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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말아도 돼?"

한 김밥 가게에 아르바이트 구인공고를 보고, 나는 물었다. 시간도 오전시간에 바짝 일하고, 오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였다. 반은 진심이고, 반은 농담이었다.

이제 우리가 만난 지 3개월 차였지만, 내 나이 서른넷에는 왠지 급한 마음이 담겨 있는 물음이었다. 나와 그 친구에게 말이다.

어쩌면 우리 엄마가 더 급한 것이 아닐지 몰라, 몇 일 전 오랜만에 나와 한 식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내게 엄마는 갑자기 물으셨다.

"너희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강화도에 엄마랑 나의 민박집에 데리고 온 남자친구를 인사시킨 지 며칠 못 되어서, 엄마는 모든 계산과 상황을 다 끝내놓고 물으셨다. 우리 만난 지 2개월도 안 된 거 아시면서, 불안하셨던 거다. 내 나이는 자꾸 먹어가고 그 '상징적인' 나이 서른다섯을 넘기면 결혼도 못 하고 시집도 못 갈까 봐 말이다.

'백수남 실수녀' 프로젝트, 나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민박집 풍경
 민박집 풍경
ⓒ 고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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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건 나도 매한가지였다. 결혼이란 것은 서른둘 즈음에는 하고 있을 줄 알았다. 혼자 살기는 싫고 둘이서 세상 살아볼 만하다고 그렇게 의지할 누군가 내 옆에 두고, 내 편을 두고, 내 자식도 낳아보고 길러보고 싶었으니까. 내가 이러고 살지 몰랐으니 말이다.

올해 1월까지 4대 보험은 있지 않은 곳이었지만, 월급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원치 않은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하고, 전공을 살려 다시 미술을 하겠다고 작업실을 얻고, 용돈을 벌겠다고 유휴공간인 강화도 시골집을 민박집으로 오픈하였다. 언젠가는 나도 나만의 예술 작업을 하며 돈을 벌겠다고 생각했지, 상황에 떠밀려 갑자기 작업실에서 그 싫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꼴이라니. 나로서도 내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돈벌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곳 작업실은 도심 멀리, 변방에서 아름답고 오래된 숲을 간직하고 있고, 요즘 대세인 오래된 건물을 재생시켜 시민들에게 문을 연 곳이라, 그 누구라도 감탄하는 곳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경기상상캠퍼스)에 들어오길 오랫동안 바랐고, 기다려 왔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오고 싶다는 소원과, 더불어 이곳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싶다는 소망. 어쩌면 이뤄가고 있고, 이룰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결혼해도 괜찮을까?

경기상상캠퍼스 숲
▲ 경기상상캠퍼스 전경 경기상상캠퍼스 숲
ⓒ 고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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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결혼할 사람은 있나? 그 사람은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할까? 나는 결혼이란 것을 할 기반과 준비 따위가 되어있나?

'결혼이 대체 무엇이길래' 하는 제동이 브레이크가 이쯤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밥 말이 구인공고를 보고, 너에게 내가 '김밥 말아도 되냐'고 물었을 그즈음부터 말이다.

나는 마스다 마리 작가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만화책을 사서 보았고, 내 남자친구에게는 '고령화와 비혼화가 만난 사회'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라는 책을 구입하여 선물하였다.

내가 이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 '백수남 실수녀'(백만 원 수당을 받는 남자, 실업수당을 받는 여자)을 진행하기 전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을 추천받고 읽었기 때문에, 나의 물음에 대답하여 줄 책들과 사례들을, 우리나라보다 앞서 사회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통해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밥 말아도 돼?' 하는 내 물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늘 전전하였던 계약직을 직업으로 삼아왔던 삶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김밥을 마는 내 모습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너덜너덜한 자존감과 잣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것이 내 최선이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나는 좀 유별난 거 같아."

아마도, 대학 졸업 동기들에 삶을 비교한 남자친구의 자조적인 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중소기업, 대기업 다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데, 나는 내가 선택한 선교단체 간사 생활을 내려놓고, 지금 협동조합에서 일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그에게 나는, 당당하게 "난 어릴 때부터 유별났었어! 그러니 우리 같이 앞으로도 유별나게 살아내 보자! 유별나게 살자!" 하는 파이팅 넘치는 대꾸를 하였다. 그래야만 될 거 같았다.

우리 둘의 대화는 그렇다. 빈약하기 그지없는 삶에 기반 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 위에 서로를 드러내 놓고 위로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그 친구와 만남이 유별날 수도 있고,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만큼, 같이 살아보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해 보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먹은 나이와 주변에 상황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답게 우리답게 살아보기 위해, 우리 삶을 가지고 기획해 보려고 한다. 함께 살아가기에 관해서 말이다.


태그:#비혼주의세대_그리고_함께살기에_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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