓒ Polygon Pictures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고질라와 전투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아라트룸 군인들이 전술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마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전투처럼, 정찰, 분석, 덫 설치, 적 도발 및 유인, 덫 발동, 적 무력화, 육탄전 등 군사작전 제과정이 논리적으로 구현됐다. 덕분에 고질라와의 전투 시퀀스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박진감이 넘친다.

인간들과 한 배를 탄 외계종족의 사연도 흥미로운 요소다. '엑시프'와 '빌루살루'라는 두 종족이 등장한다. 양쪽 모두 고질라가 처음 나타났을 때 인류 앞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 전자는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힘을 빌려 위기를 극복하자고 인류를 설득했고, 후자는 '메카-고질라'라는 거대 괴수 로봇을 만들어 고질라를 물리치겠다고 인류에게 약속했다. 그 전쟁은 결국 고질라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인류는 이들의 선진 과학기술을 흡수해 후일을 기약할 수 있었다.

특히 엑시프가 신으로 추종하는 '게마트론'이라는 존재에 눈길이 간다. 게마트론은 일종의 인공지능이고 엑시프 종족은 휴머노이드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런 설정은 요즘 한창 논쟁 중인, '인공지능이 인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 작품의 전망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고질라와 결전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이를 피해 달에 정착할 것인지를 두고 주인공이 상관과 대립하는 대목이었다. 주인공의 명분은 인류의 자존심이었는데, 그는 전쟁에서 지고 몰살을 당하더라도 목숨 걸고 싸운다면 결국 이기는 셈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반면 상관은 승산 없는 싸움은 피해야 한다면서, 달에 근거지를 만들고 지구의 자원을 활용해 후일을 기약하자는 입장이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다움이란?

 넷플릭스 신작 애니메이션 ‘고질라’

ⓒ Toho Company


문제는 전면전을 벌이자는 주인공 주장이 그야말로 실낱같은 승산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위험한 도박이었던 셈인데, 물론 이 작품은 그런 주인공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지만 전면전에 돌입해 몰살 당할지도 모르는 600명이라는 숫자가 당시 아라트룸 인구의 15%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결론에 선뜻 동조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런 입장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인공의 질문과 이어진다. 그는 인류의 자부심을 앗아간 고질라에게 복수하고 지구를 수복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 상태로 연명하는 건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필자는 이것이 상당히 논쟁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고질라 이야기에 열광할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으로 강한 힘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에서 그런 현상이 비롯됐다고 본다. 즉 이는 그런 존재를 어떻게 마주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이런 문제제기가 다시 인간 문명에 대한 경고 그리고 강한 힘에 매혹되면서도 두려워하는 인간 의식에 대한 고찰 등 여러 가지 해석을 양산해내면서 관심이 증폭돼 왔다는 것이다.

물론 고질라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부작으로 기획된 이 작품 역시 나머지 두 편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고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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