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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황량한 마을. 이곳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그리고 다시 신칸센으로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후쿠시마현의 어느 마을이다.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풍경. 나는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나마 원전 출입통제 구역 바로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들을 볼 수 있었다.

뉴스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국가의 책임이 없다는 일본 법원 판결 소식이 들려왔다. 또 얼마 후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동이 중지된 원전 2기가 다시 재가동 됐다는 언론 기사도 눈에 띄었다. 그 외 식품 수입 보도를 비롯해 쉴 새 없이 후쿠시마에 대한 비판 보도가 나온다. 우리나라도 원전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먼 산 바라보듯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까닭에 언론 보도를 통해 진척상황을 눈여겨 봤지만 어디서도 희망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우연한 계기로 후쿠시마행

후쿠시마 피해 현황에 대해 지역 의료생협에 근무하는 내과의, 사이토 오사무씨가 강연을 하고 있다
▲ 후쿠시마 의료생협의 내과의 사이토 오사무 후쿠시마 피해 현황에 대해 지역 의료생협에 근무하는 내과의, 사이토 오사무씨가 강연을 하고 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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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우연한 계기로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이하 민의련)에서 개최하는 청년 잼보리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다. 개최 장소는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하나노유'라는 호텔이었다. 민의련은 일본 전역에 걸쳐 2010년 기준 147개 병원, 525개 진료소, 322개의 방문간호스테이션, 7만여명의 직원들이 민의련에 소속되어 있다.

이 의료기관들은 '차별없는 평등의료' 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며, 민주의료기관들이 함께 만든 강령에 따라 각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평화 헌법을 수호하고, 의료영리화를 반대하는 등 아베 총리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중 하나다. 이 단체는 2년에 한 번 7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보여 청년 잼보리대회를 개최하는데, 이번 후쿠시마 잼보리는 후쿠시마 지역 민의련 기관들의 바람으로 이곳에서 열게 됐다고 한다.

민의련 후쿠시마 잼보리의 주제는 '후쿠시마 원전의 현실' 이었다. 700여 명 남짓의 청년 의료인들이 모여 후쿠시마 원전 상황에 대한 강의도 듣고, 실제로 출입제한구역 인근까지 시찰하며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일정의 대부분이다. 참가자들이 이곳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을 외부에 널리 알려 더 이상 원전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지역민들의 바람이 이 대회에 투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산 음식 과연?

잼보리 개회식을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강연에 들어갔다. 강연자는 현재 후쿠시마 의료생협 와타리병원 내과의로 근무하고 있는 사이토 오사무 선생님이다. 사이토 오사무 선생님은 후쿠시마 현립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히로시마 대학 원폭 방사능 의학 연구소에서 내과. 임상 혈액학을 연구한 경력을 갖고 있다.

강연자는 후쿠시마의 현 상황에 대해 여러 데이터를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해나갔다. 첫 번째로 원전으로 인한 토양오염을 언급했다. "후쿠시마에서 생산되는 쌀 2000가마니 모두 전량 조사가 이뤄지고 있고, 그 결과 방사능 수치가 타 지역에서 생산된 쌀과 크게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회피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에 따라 "점차적으로 수확량이 줄어 농사가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바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토로했다. "오염된 방사수가 바다로 방류되었지만 오염제거 작업을 꾸준히 한 결과 97가지 종류의 오염도를 측정해서 기준치 이하로 오염도를 낮췄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시장에서 어떻게 볼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라며 발표를 이어갔다. "언론에서 후쿠시마산 농산물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일부 제대로 검수하지 않고 반출되는 부분이 크게 부각된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강연자는 마지막으로 심리조사 결과를 보여줬다. 도표를 보여주며 "현 내의 가설 주택이나 피난자들 582만 가구를 조사한 결과, 동거 가족 중에 심신 불안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7.5%에 달해 우울 진단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였다. 원전 사고로 인해 지역 경제가 붕괴됨과 동시에 지역민들의 정신 건강에도 큰 피해를 줬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강당에 모인 대다수 참가자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보상지역 논의에서 제외된 이와키시는?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사회복지센터에 도착했다. 이곳 이와키 시는 원전사고 지역과 거리가 먼 관계로 보상지역 논의에서조차 제외된 곳이다. 하지만 여러 사례를 봐왔듯이 원전 사고에 대한 후유증은 일부 지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된다. 바로 이곳,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상황도 원전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우리는 사회복지센터에 마련된 강연장으로 향했다.

강연장으로 들어서니 70세 정도로 보이는 남성분이 강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토 타츠야'. 원전사고 피해 이와키 시민 소송원고단 단장을 맡고 있다는 그는 원전과 관련해서 많은 강연을 해왔었는지 준비된 자료들을 매끄럽게 우리에게 전달했다.

시민소송단장 이토 타츠야씨가 지역피해 상황과 향후 미래에 대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이와키 시민소송단장 이토 타츠야 시민소송단장 이토 타츠야씨가 지역피해 상황과 향후 미래에 대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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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위치한 어느 중학교를 예로 들며, 2010년 기준 255명이었던 학생 수가 2017년 43명이 되었다는 어느 신문기사를 참조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학교 학생 수만 보더라도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 상태로 계속된다면 이 마을이 지속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은 피난을 떠난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10년 20년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더라도, 그때까지 어르신들이 생존하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전에 모두 돌아와도 괜찮다고 얘기해도 막상 돌아올 분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소수로 몇 분이 돌아온다 한들, 지역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데 의식주를 잘 해결하며 살 수 있을까요?" 라며 우리에게 되묻기도 했다.  

"현재 후쿠시마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180만이 되는데, 이들에 대해 어떻게 국가에서 지원할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조차 없다"는 그는 "후쿠시마는 끝났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도쿄 전력과 국가가 나서서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며 강한 어조로 얘기했다.

그는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그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국가가 나서서 파악해야만하고,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가정에게 적절히 보상할 수 있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 말은 현실에서 벌어진 피해는 큰 반면 이와키시가 보상 논의에서 제외된 것에 따른 일종의 분노로 느껴졌다.  

이와키 지역 소송원고 단장으로 일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는 그는, "예를 들어 미나마타병은 수은 중독이라는 게 확실하지만 방사능을 둘러싸고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원전 방사능 피해가 자녀까지 유전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단 한 사례 있었지만, 우리 지금 이곳에 사는 후쿠시마 사람들은 유전을 비롯해 현재와 미래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며 "과학적으로 분명히 해서, 지역의 저선량 피폭 피해가 현지 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꼭 밝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연을 듣고 다시 버스로 탑승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그곳엔 이와키시의 방사능 수치를 나타내는 장비가 설치돼 있었고, 0.092 μ sv/h 로 낮은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옆엔 이와키를 지켜줄 거란 믿음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삶에 대한 그들의 소망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었다.

현재 이와키시의 방사능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 이와키 시에 설치된 방사능 센서 현재 이와키시의 방사능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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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속되는 처참한 상황

우리는 다시 버스에 탑승해 원전 30km 부근까지 돌아보기로 했다. 원전 사고 지역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방사능 센서에 표시된 수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인근을 돌아보며 여러 장면이 눈에 띄었다. 방사능 물질들을 소각처리 하는 시설도 보였고,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쌓아놓은 포대들도 눈에 띄었다.

도로를 계속 달리면서 이곳 인근 오나하 생협병원 전무인 '하세베 코오'씨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이 출입제한 구역과 거주 제한구역으로 나뉜다고 알려줬다. 거주 제한구역은 출입은 할 수 있지만 거주는 할 수 없는 곳, 출입 제한구역은 거주는 물론이고 출입조차 할 수 없는 곳이 이 도로를 기준으로 나뉜다는 얘기다. 그에 따라 보상의 정도도 달라질 것이며, 자발적으로 지역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선 보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을 전했다.

버스안에서 후쿠시마 현장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 지역 의료생협 전무 하세베 코오씨 버스안에서 후쿠시마 현장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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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사고 지역에 가까울수록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
▲ 후쿠시마 원전 센서 원전사고 지역에 가까울수록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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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원전 사고 이후 제대로 된 대처 방안을 전달받지 못해, 자위대가 들어오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며 정부의 안일한 대처도 꼬집었다. '하세베 코오'씨는 이곳 인근에 거주하며 생협병원 전무로 일하고 있는데,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자신들마저 피난을 간다면 지역이 더 크게 동요됐을 것"이라며, "꼿꼿하게 남아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정부에 투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원전 작업자들의 건강도 언급했다. 예전에는 철저히 방호복을 입었는데, 요즘은 일반 작업복을 입고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자신의 건강이 걱정되지만, 밥벌이가 끊길까 봐 내색도 못 하는 지경이라며, 원전에 가깝게 일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고 귀띔해줬다. 몇 명의 작업자들이 의료기관을 찾아와 3~4시간씩 건강상담을 받은 일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2~3시간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계속 달렸다. 중간에 차에서 내렸다간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방사능에 피폭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인근을 빠르게 지나갔다. 차 안에서 둘러본 지역은 황폐함 그 자체였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작업자들뿐이었고, 버려진 땅으로 느껴질 만큼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후쿠시마 지역민의 현재

방사능 오염물질들을 제거하고 쌓아놓은 흔적들
▲ 방사능 오염 물질들 방사능 오염물질들을 제거하고 쌓아놓은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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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오염물질들을 처리하고 쌓아놓은 흔적들
▲ 방사능 오염 물질들 방사능 오염물질들을 처리하고 쌓아놓은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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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사고로 인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현재. 원전 지역 인근 노인들 중 일부는 지역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것이 두려워 남은 생을 이곳에 남겠다고 하고, 젊은이들은 후쿠시마에서 멀리 떨어져 살기를 바란다. 직장이 있는 가장은 후쿠시마에 남고, 처자식은 멀리 이주시켜 주말부부로 지내는 가정도 많다고 한다.

원전은 이곳 지역민들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앗아갔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보상 문제라든지 향후 대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도쿄전력과 정부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원전 찬성론이 고개를 드는 상황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잼보리 일정을 마치고 도쿄로 다시 돌아오는 신칸센 안에서 한국 원전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일본보다 원전 밀집도가 높은 한국의 상황에서 원전 재앙이 일어난다면 국가의 존폐는 장담할 수 없다. 현재 무절제한 전기사용이 주는 편리한 생활을 내려놓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전기소비를 덜 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건강미디어협동조합(http://www.mediahealth.co.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후쿠시마, ##민의련, ##원전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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