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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1987>이 화제다.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한 대학생의 죽음과 이를 부당하게 여긴 사람들의 폭로, 군부의 탄압속에서 6월 민주 항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다. 특히 <1987>은 독재정권의 죄를 고발한 언론인들과 민주화를 위해 자신이 아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던 뜻있는 공무원들의 노력을 다루기도 했다.

다만 영화 <1987>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가 특별한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동시에 부당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정권과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그 모델들의 후일담은 그려지지 않는다. 실제 활동했던 인물들에 대해 궁금증이 들 만하다. 나아가 영화 속에서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다뤄지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
ⓒ 황호택, 블루 엘리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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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했던 동아일보의 기자 황호택씨가 1987년을 정리해서 낸 책이다.

사실을 보도하면 잡아가서 고문하는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싸웠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 <1987>을 보고 궁금증이 든 사람이라면 볼 만한 책이다.

책은 6월 항쟁 직전의 암울한 시대 상황부터 묘사한다. 당시는 제대로 된 기사를 쓰면 기자도 정부에서 잡아가는 시대였다. 안기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금기였고, 의문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있어도 조사할 방법이 없었다.

언론은 도청되었고 KBS와 MBC는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그런 현실에서 한 명의 대학생이 죽음을 맞는다. 경찰들은 이를 덮기 위해 공안부의 최환 검사를 찾아간다.

영화 속에서 배우 하정우가 맡아 초반부터 고문을 덮으려는 사람들과 화끈한 말싸움을 벌이는 최환 검사는 사실 충청북도 영동군 사람으로 말이 약간 느렸다고 한다. 그는 빨리 화장시켜달라고 급하게 서두르는 경찰관을 느린 어조로 응대해 부검 없는 화장을 막아냈다. 영화에서는 이후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지만 실제로는 검사로서 업무를 계속했다.

대검찰청 공안4과장인 이홍규 과장은 중앙일보 신상호 기자에게 대학생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슬쩍 흘린다. 기자가 사실 몰랐음에도 아는 척 맞장구를 친 다음 첫 기사를 터뜨리는 부분은 역사와 영화가 같다. 이홍규씨는 어린 학생이 죽었는데도 묻으려 해서 너무 화가 나서 사건을 제보했다.

이후 영화와 같이 경찰관 2인이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영등포교도소 안유 보안계장은 그들을 회유하려는 협잡과 고문에 대한 사실을 시국사범이던 이부영(동아일보 해직기자)에게 알렸다. 이부영은 이를 다시 한재동 교도관에게 알렸고, 한재동 교도관은 전병용 전 교도관을 거쳐 김정남씨에게 전달했다. 영화 속의 한병용 교도관(유해진)은 두 사람을 합쳐서 만든 셈이다.

"이부영 씨의 회고에 따르면 안 씨는 이 사건이 지닌 폭발력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안 씨는 "형 이러다 나라가 망하는 거 아뇨? 학생을 물고문해서 죽여 놓고 범인을 조작한다는 게 말이 돼요? 내가 이런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건가요"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고 한다." -197P

안유 보안계장은 구속도 각오했지만 다행히 구속되지 않고 서울지방교정청장을 거쳐 2003년 퇴직했다. 한재동 교도관은 스스로는 양심적 행동을 못해도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 이 일에 참여했고, 2004년까지 34년간 교도관 생활을 했다.

이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사실을 알린 공무원들이 있었기에, 언론사들이 내용을 받아 적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언론사들 차례였다. 중앙일보가 이홍규 과장의 정보를 받아서 첫 기사를 썼다. 하지만 첫 기사를 썼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다소 좁아졌다. 그 뒤를 이은 것이 바로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중앙일보가 낸 특종에 대해 조사를 이어갔다. 윤상삼 기자가 중앙대병원 오연상 의사를 취재해 고문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황열헌 기자는 벽제화장터에서 재를 뿌리는 임진강 샛강까지 동행한 뒤 시신 화장에 대한 기사를 썼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모아 '고문 추방 캠페인' 시리즈를 만들었다. 남시욱 편집국장은 신문이 나오고 압력전화를 피해 사우나탕으로 사라졌다. 이들은 영화에서 고창석씨가 연기한 것처럼 정권의 보도지침도 무시하기로 했다.

"1월 19일자 동아일보 지면은 전체 12면 중에서 6개 면을 박종철 사건 기사로 뒤덮다시피 했다. 이날 자 신문은 김성열 사장 표현대로 '지구 최후의 날'처럼 제작됐다. 각부 기자들이 주말에도 집에 들어가 쉬지 못하고 발로 뛰어 쓴 생생한 기사들을 포함해 고문 관계 기획기사들로 제1, 2, 3, 5, 10, 11면을 도배했다. 당국이 언제 강제적으로 보도를 전면 통제할지 모르니 기왕 보도하는 김에 많은 기사를 쏟아넣자는 계산에서였다." -145P

MBC 신경민 기자는 단신의 경우 한 문장을 넘기면 안 되고, 분량은 10~20초여야 한다는 관행을 깨고 박종철 기사를 40초 동안 냈다. MBC 보도에는 고문을 추정하는 표현이 없었고, KBS는 이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지만 전파는 전국에 퍼져 박종철이라는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대학생을 고문으로 죽였다는 사실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집회에 참여했고 정권은 수세에 몰렸다. 영화에서 문성근이 연기했던 장세동 안기부장도 나중에 결국 잘리는 신세가 되었고 관련자들은 구속되었다. 그리고 끝내는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민주화가 시작된다.

<1987>을 보고 감명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 책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 역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 다루지 못한 부분까지 실존 인물의 인터뷰를 통해 정리하고, 그들의 후일담까지 살펴볼 수 있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공직자들과 기자들의 모습이 직업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 - 30년 만에 진실 밝히는 딥스로트들

황호택 지음, 동아일보사(2017)


태그:#기자, #1987, #언론, #6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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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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