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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나라에 노숙인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노숙인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서 한 노숙인 선생님을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우연히 들은 말이다. 지나는 말이었지만, 서울역에서 매일 노숙인 분들을 만나는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1만 7천 명의 '노숙인 등(주거취약계층)'이 있다('노숙인 등'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담긴 공식 용어다).

그 중 1만 5천 명은 거리에서 자지 않고 거주시설과 쪽방에서 생활하는 분들이다. '거리노숙인' 중에서도 상당수는 응급대피소나 일시보호시설에서 잠을 잔다. 말 그대로 거리에서 자는 분들이라도 대부분은 새벽 일찍 일어나 현장지원센터에 있는 옷방과 샤워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노숙인 현장지원센터에 있는 옷방과 샤워시설. 거리노숙인 대부분은 이곳을 이용하면서 기본적인 청결을 유지한다.
 노숙인 현장지원센터에 있는 옷방과 샤워시설. 거리노숙인 대부분은 이곳을 이용하면서 기본적인 청결을 유지한다.
ⓒ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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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술만 먹고 아무데서나 누워서 자는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을 '노숙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노숙인'이 늘고 있는 셈이다.

UN에서는 우리나라의 '노숙인 등(주거취약계층)'에 해당하는 '홈리스'를 거리노숙인 뿐 아니라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서 사는 사람까지로 넓게 규정하고 있는데, 주거기본법으로 정한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의 '최저주거기준'은 방 면적 14㎡(약 4.2평) 이상에, 전용 입식부엌과 전용 수세식화장실, 목욕시설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지하나 옥탑방에 사는 가구(32만 4565가구)와 쪽방, 고시원, 여관, 비닐하우스, 판잣집 등에 거주하는 가구(39만 1245가구)를 포함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답지 않은 집'에서 사는 주거취약계층은 모두 227만 6562가구로 전체 가구의 12%에 이른다.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노숙인 정책에 포함되는 '주거취약계층'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다. 처음부터 '노숙인'이었던 사람은 없다. 그들도 한때는 지역사회에 함께 사는 주민이자 이웃이었다.

텐트촌에서 나름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그들은 '보이지 않는 노숙인'이다.
 텐트촌에서 나름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그들은 '보이지 않는 노숙인'이다.
ⓒ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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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이 되는 이유


노숙인이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되는 문제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문제도 많다.  IMF 사태만 봐도 그렇다.  IMF 사태가 개인의 책임이었나?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었는데, 국가가 파산위기에 처해 갑자기 회사에서 '짤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IMF 사태 이전에 국가는 노숙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겼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 노숙인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노숙생활의 이유가 반드시 개인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루아침에 실직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면...

누구라도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개인의 정신건강을 좀먹는다. 누군가는 술의 힘을 빌려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다시 무언가에 도전한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지 않다.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도전하는 사람들 중에는 실패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은 모두 개인이 짊어진다. 사업의 실패는 신용불량 상태로 이어지고, 그 결과 이혼을 하여 가족과 단절된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우울증이나 알코올중독이라는 질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이들을 위해 사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바로 '시설'이다.

여성은 위험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거리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여성 거리노숙인 중 대부분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여성은 위험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거리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여성 거리노숙인 중 대부분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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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생활을 하라고 한다. 방 하나에 적게는 3~4명, 많게는 30명씩 함께 자는 시설에서 살라고 한다. 개인적인 공간은 없다. 자고 싶지 않아도 자야하고 일어나고 싶지 않아도 일어나야 한다. 외출하는 시간도 자유롭지 않다. 모든 행동이 통제되고 검열 받는다.

그들은 어린아이가 아니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삶의 기준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단체생활을 하며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다. 더욱이 정신질환자들은 통제의 대상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정해진 시간표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당사자에게도 이로운 점은 있다. 하지만 답답하다. 자유롭고 싶다. 자유를 위해 일탈을 한다. 그러면 정신질환으로 인한 행동이라고 낙인찍힌다.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한다.

병원 역시 단체생활이기 때문에 시설보다 더 통제받는다. 퇴원을 하면 다시 시설로 간다. 시설과 병원을 전전하는 그들에게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를 위해 작은 공간을 택했다.

2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자유를 누리고 살겠다며 생활한다. 그들의 '선택'은 제한적이다. 금전적인 여유도 없고, 사회적인 자원도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은 고시원이나 쪽방이다.

쪽방은 시설과 달리 자신만의 방이지만 좁다. 말 한마디 건넬 사람은 없지만 옆방의 TV소리까지 다 들린다. 거리보다는 낫지만 여름에는 무더위로 찜통이 되고, 겨울에도 방 안에 얼음이 어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히 누리고 싶은 자유를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또다시 책임은 본인에게 간다.

'내가 선택했으니까, 이렇게 사는 것 또한 내 책임인거야.'

그렇게 그들은 고독하게 살아간다. 세상은 고해(苦海)다.

둘이 앉으면 꽉 차는 좁은 방. 쪽방, 고시원에 임시주거 지원을 한 후 지속적인 사례관리 상담을 한다.
 둘이 앉으면 꽉 차는 좁은 방. 쪽방, 고시원에 임시주거 지원을 한 후 지속적인 사례관리 상담을 한다.
ⓒ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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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보건복지부의 노숙인 실태 조사 응답자 중 51.9%는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 거리노숙인은 69%, 시설노숙인은 27.7%, 쪽방 주민 82.6%로 '거리'와 '쪽방'에서 우울증 유병률이 70∼80%에 달했다.

특히, 쪽방 주민의 우울증 유병률은 거리노숙인보다도 높다. 이는 쪽방에 살다가 다시 거리노숙으로 돌아올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가 이렇게 좋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고해(苦海)에서 살았던 한 정신장애인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한마디다. 그녀는 올해 5월 초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정신건강팀을 통해 지원주택으로 연계되었다. 조울증으로 온갖 고생을 하고, 병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정착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현재 좋은 원룸에서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으며 자립을 계획하고 있다.

사람은 집을 만들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

지원주택은 기존의 시설입소와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이다.  '시설입소'는 당사자가 시설에서 무료로 생활하면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 독립하는 방식이라면, '지원주택'은 당사자가 독립할 수 있는 생활공간을 먼저 제공한 후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으며 자립의 기반을 다져나간다. 입주자 스스로 임대료와 공과금, 보증금을 내야 하지만 일반 월세에 비해 매우 싸고, 보증금이 없는 분들에게는 보증금까지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주택의 '수'이다. 서울에서 단 4곳에서만 노숙인을 위한 지원주택이 운영된다(이중 2곳은 서울시에서 지원하고, 나머지 2곳은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갖고 있는 노숙인들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입주 대기인원이 많다. 대기인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집다운 집'에 대한 욕구가 많다는 것이다.

환경은 사람을 바꾼다

몸은 비록 거리에 있지만 마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비바람만 간신히 피할 수 있는 공간보다는 '집다운 집'에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지원주택 입주민 최OO님

처음에 내가 거기(지원주택) 가서 울었다고 했잖아요. 나한테 이런 보금자리가 생기는 구나. 나만의 보금자리가. 그렇지, 좋아서. 밤낮 술 먹고 난장(길거리 노숙을 뜻하는 은어)이나 치고 그러다가, 이런 공간이 나한테 생기는구나.

다만, 계속되는 실패로 노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지 못할 뿐이다. 그러다 꿈에만 그리던 '집'에서 실제로 살다 보면 점점 자신감이 생기며 원래의 자기를 찾아간다.

지원주택 입주민 최OO님

(지원주택에 들어오기 전에도) 일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열심히는 안 했지. 그냥 될대로 돼라, 그런 식이었지. 쪽방에 살 때는. 에이,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옛날로 돌아가면 되지. 그 생각 했었어요, 솔직히.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시설도 있는데. 다시 거리에서 노숙하면 되지. 내가 열심히 하면 뭐하냐. 행복하우스 들어가기 전까지는 저축이라는 생각을 안 했거든.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진 않았거든. 행복하우스 들어가면서 마음이 변한 거지.

최OO님은 지원주택에 살면서 임대주택 보증금을 모아, 더 넓은 임대주택에 입주해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지금도 지원주택 입주를 기다리는 수많은 노숙인 선생님들의 '꿈'을 대신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발, '지원주택' 좀 많이 만들어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설'이 아니라 당신들처럼 매일 돌아가서 쉴 수 있는 '집'입니다."


태그:#지원주택, #노숙인, #홈리스, #정신장애인, #탈시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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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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