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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여고 국어교사이자 '순천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순천평통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근홍 선생님을 만났다. 교직생활 37년째인 그는 올해 2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올해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소회를 이야기하는 신근홍 선생님
 올해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소회를 이야기하는 신근홍 선생님
ⓒ 신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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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직생활에서 월급도 못 받았지"

조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1년 순천상고(현, 순천효산고) 국어교사로 첫 교직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국어가 아닌 문서사무를 가르치라는 지시에 한 달 여 동안 전공이 아닌 문서사무를 홀로 공부해야 했다.

같은 학교 후배 교사는 주야간 52시간의 살인적인 수업을 하다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자, 반공법 위반으로 경찰에 넘기겠다고 했다. 후배 교사의 수업 내용을 학생들에게 메모하게 해서 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결국 반공법 위반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학교에 3년간 더 있어야 했다.

"그런 험한 꼴도 지켜보고 학교에 더 있기가 싫드라고. 결국 한 달 만에 사표를 썼지. 월급을 달라고 했더니 국어도 가르치지 않았다며, 줄 수 없으니 바로 고발해라고 하드라고. 지금 같으면 싸웠겠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못하고 월급도 못 받고 그냥 나왔어."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전라도 호적으로 취직도 어려웠고, 빨갱이 소리도 들었지"

두 번째 교직생활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송산종합고등학교(현, 송산고등학교)였다. 그가 대학 2학년 때 부모님이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어 집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찾은 것이다. 그 당시에는 국어 교사가 부족했던 터라 일간지에 교사초빙 광고가 나왔다. 송산고등학교에서 8년을 근무하다가 다시 전라도로 내려오게 되었다.

"학교에 가기 전에 서울에 있는 00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어.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전라도 호적이라 안된다는 거여. 취직하려면 경상도나 서울 호적이어야 된다는 거지. 1987년 대통령선거때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빨갱이 소리도 많이 들었지. 경기도에 있을 때 집도 사고 경제적으로 괜찮았지. 근데 지역차별이 너무 심한거여. 결국 다 정리하고 내려오기로 결심한거지."

"전교조,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운명 같았어"

고향땅으로 다시 내려온 그는 교사초빙 광고를 본 친구의 소개로 1988년 순천 효천고에 근무하게 된다. 1987년 6월 항쟁과 7.8.9노동자대투쟁 이후 우리 사회를 휩쓴 민주화의 열기는 교육현장을 달구기 시작했다. 반민주적인 교육제도와 학생과 교사의 삶을 파괴하는 교육현실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일어선 교육민주화 외침은,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범으로 물결치게 된다.

"당시 사립학교 중에서는 효천고가 가장 열심이었던 거 같아. 그 당시 전교조 순천&승주지회였는데 15명 해직자 중에 효천고가 6명이었으니깐. 30여명의 교사가 전교조에 가입했고 진짜 열심이었지. 내게 전교조 출범은 운명 같은 거랄까, 물론 고난이 예상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아이도 어리고, 집사람 직장도 없었던 때였지만 생존권의 불안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주위의 시선이었어. 아내와 처가의 반대도 심했고 집안 모든 식구들이 반대했지. 그것을 견디기가 가장 어려웠던 거 같아. 해직된지 얼마 안됐을 때 집사람이 들어와서 울드라고. 주위에서 빨갱이라고 했다는 거야. 그런게 많이 힘들었지."

전교조 가입을 이유로 해직됐던 1,600여명의 교사 중 1,300여명이 1994년 복직하게 되고, 서른다섯에 해직된 그도 마흔이 되어 고흥여중으로 복직하게 된다.

"가르칠만 하니까 그만두게 되네"

그는 요즘 '내가 지금까지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쳤나?' 하는 물음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제 조금 가르칠만 하니까, 학생들의 심리에 대해 알 만 하니까 그만두게 되네. 가르칠만 하다는 것은 인생에 대해 이제야 알 만 하다는 것이고, 이제야 제대로 가르칠만 하다는 건데..."

교직을 그만둔다는 느낌 보다는 인생 자체를 정리한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는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목숨걸고 가르쳤다고 표현한다.

성적 여하에 상관없이 개념있고 정의로운 학생들을 육성하려고 노력을 했지. 그러다보니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해야 했고, 그것이 실정법에 위태로운 내용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매 수업 한시간 한시간이 쉽지 않았지."

교직생활에서 자부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입시지옥인 현실에서 공부에 소질이 없는 학생은 다른 빛나는 것이 있다고 믿으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학생들에게 많이 이야기했다.

순천 연향동 국민은행 앞에서 선전 활동을 하고 있는 신근홍 선생님
 순천 연향동 국민은행 앞에서 선전 활동을 하고 있는 신근홍 선생님
ⓒ 순천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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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된 상태로는 민족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2012년 순천평통사 출범부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정년 퇴임하고 나서는 좀더 마음을 내어 활동할 예정이다. 그에게 통일운동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의 근본모순은 분단에서 시작되고, 분단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어. 외세 의존적 정부, 성장과 수출 위주의 정책, 노동자농민의 생존권 문제 등 모두 분단 모순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거지.

남한은 하나의 섬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대륙이라는 생각, 분단된 상태로는 민족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거지. 통일운동이랄 것은 없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이 평통사인 것 같아. 올해부터는 여유가 있으니까 평통사 운영위원으로 좀 더 활동을 해볼까 생각중이야."

그는 순천광장신문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다. 광장신문 기고자로써 글을 쓰는 것도 평통사 활동의 하나라고 본다.

"내가 글을 쓰니깐 통일 관련 글을 의도적으로 기고하고 있지. 그 활동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 사람마다 자기 소질이 있고 자기 길이 있는 거 같아. 나는 책보고 글쓰는게 나에게 맞는 길이니까 통일 부분에 연결하는 거지."

교사 신근홍. 이제 37년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위해 기지개를 펴고 있다. 그가 바라는 통일된 세상을 향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순천언론협동조합이 만든 '순천광장신문'에도 중복게재합니다



태그:#순천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통일, #사드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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