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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너머로 숙박시설들이 보인다
▲ 사북역 플랫폼 너머로 숙박시설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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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열차를 타고 가다가 사북역에 내리면 '탄차'를 볼 수 있다. 레일이 아니라 플랫폼 위에 서 있는 석탄 실은 작은 열차는 사북이 광산 도시였음을 알려주는 증명서 같다. 그러나 사북역을 나오면 둘러싼 산처럼 모텔과 호텔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이제는 광산도시가 아니라는 몸부림 같다.

왼쪽으로 돌아서 철길 아래를 지나면 동원탄좌 크레인이 눈에 들어온다. 금방이라도 철커덩거리며 갱도 속으로 사람 실은 '인차'와 석탄 실은 '탄차'를 오르내리게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람한 철탑은 2004년에 멈춰 섰고, 탄광은 문을 닫았다. '석탄산업합리화'라는 이름 때문이다. 

2004년까지 운영되던 동원탄좌는 이제 석탄체험장이 되었다.
▲ 동원탄좌 2004년까지 운영되던 동원탄좌는 이제 석탄체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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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 우뚝 선 검은 산은 캐 올린 탄 더미에서 석탄을 골라내고 버려진 돌이 쌓인 것이다. 시간을 견뎌내며 탄가루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점점 빛이 바래서 회색으로 변해간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화려하게 반짝이는 호텔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와집이 보인다. 하이원이다.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도박장인 강원랜드는 하이원 리조트라는 고운 이름으로 얼굴을 살짝 가렸다.

입장세 9천 원을 내고 들어간 도박장은 평일인데도 '발 디딜 틈이 없다'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풍경이다.

건전한 오락이라는 구호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박이라는 것에 흥미가 없는 나는 도박장 옆에 딸린 바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 창가에 앉았다. 유리 너머로 골짜기를 따라 사북이 내려다보인다. 올라오면서 본 동원탄좌 크레인도 눈에 들어온다. 탄가루 날리던 골짜기를 돈 가루 날리는 도박장이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도박은 쇠락한 탄광촌을 위로할 수 있을까

하이원리조트라는 이름으로 본모습을 살짝 감추었다.
▲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라는 이름으로 본모습을 살짝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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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에서 꿈을 좇던 사람은 떠나가고 한 방에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이 몰려드는 도시가 되었다. 수많은 전당포와 저당 잡혀 세워놓은 차들이 인생역전이 위로가 아니라 아래로 이루어졌음을 소리 없이 웅변한다.

끼니를 해결하러 중심가로 내려왔다. 사북역 앞길에는 중앙차선을 따라서 탄차가 다니던 궤도가 아스팔트 위로 몸을 드러내고 남아 있다. 탄광이 문을 닫았는데도 철거하지 않은 까닭이다. 미련 남은 연인처럼 아직 탄광도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열차 시간이 임박해 다시 사북역으로 돌아와서야 '도박을 걱정하는 모임'이라는 리본이 달린 크리스마스트리가 매표창구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창구 위 광고판에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으십니까?'라는 문구가 차지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별 감흥이 없겠지만 도박장에서 돈을 잃은 사람에게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욕망이 잃은 돈에 비례해서 강해질 것이다.

플랫폼으로 나가는 문 옆에는 그 옛날에 간첩신고 안내용으로 썼음직 한 커다란 표지판에 도박중독을 상담 받는다는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도박장으로 가려는 사람이 보았으면 좋을 것들이지만 나는 돌아오면서 보았다. 가진 돈을 다 날리고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구호도, 트리도, 상담전화도 쓰디쓴 후회만을 더하게 할 뿐일 듯하다.

도박중독자를 돕는다는 구호는 도박장이 잘 운영되어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욕망 앞에서 힘을 잃고 만다. '도박하는 사람이 많아야 지역경제가 산다'와 '도박은 오락으로 적당히 하자', 이 두 구호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철길궤도 같다.  

도박을 걱정하는 모임이라는 리본이 달려있다
▲ 사북역 크리스마스트리 도박을 걱정하는 모임이라는 리본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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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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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화도 쓰고, 시, 동시도 쓰고, 역사책도 씁니다. 낮고, 작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 곁에 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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