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휴를 축구로 시작하기 위해 스타디움에 모인 런던 홈팬들은 후반전 초반까지 연거푸 탄식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팀 아스널이 26분 간격으로 두 골이나 내주는 꼴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상대 팀 역습의 중심으로 잘 알려진 모하메드 살라를 막아내지 못해 벌어진 일이어서 더 한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단 6분만에 3골을 터뜨리며 아스널 선수들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이 축구 바로 그것이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이끌고 있는 리버풀 FC가 한국 시각으로 23일 오전 4시 45분 잉글랜드 런던에 있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9라운드 아스널 FC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3-3으로 비기는 명승부를 펼쳐 리그 4위 자리를 승점 1점 차이로 유지했다.

'이집트 왕자'의 크리스마스 선물

 EPL 리버풀 소속 선수 모하메드 살라

EPL 리버풀 소속 선수 모하메드 살라 ⓒ EPA/연합뉴스


어웨이 팀 리버풀이 먼저 활짝 웃었다. 그들은 축구의 역습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잘 가르쳐주었다. 역시 리버풀 역습의 중심에는 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집트 왕자 모하메드 살라가 있었다.

리버풀 팬들 입장에서 이 경기는 이집트 왕자가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경기 시작 후 26분만에 리버풀의 빠른 역습이 오른쪽 측면으로 이어졌다. 그 드리블러는 다름 아닌 모하메드 살라였고 동료가 달려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재치있는 왼발 아웃사이드 패스가 빛났다. 그런데 그 공이 아스널 수비수 다리에 맞고 튀어올라 필리페 쿠티뉴의 헤더 골로 들어갔다. 중앙선 너머 멀리서부터 약 50미터 이상을 빠르게 뛰어 온 필리페 쿠티뉴의 선택이 옳았다.

축구의 득점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역습 전개 상황에서 드리블러를 제외한 동료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필리페 쿠티뉴가 정확하게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그로부터 26분 후에도 모하메드 살라가 또 한 번 빛났다. 상대 팀 아스널 입장에서 리버풀의 역습 전술 중심에 득점 선두 모하메드 살라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을텐데 또 한 번 당한 것이다. 이처럼 축구는 알면서도 당하는 묘한 어리석음의 스포츠다.

52분에 모하메드 살라의 원맨쇼가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오른쪽 측면부터 시작한 모하메드 살라의 장거리 드리블은 동료 호베르투 피르미누와 2:1 패스로 전개됐다. 아스널의 잭 윌셔가 모하메드 살라의 역습 드리블을 따라붙었지만 마지막까지 집중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공을 다시 받을 때까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모하메드 살라는 예상보다 먼 곳에서 왼발 감아차기를 시도했고 그의 발끝을 떠난 공이 아스널 수비수의 다리에 맞고 살짝 방향이 바뀌어 아스널 골문 왼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리버풀 팬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고 아스널 선수들에게는 또 하나의 따끔한 교훈이었던 것이다.

6분 29초 만에 만든 놀라운 뒤집기 한판, 그러나...

리버풀 모하메드 살라의 추가골(아스널 0-2 리버풀)이 들어간 시간이 정확히 51분 11초였는데 거짓말처럼 104초만에 아스널 홈팬들이 다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상대가 전통의 강팀이라고 하지만 승점 1점 차이로 4위(리버풀)와 5위(아스널) 다툼을 하고 있기에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아스널의 자존심이 발끈했다고 할 수 있겠다.

52분 55초에 아스널의 만회골이 터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날아온 엑토르 베예린의 기습적인 크로스를 간판 골잡이 알렉시스 산체스가 몸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어 헤더로 성공시킨 것이다. 리버풀 수비수 조셉 고메스가 고개를 돌려 산체스의 공간 침투를 확인했지만 다리만 들어올리며 공을 걷어내려고 했지 끝까지 산체스를 밀어내지 못한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이 소용돌이의 시작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0-2로 패색이 짙던 점수판이 6분 29초만에 3-2로 바뀌는 마법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스널 선수들 자신들도 놀랄 정도로 이 기적이 일어났다. 알렉시스 산체스의 헤더 만회골 이후 3분도 안 되어 미드필더 그라니트 자카의 놀라운 동점골이 터졌다. 이워비의 패스를 정면에서 받은 그라니트 자카는 왼발 인스텝 킥을 리버풀 골문으로 날렸다.

그라니트 자카의 왼발 중거리슛은 방향이나 높이가 리버풀 골키퍼 미뇰레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근래에 보기 드문 무회전 킥이었다. 웬만한 무회전 킥은 20여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골문에 이르기까지 공의 회전이 한 바퀴 가까이 일어나지만 자카의 발등 깊숙한 부분에 제대로 걸린 이 공은 무중력 상태에 놓인 것처럼 어느 방향으로도 돌지 않고 날아들었다. 그러다보니 골문 바로 앞에서 갑자기 고도를 바꾸더니 미뇰레의 손끝을 스치며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정말로 3-2 역전골이 나왔다. 아스널 미드필더 메수트 외질이 동료 골잡이 알렉상드르 라카제트와 2:1 패스를 주고받는 사이에 리버풀 수비수들은 박스 안에 6명이나 몰려 있었지만 이 두 선수를 제대로 밀어내지 못한 것이다. 축구의 공격이나 수비가 숫자로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장면이었다. 0-2 점수판이 깜빡이는 순간부터 그 숫자가 3-2로 뒤집히는 순간까지 겨우 6분 29초밖에 안 걸렸다는 사실 또한 잊을 수가 없었다.

이 놀라운 뒤집기에 온 힘을 쏟아낸 아스널 선수들은 결국 70분에 아쉬운 동점골을 얻어맞고 말았다. 리버풀 미드필더 엠레 잔의 역습 드리블과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공간 침투를 알면서도 따라잡지 못한 것이었다. 사실 이 경기 중반까지의 경기력만 놓고 본다면 아스널 홈팬들 입장에서 3-3이라는 점수판도 선물이라며 위안을 삼아야 할 정도였다. 그것이 축구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이후에 양 팀 벤치에서는 선수 교체(78분 대니 웰벡-아스널, 84분 옥슬레이드 체임벌린-리버풀, 88분 시오 월컷-아스널)를 통해 진정한 결승골을 노렸지만 추가 시간 4분이 다 흘러갈 때까지 결승골의 감격은 누릴 수 없었다.

이로써 리그 4위(리버풀 35점)-5위(아스널 34점)의 순위 변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 순위를 위협하는 팀들이 바짝 붙어있기에 다음 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티켓 싸움이 어느 때보다 흥미롭다. 축구 팬들은 6위 번리(32점)와 7위 토트넘 홋스퍼(31점)의 경기가 24일 오전 2시 30분 터프 무어에서 열리기 때문에 다른 색깔의 크리스마스 선물 보따리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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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9라운드 결과(23일 오전 4시 45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런던)

★ 아스널 FC 3-3 리버풀 FC [득점 : 알렉시스 산체스(53분,도움-엑토르 베예린), 그라니트 자카(56분,도움-알렉스 이워비), 메수트 외질(58분,도움-알렉상드르 라카제트) / 필리페 쿠티뉴(26분), 모하메드 살라(52분,도움-호베르투 피르미누), 호베르투 피르미누(70분,도움-엠레 잔)]

◇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순위표
1 맨체스터 시티 52점 17승 1무 56득점 12실점 +44
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1점 13승 2무 3패 39득점 12실점 +27
3 첼시 38점 12승 2무 4패 32득점 14실점 +18
4 리버풀 35점 9승 8무 2패 41득점 23실점 +18
5 아스널 34점 10승 4무 5패 34득점 23실점 +11
6 번리 32점 9승 5무 4패 16득점 12실점 +4
7 토트넘 홋스퍼 31점 9승 4무 5패 31득점 18실점 +13
8 레스터 시티 26점 7승 5무 6패 27득점 26실점 +1
9 에버턴 25점 7승 4무 7패 24득점 30실점 -6
10 왓포드 22점 6승 4무 8패 27득점 33실점 -6
축구 아스널 리버풀 크리스마스 모하메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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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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