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올 시즌 유럽에서 치러진 경기 중 최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리버풀이 23일 오전 4시 45분(한국시각)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아래 EPL) 19라운드 아스널과 경기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로써 리버풀은 5위 아스널에 승점 1점 앞선 불안한 4위를 유지하는 데 만족했다.

전반전은 원정팀 리버풀이 압도했다. 리버풀은 경쾌했고, 세밀함까지 갖췄다. 아스널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원을 내주면서, 중앙선 부근을 넘어서는 것도 힘겨웠다.

사실 리버풀의 출발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선발로 나선 조던 핸더슨이 전반 8분 만에 햄스트링에 이상을 느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예상치 못한 부상에 일찍이 교체 카드 한 장을 활용해야 했다. 그런데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핸더슨 대신 그라운드에 나선 제임스 밀러가 공수 양면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였다.

밀러가 투입된 후, 리버풀의 공격은 거침없이 빨라졌다. EPL 전반기를 17승 1무로 마무리한 맨체스터 시티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전반전은 리버풀의 '파죽지세', 눈을 떼기 힘들었다

전반 13분, 필리페 쿠티뉴의 중거리 슈팅이 아스널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전반 21분에는 앤드류 로버트슨이 좌측면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헤더로 연결했다. 아스널의 골문을 페트르 체흐가 지키지 않았다면, 골망이 출렁였을 장면이었다. 2분 뒤, 쿠티뉴가 원터치 패스로 사디오 마네에게 볼을 내줬고, 곧바로 자로 잰 듯한 크로스가 골문을 향했다. 이를 피르미누가 반대편 포스트를 향해 헤더로 연결했지만, 골문을 살짝 벗어났다.

리버풀이 마침내 선제골을 터뜨렸다. 전반 25분, 후방에서 볼을 잡은 밀너가 우측면 뒷공간으로 침투 패스를 찔렀다. 모하메드 살라가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며 볼을 잡았고, 로랑 코시엘니와 일대일로 맞섰다. 살라는 간결한 드리블에 이어 크로스를 시도했고, 이것이 코시엘니의 발에 맞고 굴절됐다. 이를 쿠티뉴가 머리로 볼의 방향을 바꾸며 골망을 갈랐다.

리버풀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홈팬들 앞에서 수비만 하는 아스널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반 31분, 마네가 박스 좌측 부근에서 자리 잡은 피르미누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피르미누는 순간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로 수비를 따돌린 뒤 감아 차는 슈팅을 때렸다. 체흐가 손을 쓸 수 없었을 만큼 예리했지만, 볼은 옆그물을 향했다.

리버풀은 팬들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전반 43분, 시몽 미뇰레 골키퍼 발에서 시작된 빠른 역습이 살라와 체흐의 일대일 기회로 이어졌다. 살라는 지체 없이 슈팅을 시도했고, 체흐는 이름값에 걸맞은 슈퍼 세이브를 선보였다. 이 볼이 골문 앞에 있던 마네에게 향했고, 멋진 바이시클킥으로 이어졌지만 살짝 높았다. 전반전은 리버풀의 파죽지세였다.

 EPL 리버풀 소속 선수 모하메드 살라

EPL 리버풀 소속 선수 모하메드 살라 ⓒ EPA/연합뉴스


후반 초반도 전반과 다르지 않았다. 리버풀의 홈경기처럼 느껴졌다. 아스널은 몸에 이상을 느낀 나초 몬레알을 대신해 시코드란 무스타피를 투입했지만, 수비는 안정감과 거리가 멀었다. 후반 2분, 살라가 원터치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아스널의 후방을 파고들었다. 또다시 체흐와 마주했다. 반대편 포스트를 향해 슈팅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체흐가 추가 득점을 막았다.

하지만, EPL 득점 단독 선두 살라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후반 6분, 환상적인 추가골이 터졌다. 아스널의 공격이 끊기자 리버풀의 재빠른 역습이 시작됐다. 살라가 우측면을 빠르게 질주하며 중앙선 부근을 넘어섰고, 쿠티뉴에게 볼을 내준 뒤 중앙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곧바로 패스가 들어왔고, 살라는 아크서클 부근 진입 후 골문 구석을 노리는 예리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체흐가 손을 쓸 수 없는 완벽한 득점이었다.   

'마법의 5분', 경기를 뒤집은 아스널

리버풀이 전반기 맞대결(4-0)처럼 치욕적인 패배를 안길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방심한 것일까. 조연에 머물던 아스널이 주연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후반 8분, 우측면에서 엑토르 베예린이 빠른 크로스를 올렸고, 알렉시스 산체스가 달려들어 만회골을 뽑았다. 전반전 최악의 경기력을 보인 산체스였지만, 팀이 곤경에 처했을 때 등장했다. 아스널 최고의 스타다웠다.

3분 뒤, 동점골까지 터졌다. 알렉스 이워비가 우측면의 틈이 보이지 않자 아래쪽에 머물던 그라니트 샤카에게 볼을 전달했다. 샤카는 골문과 거리가 상당했지만, 묵직한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무회전이었다. 미뇰레 골키퍼가 왼팔로 막아보려 했지만, 그의 손을 거친 볼은 골망을 출렁였다.

아스널은 내친 김에 역전골까지 뽑았다. 균형을 맞춘 지 정확히 2분 뒤였다. 아스널은 전방 압박을 통해 리버풀의 볼을 가로챘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재빠르게 방향 전환을 시도했고, '마법사' 메수트 외질에게 볼이 향했다. 외질은 박스 부근에서 수비를 등지고 있던 알렉산드루 라카제트에게 볼을 연결한 뒤 재빨리 문전 앞으로 달려들었다. 라카제트는 뒷발로 빠르게 볼을 넘겨줬고, 외질이 침착한 슈팅으로 연결해 리버풀의 골문을 열었다.

전반전에 단 1개의 유효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던 아스널이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5분의 기적이었다.

또다시 동점, 하지만 웃을 수 없었던 리버풀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리버풀은 다시 한 번 '전진 앞으로'를 외쳤다. 후반 16분, 쿠티뉴가 좌측면에서 절묘한 크로스를 올렸고, 마네가 오른발 아웃프런트 슈팅을 시도했다. 문제는 최상의 컨디션을 보인 체흐 골키퍼였다.

하지만 후반 25분, 기어코 동점을 만들어냈다. 엠레 칸이 아스널 진영에서 볼을 잡고 아크서클 부근에서 자리 잡은 피르미누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피르미누는 빠른 슈팅을 시도했고, 볼은 체흐의 손을 거쳐 솟아오른 뒤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코어는 '3-3', 국내 축구팬들의 밤잠을 빼앗아간 최고의 경기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100점 만점에 12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은 경기였다. 눈을 뗄 수 없는 창과 창의 맞대결이었던 만큼, 이보다 더 재미있는 경기는 앞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두 팀의 사령탑은 속이 쓰리다. 승점 3점을 따낼 수 있는 경기에서 1점뿐이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아쉬운 쪽을 가린다면, 리버풀의 클롭이 아닐까 싶다. 공격적인 팀답게, 화력에선 부족함이 없었다. 전반전에는 수비력까지 완벽했다. 그러나 후반 초반 2골 차의 리드를 가져간 이후부터 수비가 집중력을 잃었다. 불과 5분 만에 3골이 터져 팬들은 환호했지만, 클롭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었을 게다.

리버풀 수비는 첫 실점부터 문제를 드러냈다. 베예린의 크로스는 리버풀 우측 풀백 조 고메스를 향했다. 안전하게 머리로 걷어내려 했다면, 실점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안일했다. 여유롭게 볼을 바라보며 발을 사용하려 했다. 뒤에서 달려든 산체스를 인지했을 리가 만무했다.

샤카의 동점골도 마찬가지였다. 리버풀의 안일함이 한몫을 했다. 샤카가 볼을 잡았을 때, 그에게 압박을 시도하려는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줬다. 샤카의 중거리 슈팅을 막아선 미뇰레 골키퍼도 문제였다. 한 팔로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회전이 걸리지 않은 강력한 슈팅을 한 손으로 막는다는 판단은 난센스였다.

역전골은 다를까. 리버풀의 후방 빌드업 실패가 시작이었다. 아스널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고, 볼을 빼앗긴 뒤 우왕좌왕했다. 라카제트는 이날 여러 차례 뒷발 패스를 시도했었고, 외질의 움직임도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버풀 수비진은 허무하게 동점을 내준 탓인지 전반에 보인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리버풀은 시즌 내내 발목을 잡고 있는 수비 불안에 또다시 땅을 쳤다. 올 시즌 아스널전 압도적인 2연승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스스로 내쳐버린 모양새다. 클롭 감독은 속이 쓰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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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VS아스널 위르겐 클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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