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이 올해 마지막 국제 대회인 2017 동아시안컵(E-1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한국, 중국, 일본, 북한 4개국 남녀 축구 국가 대표 팀이 참가해 동아시아의 정상을 가리는 동아시안컵은 8일부터 16일까지 9일간 이어진다.

대회 2연패를 노리는 남자축구는 동아시안컵에서 3회 우승을 차지하며 최다 우승국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여자 축구는 홈에서 열린 2005년 대회 이후 12년만에 2번째 우승을 노린다. 한국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사상첫 남녀 동반 우승을 노린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남자 대표팀은 이번 동아시안컵을 통하여 본선을 대비한 수비 조직력 점검과 함께 국내파 선수들의 옥석가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외파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하는 동아시안컵은 월드컵-아시안컵 등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는 아무래도 규모나 비중이 떨어진다.

하지만 동아시아 지역 라이벌인 일본, 중국, 북한과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자존심 싸움은 결코 만만치 않다. 참가국들 간의 특수한 역사적-문화적 환경으로 인하여 역대 동아시안컵에서는 그간 적지 않은 명승부와 명장면들을 연출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03년 대회의 인상적 장면, '소림축구'엔 '을용타'

동아시아축구 홍콩전 동아시아연맹축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 국가대표팀이 지난 2003년 12월 4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가진 홍콩과의 경기에서 이을용이 홍콩의 라우 치 퀑과 스제토 만 천의 수비를 뚫고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 동아시아축구 홍콩전 동아시아연맹축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 국가대표팀이 지난 2003년 12월 4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가진 홍콩과의 경기에서 이을용이 홍콩의 라우 치 퀑과 스제토 만 천의 수비를 뚫고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초대 대회로 인정받는 2003년 일본 대회에서는 한·중·일에 홍콩이 포함됐다. 당시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홍콩과 중국을 가볍게 연파하고 일본과의 최종전에서는 0-0 무승부를 거두며 2승 1무로 대회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당시 한국의 주장 유상철은 대회 MVP에 올랐다.

하지만 국내 팬들에게 이 대회는 한국의 우승보다 전설의 '을용타' 사건으로 더 회자된다. 한국과 중국의 2차전에서 당시 이을용은 후반 15분 등 뒤에서 거친 플레이를 연발하던 중국 공격수 리이의 행동에 발끈하여 그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리플레이 화면을 보면 리이가 잠시 황당해하다가 심판의 눈치를 보며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격해 있던 양팀 선수들이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그라운드 분위기는 삽시간에 험악해졌다. 이을용은 결국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 당했지만, 한국은 수적 열세에 흔들리지 않고 여유있게 승리를 지켜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경기 당시보다 경기 후에 더 유명세를 탔다. 엄밀히 말하면 폭력은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이을용의 행동에 대한 비판보다는 찬사가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국제무대에서 거친 '소림축구'로 악명이 따라다니던 중국축구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또한 당시 쓰러진 리이를 노려보던 이을용의 터프한 모습은, 인터넷에서 다양한 합성물과 패러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2005년 - '잘가요' 본프레레, '무승' 결과에 경질

동아시안컵의 유명한 징크스는 바로 개최국이 우승을 한 사례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한국이 최초로 동아시안컵을 개최한 2005년 대회에서는 최하위인 4위에 머물렀다.

여러모로 좋은 기억이 없는 대회였다. 조 본프레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한국은 중국과의 1차전에서 상대 선수 2명이 퇴장당한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최약체로 꼽힌 북한에게 0-0, 일본과의 최종전마저 0-1로 패하며 2무 1패에 그쳤다. 개최국이자 월드컵 본선진출국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최하위에 머무르는 수모를 당했다.

 본 프레레 전 축구대표팀 감독 인터뷰

본 프레레 전 축구대표팀 감독, 지난 2005년 인터뷰 당시. ⓒ 오마이뉴스 토드 태커


이미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 지은 상황이었음에도 저조한 경기력으로 가뜩이나 뭇매를 맞고 있는 본프레레 감독은 결국 비난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동아시안컵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아 경질당했다. 역시 네덜란드 출신인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아 독일월드컵 본선을 이끌었다.

2008년 - '인민 루니'의 탄생

중국에서 열린 2008년 대회는 한국축구의 설욕전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남자대표팀은 중국과 1차전에서 2골을 터뜨린 박주영의 맹활약에 힘입어 3-2 역전승을 거뒀다. 이후 한국은 북한-일본과 잇달아 1-1 무승부를 거뒀다. 한국과 일본이 1승 2무로 승점이 같았지만 다득점에서 한국이 앞서 우승을 차지했다. 주장 김남일은 대회 MVP에 올랐다.

하지만 이 대회가 배출한 진정한 스타는 북한대표로 출전한 '인민루니' 정대세였다. 한국전에서 위협적인 공격력을 과시하며 득점포까지 터뜨린 정대세는 한국-일본-북한을 넘나드는 독특한 출신배경과 플레이스타일로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정대세는 북한을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44년 만에 본선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고 K리그 수원 등에서 활약하며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정대세가 1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경기에서 조원희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고 있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정대세가 지난 2009년 4월 1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경기에서 조원희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고 있다. ⓒ 유성호


2010년 - 무너진 공한증, 그리고 '전화위복' 한일전

일본에서 열린 2010년 대회는 남자축구 역사상 최초로 '공한증'이 깨진 사건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은 약체 홍콩과 1차전에서 5-0 대승을 거뒀지만 중국과 2차전에서는 0-3 충격패를 당했다. 월드컵 본선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무리한 전술실험에 나선 것이 패착이었다.

2008년 우승을 이끌었던 당시 허정무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는 한중전 패배로 적지 않은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어진 일본과 3차전에서 이동국, 이승렬, 김재성의 득점포로 3-1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고 준우승으로 자존심을 지켰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그해 남아공월드컵에서 최초의 원정 16강 신화를 달성하며 동아시안컵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2013년 - '의리축구'의 암울한 복선

브라질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짓고 2013년 중반 본선을 1년 남겨놓은 시점에서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이끈 홍명보 감독이 한국축구의 새로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축구를 구원할 구세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호주-중국을 상대로 잇달아 0-0 무승부에 그쳤고 최종전에서는 숙적 일본에 1-2로 무너지며 또한번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3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답답한 공격전술과 '플랜 B의 부재'라는 홍명보 축구의 약점은 이때부터 불안한 싹을 보이고 있었다. 당초 '소속팀에서 경기력이 좋은 선수들을 중용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웠던 홍명보 감독은 이후 해외파에 노골적으로 의존하며 자신이 정한 원칙을 스스로 뒤집었다.

결국 '의리축구'에 집착했던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몰락하며 지도자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홍명보 감독 재임기간 5승 4무 10패라는 성적은 1년 이상 재임한 역대 대표팀 감독을 통틀어 최악의 승률(26.3%)이었다.

2015년 - 슈틸리케, '어서 와 우승은 처음이지?'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5년 중국 우안대회에서 한국은 직전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과 1차전에서 김승대, 이종호가 연속골을 터뜨리며 2-0 승리를 일궈냈고, 일본과 2차전에서는 장현수의 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북한과 3차전에서는 득점 없이 비겼다.

한국은 1승 2무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슈틸리케 감독은 감독 커리어를 통틀어 2부리그 1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장현수는 대회 MVP에 오르며 슈틸리케의 황태자로서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슈틸리케 감독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미얀마와 라오스전 출전 명단 발표 기자회견을 발표하고 있다.

슈틸리케호는 오는 1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미얀마와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5차전을 치르고, 17일에는 원정길에 올라 라오스와 6차전을 갖는다.

울리 슈틸리케 전 축구 대표팀 감독(자료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회가 슈틸리케의 '마지막 황금기'였다. 월드컵 2차예선까지 비교적 약팀들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며 젊은 선수들의 발굴이라는 성과까지 올렸던 슈틸리케 감독은, 강팀들을 만나게 된 최종예선부터 점차 전술적 한계와 해외파 의존도 전임 감독의 실패를 답습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끝내 최종예선을 마감하지 못하고 경질되며 한국축구 역사상 최악의 외국인 감독으로 전락하여 '용두사미'로 마감하게 됐다.

여자축구의 동아시안컵 성장기

전력이 비슷한 남자부와 달리 여자부는 일본, 중국, 북한의 강세를 후발주자인 한국이 따라잡는 모양새였다. 역대 동아시안컵 성적을 보면 한국은 초대 2005년 대회는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고 2008년에는 최하위로 내려 앉았다. 하지만 2010년과 2013년은 3위, 2015년은 준우승을 기록하며 상승세다.

역대 우승국은 2008년과 2010년은 일본이, 2013년과 2015년은 북한이 각각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의외로 중국은 동아시안컵에서 준우승만 한 번 했으며 아직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4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한국 전가을이 후반 역전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지난 2015년 8월 4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한국 전가을이 후반 역전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자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윤덕여 감독은 2013년부터 벌써 세 번째 동아시안컵 도전이다. 한국의 역대 동아시안컵 최다 득점자인 지소연(3골, 첼시 레이디스)은 아쉽게 이번에도 참가하지 못하지만 조소현, 이민아(이상 인천현대제철) 같은 주축 선수들은 변함없이 이름을 올렸다.

윤덕여 감독은 "세대교체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하다"며 이번 동아시안컵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한국은 12월 8일 일본 지바 소가스포츠파크에서 일본과 1차전을 시작으로 11일 북한과 2차전, 15일 중국과 최종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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