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프린스' 차준환(17·휘문고)은 경기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연기로 관중들의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이번에 그가 쓴 드라마는 이전에 보여준 다른 드라마였다.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 연출에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가 열광의 도가니가 됐고 환호했다.

차준환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8' 남자 1그룹 경기에서 252.65점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선발전에서 차준환은 극적인 뒤집기로 선배 이준형(22·단국대)과 격차를 뒤집고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안정적인 전략, 진짜 차준환을 보여줬다

차준환 간절하게 7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 선발전 'KB금융 코리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8'. 남자부 싱글 1그룹에 출전한 차준환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차준환 간절하게 지난 7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 선발전 'KB금융 코리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8'. 남자부 싱글 1그룹에 출전한 차준환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차준환의 장점은 깔끔한 점프와 선이 고운 팔 동작과 표현력이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은 차준환의 이 점이 가장 잘 보였던 시즌이었다. 두 차례 주니어 그랑프리를 모두 우승으로 장식했고 최연소로 4회전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성공했다. 또한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한국 남자피겨 선수로는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했고,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개인 최고기록인 242.45점으로 5위에 올랐다.

그런데 올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해 이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기술에서 실수가 계속 나오는 것이 치명적인 원인이었다. 차준환은 당초 올 시즌을 앞두고 기존에 뛰던 쿼드러플 살코 점프 이외에 쿼드러플 토루프 점프를 추가했다. 그리고 지난 1차 선발전 때 이 점프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런데 고관절 등 여러 부위에 부상이 겹치면서 회전 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으면서 회전 부족 판정을 받거나 넘어지는 등의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차준환은 1,2차 선발전에서 모두 4회전 점프에서 실수가 나왔고, 선배 이준형(22·단국대)에 27점 가량 뒤진 채 마지막 선발전은 맞이했다.

차준환은 결국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모험보다는 '안정'이었다. 차준환은 그동안 뛰었던 3차례 4회전 점프를 프리스케이팅에서 한 차례만 시도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또한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을 지난 시즌에 많은 호평을 받은 '일 포스티노'로 변경했다.

쇼트프로그램부터 곧바로 결과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3회전 점프로만 구성했던 차준환은 클린연기로 이준형과 격차를 20점 차이로 좁혔다. 그리고 프리스케이팅에서 더는 완벽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며 결국 마지막 대반전을 이뤄냈다.

브라이언 오서 "차준환은 김연아만큼 열심히 해"

 브라이언 오서코치의 인터뷰 모습

브라이언 오서코치의 인터뷰 모습 ⓒ 박영진


그의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는 '피겨여왕' 김연아(27)에 이어 한국 선수와 두 번째 올림픽에 참가하게 됐다. 오서는 현재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뉴 유즈루(일본)와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던 하비에르 페르난데즈(스페인) 등 세계적인 선수 등을 지도하고 있다. 오서는 차준환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서는 "차준환은 김연아만큼 정말 열심히 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선발전이 다른 나라들과 달리 7월에 시작했다. 당시에 차준환은 마지막 시즌을 시작할 우리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고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서가 차준환에게 그가 차준환에게 주문했던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닌 '집중력'이었다. 오서는 "차준환에게는 다른 주문보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믿으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오서는 평창에서 차준환이 톱12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며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압박이 있을 것이다. 연습이나 시합 때 몸이 무거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올림픽에서 10~12위까지 할 수 있다고 본다. 홈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에 편한 환경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그는 앞으로 차준환이 갈 길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선수라는 점도 강조했다. 오서는 "준환이는 이제 겨우 16살이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고 기술적으로 톱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착실히 준비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선배 몫까지!' 더 밝은 한국 피겨미래를 위해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단순히 개인의 영광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 나라의 한 분야를 대표하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따른다. 더욱이 선택받은 자만이 나갈 수 있는 올림픽은 더욱 그러하다.

차준환의 어깨가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배 이준형의 몫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준형은 지난해 7월 1차 선발전에서 1위에 올라 평창 올림픽 티켓이 걸린 마지막 대회였던 네벨혼 트로피에 출전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놀라운 선전을 펼쳐 5위에 올랐고 16년 만에 한국 남자피겨가 동계올림픽 무대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평창에 가기 위해 반드시 따야만 했던 올림픽에서 선배가 모든 부담감을 이겨내고 뜻을 이룬 것이다.

얄궂게도 차준환은 이준형, 김진서(22·한국체대) 등 선배들과 함께 마지막 선발전까지 치러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최종 승리는 당찬 후배였다. 차준환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경기 후 공식인터뷰에서 함께 경쟁했던 이준형 등에 대해 묻는 질문에 차준환은 이렇게 답했다.

응원 감사해요 7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 선발전 'KB금융 코리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8'. 남자부 싱글 1그룹에 출전한 차준환이 경기를 마치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응원 감사해요 지난 7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 선발전 'KB금융 코리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8'. 남자부 싱글 1그룹에 출전한 차준환이 경기를 마치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시즌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나도 그렇고 선배들도 그렇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준형 선수가 네벨혼에 가서 값진 티켓을 따왔다. 평창에 나서게 됐으니 최선을 다하겠다."

차준환은 이 말을 하면서 다른 질문에 비해 유독 뜸을 들이거나 생각을 많이 하며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기에 행복할 수 있지만, 결국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선배에게는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차준환은 기자들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고 눈가가 잠시 촉촉해지는 듯했다.

차준환의 첫 올림픽. 거기에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경쟁하고 기회를 만들어낸 선배의 몫도 있었다. 그렇기에 평창에서 펼쳐질 차준환의 첫 도전에 더 많은 팬들과 대중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척박한 환경과 10명 남짓한 인구에서 해낸 16년 만의 또 다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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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평창동계올림픽 차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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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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