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연패 당했던 현대건설이 흥국생명을 제물로 무술년 첫 승리를 따냈다. 이도희 감독이 이끄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11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8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흥국생명 핑크 스파이더스와의 4라운드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1-25, 25-17, 25-20, 28-26)로 역전승을 거뒀다. '좌우쌍포' 엘리자베스 캠벨과 황연주가 54득점을 합작한 가운데 4개의 블로킹을 기록한 '거요미' 양효진도 13득점으로 힘을 보탰다.

반면에 외국인 선수 크리스티나 킥카와 이재영이 50득점을 합작한 흥국생명은 공격력 강화를 위해 투입된 이한비가 불안한 서브리시브와 함께 11.11%의 공격 성공률로 4득점에 그치며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다. 흥국생명은 크리스티나 합류 후 8경기에서 3승 5패에 그치며 박미희 감독이 기대했던 '대반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흥국생명의 부진이 계속될수록 '토종 에이스' 이재영의 힘은 점점 빠질 수밖에 없다.

정규리그 우승과 MVP 영광 후 국가대표 차출 문제로 마음고생

이재영에게 2017년은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한 한해였다. 201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해 프로에서 3번째 시즌을 맞은 이재영은 한층 무르익은 기량을 과시하며 흥국생명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실제로 이재영이 합류하기 전 최하위에 머물렀던 흥국생명은 이재영 입단 후 4위, 3위로 성적이 꾸준히 상승하다가 지난 시즌에는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타비 러브와 함께 쌍포를 구성한 이재영은 득점 6위(479점,국내선수 1위), 리시브 1위(세트당 3.86개)에 오르며 공수에 걸쳐 흥국생명의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비록 챔프전에서는 메디슨 리쉘의 활약으로 IBK기업은행 알토스에게 패했지만, 이재영이 김연경(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이후 V리그 여자부를 이끌 차세대 스타로 떠오른 것만은 분명했다.

이재영은 시즌이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서도 정규리그 MVP를 비롯해 레프트 부문 BEST7에 선정되며 한 시즌을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후에도 각 팀의 스타 선수들에게는 국제대회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2017년은 매년 열리는 월드그랑프리를 비롯해 아시아선수권, 2018 세계선수권대회 예선 일정까지 빠듯하게 짜여 있어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체력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선명여고 시절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꾸준히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이재영은 2017년 어깨와 허리 부상 때문에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은 투혼을 발휘하며 월드그랑프리 2그룹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양효진이 허리 부상으로 경기 도중 쓰러지는 등 체력 저하에 시달리며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이에 주장 김연경은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은 이재영의 실명을 공개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물론 김연경의 발언이 이재영 개인을 저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졸지에 이재영은 '아픈 곳도 없으면서 대표팀 합류를 거부하는 나쁜 선수'가 되고 말았다. 이재영은 세계선수권 대회 예선에서 대표팀에 합류해 완전하지 않은 몸 상태로도 본선티켓을 따내는 데 힘을 보탰지만 이재영에 대한 배구 팬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흥국생명의 부진한 성적 속 '혹사당하는' 에이스 이재영

 2016-2017 시즌 V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이재영은 무척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2016-2017 시즌 V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이재영은 무척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 한국배구연맹


2017-2018 시즌이 개막했을 때도 여전히 이재영의 컨디션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 이재영은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이재영은 개막전을 시작으로 흥국생명이 치른 18경기 동안 한 경기도 쉬지 못하고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다. 물론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공격과 수비 모두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장 높다.

문제는 이재영의 투혼이 흥국생명의 성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흥국생명은 11월 12일 GS칼텍스 KIXX전에서 고관절 부상을 당한 외국인 선수 테일러 심슨이 중도 퇴출되면서 외국인 선수 없이 3경기를 치렀고 기업은행으로 이적한 센터 김수지의 빈 자리도 생각보다 컸다. 흥국생명에게 악재가 발생할수록 에이스 이재영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재영은 이번 시즌 925회의 공격을 시도하며 국내 선수 중에서 독보적으로 많은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공격 시도 부문(?) 2위 박정아(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공격시도가 744회에 불과(?)하니 이재영이 얼마나 무리하고 있는지는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스파이크를 시도할 때는 강연타 여부에 관계없이 언제나 힘차게 도약해야 하기 때문에 선수의 몸에는 그만큼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이재영은 함부로(?) 쉴 수도 없다.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이재영은 함부로(?) 쉴 수도 없다. ⓒ 한국배구연맹


11일 현대건설전에서도 이재영은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팀에서 가장 많은 60번의 공격을 시도했고 수비에서도 55번의 리시브를 받아냈다. 이재영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리시브 합계가 38회였으니 현대건설 선수들은 노골적으로 이재영을 향해 목적타 서브를 날린 셈이다. 그렇게 코트를 휘젓고 다녔음에도 승리는커녕 승점 1점도 챙기지 못했으니 이재영으로서는 더욱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흥국생명에는 이재영 외에도 신연경, 이한비, 공윤희 같은 레프트 공격수 자원이 있다. 하지만 박미희 감독은 이재영을 레프트 한 자리에 고정으로 박아두고 신연경과 이한비를 번갈아 가며 투입하고 있다. 이재영을 벤치로 불러들일 경우 공수에서 입을 치명적인 손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 경기 투혼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면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성적에 흥국생명의 에이스이자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 이재영은 점점 지쳐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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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도드람 2017-2018 V리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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