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금융위기는 국민 대다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현대건설 배구단은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90년대 호남정유(LG정유)에 밀려 번번이 정상 문턱에서 좌절하던 현대건설은 배구단을 해체한 한일합섬에서 구민정, SK케미칼에서 강혜미, 장소연을 차례로 영입하며 전력을 대폭 끌어 올렸다. 여기에 이숙자(은퇴), 정대영(한국도로공사), 한유미 등 초고교급 유망주들을 싹쓸이하면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겨울리그 5연패라는 황금기를 맞았다.

현대건설은 프로 출범 후에도 김연경(상하이)이라는 '여제'가 등장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외국인 선수 케니 모레노와 새로 영입한 '꽃사슴' 황연주가 맹활약한 2010-2011 시즌에는 프로 출범 후 첫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황연주는 2010-2011 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그리고 올스타전의 MVP를 모두 휩쓸며 'MVP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5위로 밀려났던 2013-2014 시즌을 제외하면 언제나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여자부의 대표적인 인기팀으로 군림하던 현대건설은 지난 2016-2017 시즌 4위로 밀려나며 봄배구 진출에 실패했다. 이에 현대건설은 양철호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현역 시절 '컴퓨터세터'로 이름을 날리던 이도희 감독에게 팀을 맡겼다. 이도희 감독은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에 이어 V리그 여자부의 '여성감독 열풍'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15-2016 시즌 우승 현대건설, 1년 만에 봄배구 탈락

 8시즌 연속 블로킹 1위에 빛나는 '거요미' 양효진도 현대건설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8시즌 연속 블로킹 1위에 빛나는 '거요미' 양효진도 현대건설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은 2015-2016 시즌 양효진과 황연주, 그리고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를 앞세워 두 번째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기업은행과의 챔프전에서는 3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빼앗기지 않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했다. 챔프전에서 51.61%의 공격 성공률로 55득점을 기록한 '거요미' 양효진은 챔프전 MVP에 올랐다.

2014년12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황현주 전감독에게 우승컵을 바친 현대건설은 2016-2017 시즌에도 우승에 가장 가까이 있던 강 팀이었다. 공격의 삼각편대와 염혜선 세터(기업은행),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베테랑 센터 김세영 등 우승의 주역들이 건재했고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했던 김연견 리베로와 정미선, 고유민 등도 2015-2016 시즌의 우승을 통해 더욱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지난 시즌은 양철호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상대의 집중마크를 당한 에밀리의 위력은 2015-2016 시즌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고 어깨부상을 안고 시즌을 치른 양효진은 더 이상 위력적인 공격수가 아니었다. 무릎 수술을 받은 수비형 레프트 정미선의 장기 결장도 치명적이었다.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자 양철호 감독은 주전에게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젊은 선수들은 경기에 나설 기회가 줄어드는 반면에 주전들에겐 과부하가 걸리면서 시즌을 거듭할수록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전반기를 3위로 마친 현대건설은 후반기 15경기에서 4승11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KGC인삼공사에게 추월을 허용하고 봄배구 진출이 좌절됐다.

에밀리가 득점 5위(609점), 수비(리시브+디그) 3위(세트당 6.44개)에 오르며 공수에서 분전했고 '트윈타워' 양효진과 김세영이 블로킹 부문 1,2위를 휩쓸었지만 상대는 더 이상 현대건설의 단조로운 경기패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현대건설의 두 번째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던 양철호 감독은 3년 만에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현대건설, 봄배구 복귀할까

 '밍키' 황민경은 현대건설에게 부족했던 끈기와 파이팅을 심어줄 것이다.

'밍키' 황민경은 현대건설에게 부족했던 끈기와 파이팅을 심어줄 것이다. ⓒ 한국배구연맹


2017-2018 시즌 현대건설의 선택은 여성사령탑 이도희 감독이었다. 이도희 감독은 현역 시절 호남정유와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슈퍼리그 5연패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이끌었던 명세터 출신이다. 이미 여자배구에는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이라는 성공사례가 있는 만큼 현대건설에서는 이도희 감독이 또 한 명의 여성 감독 돌풍을 일으켜 주길 기대하고 있다.

과거 호남정유에는 장윤희를 비롯해 홍지연, 박수정, 정선혜 등 걸출한 공격수들이 많았지만 그 바탕에는 탄탄한 조직력과 안정된 수비가 있었다. 이도희 감독 역시 수비와 기본기를 강조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서브 리시브가 가능한 윙스파이커 엘리자베스 캠벨을 지명했고 FA시장에서는 수비가 뛰어나고 파이팅이 좋은 살림꾼 황민경을 영입했다.

문제는 FA자격을 얻은 주전 세터 염혜선이 기업은행으로 이적하면서 팀 내 세터가 이다영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도희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차기 시즌 주전세터 이다영을 집중 지도했고 이다영은 지난 천안·넵스컵에서 한층 안정된 토스워크를 선보였다. 현대건설은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포항여고의 김다인 세터를 지명했지만 사실상 이번 시즌 대부분을 이다영 세터 혼자 이끌어야 한다.

노장 김세영이 컵대회에서 세트당 1.38개(1위)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한 가운데 지난 7월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허리를 다쳤던 양효진의 건강한 복귀는 이번 시즌 현대건설에게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양효진은 시즌 개막에 맞춰 재활 속도를 올리고 있지만 공수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양효진이 2015-2016 시즌 만큼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현대건설의 중앙은 상당히 허전해질 수밖에 없다.

엘리자베스와 이다영이 컵대회에서 보여준 기량을 정규리그에서도 유지하고 양효진이 예전처럼만 활약해 준다면 현대건설의 전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다만 황민경이 무릎, 양효진이 허리와 어깨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황연주의 높이는 시즌을 거듭할 수록 낮아지고 있다. 기대 요소만큼 불안요소도 가득한 현대건설이 이도희 신임 감독과 함께 '봄배구 복귀'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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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여자부 프리뷰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이도희 감독 양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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