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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혐의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재판정에 함께 출석하는 '비선실세' 최순실씨.
▲ 법정 출석하는 박근혜-최순실 뇌물 혐의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재판정에 함께 출석하는 '비선실세' 최순실씨.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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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일,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 판결을 내리면서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국정농단 주범을 '비선실세' 최순실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대통령과 최씨의 요구를 이 부회장이 거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에 가담했던 뇌물공여자에서 피해자로 탈바꿈했지만,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삼성으로부터 수십억 원을 갈취한 '깡패'가 됐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어떻게 될까. '정유라 이화여대 입학·학사 비리 사건', '비선 진료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국정농단 사건들은 이미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오는 3월에야 국정농단 재판 1심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최씨는 오는 13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국정농단의 시작과 끝인 피고인 두 명을 맡고 있는 국정농단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항소심 결과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유무죄가 판가름 날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지난해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직권남용·뇌물수수 혐의 등을 심리해왔다. 재판부는 중대한 사건인 만큼, 1월에 잡았던 최씨의 선고를 2월로 미루기도 했다. 이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결과를 지켜본 뒤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은 한명은 뇌물을 건네고 다른 한명은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를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3자 뇌물죄로 걸려 있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미르-K스포츠 재단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뇌물죄는 범죄 대상이 필요한 '대향범(對向犯)'에 해당하기 때문에 뇌물수수로 걸려 있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또한 이 부분에서 무죄가 날 가능성이 있다. 검찰 관계자는 "뇌물공여자가 무죄여도 뇌물수수자에게 유죄를 내린 대법원 판례가 있긴 하지만,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은 대향범 관계다. 제3자 뇌물죄는 무죄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에서 뇌물공여 금액이 줄어든 부분도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겐 유리할 수 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승마지원과 국회 위증 혐의만을 일부 유죄로 인정하면서 그마저도 혐의를 축소해 1심에서 89억 원이었던 뇌물 액수가 36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 부회장으로부터 433억 원을 약속받거나 건네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겐 유리한 부분이다.

뇌물죄 '동전의 양면'에서 한 면이 날아갔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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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겐 중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뇌물수수만 보더라도 금액이 1억 원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또 항소심 재판부가 언급한 대로 뇌물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겁박'이 있었다면 형이 더 늘어나는 가중처벌 요소다.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를 더 끈끈하게 본 점도 둘에겐 불리한 정황이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는 뇌물을 수령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뇌물 범행의 핵심적 경과를 조종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여태껏 최씨의 뇌물수수를 몰랐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근혜 재판부가 제3자 뇌물죄를 무죄로 판단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을 아예 무시할 순 없겠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재판부는 독립된 하나의 기관이기 때문에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이 부회장의 개별 현안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는 사실을 인정한 다른 판결도 있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재영)는 지난해 11월 14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항소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이 이유 없이 삼성 합병을 챙겼을 리 없다는 합리적 의심과 이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판단조차 하지 않은 관계자 증언 등 증거들을 모두 살펴본다면 부정한 청탁이 인정돼 제3자 뇌물죄를 유죄로 판단할 수 있다. 

앞서 박근혜 재판부는 다른 판결에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증거인 '안종범 수첩'을 바탕으로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6일, 영재센터에 후원금을 내게 한 혐의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과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에게 각각 징역 3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에 적힌 '4. 동계스포츠 선수 양성 방안, 5. 메달리스트-스케이트, 스키 영재발굴 훈련, 삼성 지원 스케이트 5억 원 지원', '빙상, 승마' 등 수첩 내용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영재센터 지원 요구를 했다고 봤다. 반면 이 부회장의 항소심에선 안종범 수첩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형량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재판부마저도 "뇌물을 준 사람보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에 대한 비난이 상대적으로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태그:#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항소심, #정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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