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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면서, 영유아 교재·교구 시장 역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영유아의 19.3%가 학습지를 이용하고, 3.0%가 교구 활동을 이용하는 등(육아정책연구소, 2016), 많은 수가 영유아 교재·교구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영유아 교재·교구 영업 사원이 활동하고, TV와 인터넷 등의 영유아 교재·교구 광고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등, 영유아 교재·교구 업체는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분석 결과, 영유아 교재·교구 업체는 검증되지 않은 영유아 교육 담론을 상업적 목적을 위해 교묘히 차용하고 있었다. 그 담론의 대표적인 예가 ① '만 3세 무렵에 뇌의 발달이 대부분 완성된다'는 뇌과학 담론, ② '한글은 일찍 배워야 인지 발달에 효과적이다'는 한글 조기 교육 담론, ③ '다중지능 발달을 위해 다중지능 교재·교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다중지능 담론 등이다. 그 두 번째로, '한글을 일찍 배워야 인지 발달에 효과적이다'는 한글 조기 교육 담론에 대해 분석해보았다... 기자 말

영유아기에 한글을 떼기 위한 사교육이 일반적인 상황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3년 초등 1학년 학생을 둔 학부모(5470명)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 한글을 포함한 국어 사교육을 받는 비율이 74.2%를 차지했다. 이는 수학(73%), 예체능·제2외국어(70.3%), 영어(67.2%) 등 다른 과목에 비교해 가장 높은 비율로,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 국어 사교육을 받는 것이 가장 보편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육아정책연구소(2016)의 만 2세, 5세 사교육 실태 조사에서도 국어 사교육의 높은 비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 2세가 참여하고 있는 사교육 프로그램은 국어(한글, 독서, 논술 등)가 28.6%로 가장 많았고, 만 5세가 참여하고 있는 사교육 프로그램 역시 국어가 24.5%로 가장 많았다.
   
특히 한글 사교육 상품으로는 학습지가 대중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가정 내 학습지를 이용하는 영유아 중 86.7%가 한글 학습지를 이용하고 있었다.(육아정책연구소, 2016) 한글 학습지를 이용하는 경우 평균 주당 1.1회 이용했으며 월평균 비용은 3만9000 원이었다.

'영유아기에 일찍 한글을 배우면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는 사교육 상품

이렇게 보편화된 한글 사교육 상품들은 어떤 방식으로 홍보를 하고 있을까? 천재교육 <돌잡이 한글>은 '누구는 말을 더 잘하고, 더 잘 읽고, 더 잘 쓰고 이 차이는 돌잡이 한글을 언제 시작하느냐입니다'라고 홍보하며, 빨리 한글을 배울수록 좋다고 주장한다. 구몬의 <한글이 크는 나무>는 '한글을 아는 것은 읽기에 대한 기초 능력, 책 읽기 습관을 쌓는 것과 연관된다'며 '유아 시기에 한글을 읽을 수 있다면 아이의 지적 성장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언급한다. 아가월드 <처음 한글>은 '유아가 한글을 읽는다는 것은 인지 및 사회성과 같은 다른 영역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결국, 한글 사교육 상품들은 영유아기에 일찍 한글을 배우는 것이, 인지 능력 및 사회성, 책 읽기 습관 등에 영향을 미치고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천재교육 <돌잡이 한글> ‘누구는 말을 더 잘하고, 더 잘 읽고, 더 잘 쓰고 이 차이는 돌잡이 한글을 언제 시작하느냐입니다’ 라고 홍보하며 ‘왜 말 놀이를 빨리 시작해야 하는지’ 실험 결과 인용
▲ 천재교육 <돌잡이 한글> ‘누구는 말을 더 잘하고, 더 잘 읽고, 더 잘 쓰고 이 차이는 돌잡이 한글을 언제 시작하느냐입니다’ 라고 홍보하며 ‘왜 말 놀이를 빨리 시작해야 하는지’ 실험 결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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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몬 <한글이 크는 나무> ‘한글을 아는 것은 읽기에 대한 기초 능력, 책읽기 습관을 쌓는 것과 연관된다’며 ‘유아 시기에 한글을 읽을 수 있다면 아이의 지적 성장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홍보
▲ 구몬 <한글이 크는 나무> ‘한글을 아는 것은 읽기에 대한 기초 능력, 책읽기 습관을 쌓는 것과 연관된다’며 ‘유아 시기에 한글을 읽을 수 있다면 아이의 지적 성장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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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월드 <처음 한글> ‘유아가 한글을 읽는다는 것은 인지 및 사회성과 같은 다른 영역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홍보
▲ 아가월드 <처음 한글> ‘유아가 한글을 읽는다는 것은 인지 및 사회성과 같은 다른 영역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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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사교육을 통해 일찍 한글을 배운 아이들이 초1, 초3에 읽기 이해 능력·어휘력 등이 오히려 더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

그렇다면 한글 사교육 업체가 말하는 것처럼, 영유아기에 한글을 일찍 배우는 것이 인지 발달에 도움이 될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이기숙 교수 연구팀은 문자 관련 선행 사교육을 받은 만 5세 집단과 사교육을 받지 않은 만 5세 집단을 모집해 비교 분석하는 종단 연구를 실시했다. 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국어 시험 결과는 어땠을까? 독해력을 비롯해 논리력, 관련 단어 찾기, 오자, 맞춤법 등 총 5개 영역 모두 두 집단이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문자 관련 선행 사교육을 받지 않은 집단의 평균이 약간 높았다. 특히 독해력의 경우 문자 관련 선행 사교육을 받지 않은 집단의 평균이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국어 시험 결과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읽기와 쓰기 등 선행 사교육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읽기 이해 능력과 어휘력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읽기 이해 능력 중 비판적 이해 능력에 큰 차이가 있었다. 결국, 사교육을 통해 한글을 빨리 배운다고 하여 아이의 읽기 능력이 좋아지지 않는 것이다.

외국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우샤 고스와미 교수 연구팀은 세 가지 문자를 대상으로 다섯 살 무렵부터 글자를 익혀 책을 읽은 아이들과 일곱 살 무렵부터 글자를 익힌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글자를 일찍 배운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훨씬 낮았다(신성욱, 2014).

영유아기 문자 교육, 뇌 발달 단계에 적합하지 않고 창의적 사고 제한할 수 있어

유아기에 해당하는 만 3세~6세는 전두엽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로, 전두엽은 인간의 종합적인 사고 기능과 인간성, 도덕성 등을 담당하므로 이 시기에는 인성과 도덕성, 집중력, 동기 부여 등을 중심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 뇌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시기에 만  6~12세에 발달하는 두정엽과 측두엽의 기능인 수학 교육, 문자 교육 등을 하는 것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우남희 외, 2002).

미국 터프츠대학교 메리언 울프 교수는 '독서(글을 읽는 것)는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 영역과 청각, 언어, 개념 영역을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는 뇌의 능력에 의존하며, 시각, 청각 및 언어와 같이 정보를 빠른 속도로 통합시키는 능력의 기반이 되는 주요 뇌부위는 7세가 되어야 발달한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네 살이나 다섯 살이 되기 전 아이들에게 독서(문자를 통한 책 읽기)를 가르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경솔한 일이며 많은 경우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메리언 울프, 2009).

또한 전문가들은 영유아기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창의적 사고 등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삐뽀삐뽀 119 소아과> 저자인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너무 이른 시기에 글자를 가르치게 되면 아이들이 글자에 매여 사고가 한정되기 때문에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데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다음 스토리펀딩 : 우리 아이 한글, 언제 가르치면 좋을까?).

신의진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조기 한글 교육에 대해 경고하며 '3세 이전에는 가급적 아이의 창의성을 죽이는 작업을 하지 말아야 하고, 이미 만들어진 자극은 안 주는 것이 좋다. 끈, 냄비, 풀만 줘도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책 밖에 모르는 우리 아이)

이러한 영유아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우리나라 누리과정(유치원·어린이집 공통 교육과정)에서는 한글의 문자 교육을 하지 않는다. 누리과정의 '의사소통' 영역에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내용 범주가 있으나, 이는 '주변에서 친숙한 글자를 찾아 읽어 본다', '말이나 생각을 글로 나타낼 수 있음을 안다' (만 5세) 등 한글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독일, 핀란드, 이탈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유치원에서 정식으로 글자 교육을 하지 않는다. 독일은 취학 통지서 아래에 '귀댁의 자녀가 입학 전에 글자를 깨치면 교육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고 있을 정도이다(이기숙, 2015).

초등학교에서도 충분히 한글 배울 수 있어 

이렇게 조기 한글 교육이 학습 효과가 없을뿐더러 영유아 발달 단계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유아 사교육 업체들이 조기 한글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 할수록 좋다'는 속도 경쟁으로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려는 상업적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조기 한글 교육 담론이 성행하게 된 것에는 초등 교육과정의 문제점이 유발한 측면도 존재한다.

현행 누리과정에는 한글의 문자 교육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기존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은 한글을 떼고 왔다는 가정 하에 진행되었다. 2013년부터 적용된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총 27시간만 한글 교육을 위한 시간으로 배정되어, 한글을 배우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영유아 한글 사교육 상품이 대중적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문제 제기에 힘입어 교육부는 한글 교육을 최소 45시간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올해 적용되는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교과서는 한글 해득을 위한 교육을 60여 시간 할 수 있도록 반영되었다. 더 이상 한글 선행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초등학교에서 충분히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천재교육과 한솔교육, 구몬 등 많은 영유아 사교육 업체들은 '일찍 한글을 배울수록 인지 성장에 도움이 된다'며 영유아 한글 사교육 상품을 홍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유아기 한글 교육은 학습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뇌 발달 등 영유아 발달 단계에도 맞지 않는다. 다음 기사에서는 영유아 교재·교구 업체의 '다중지능 발달을 위해 다중지능 교재·교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다중지능 담론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이기숙(2015), 적기교육, 서울: 글담출판
신성욱(2014),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서울: 어크로스
매리언 울프(2009), 책 읽는 뇌, 서울: 살림
이기숙, 김순환, 김민정(2011), 유아기의 기본적인 언어능력이 초등학교 1학년 국어 학력과 어휘에 미치는 영향, 유아교육연구, 31(5) 299-322
이기숙, 김순환, 정종원, 김민정(2013), 만5세 읽기능력, 어휘력 및 개인·환경 변인에 따른 초등학교 3학년 읽기이해능력과 어휘력, 유아교육연구, 33(4) 363-384
우남희, 서유헌, 강영은(2002), 영유아에 대한 조기영어교육의 적절성에 관한 연구
김은영, 최효미, 최지은, 장미경(2016), 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 방안 Ⅱ -2세와 5세를 중심으로-, 육아정책연구소 연구보고 2016-13
사교육걱정없는세상(2013), 영유아 사교육 실태 분석 및 대안을 모색한다, 영유아사교육포럼 5차 토론회 자료집
최효미, 김길숙, 이동하, 임준범(2016), 영유아 교육·보육비용 추정연구(Ⅳ), 육아정책연구소 연구보고 2016-28


#한글조기교육#한글사교육#영유아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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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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