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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충북여성장애인연대입니다만... 우리 회원들을 위해 여성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리산은숙(전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장)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8월 24일이었다. 강연일은 1주일 뒤인 8월 31일. 한 달간 일본에서 머물다 막 귀국한 터라 처리할 일이 쌓여 청주까지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성 장애인' 들에게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려줬으면 한다는 말에 선뜻 응했다. 그리고 지난 8월 31일 오전 10시 30분, 강연장에 들어섰다.

교실을 꽉 메운 여성장애인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 여성장애인 1 교실을 꽉 메운 여성장애인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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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명 되는 여성 장애인들이 빼곡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장애 정도가 심해 보이는 분들이 꽤 눈에 들어왔다. 아뿔사! 준비해온 이날 강연 자료가 혹시 이분들에게 어려운 내용이 아닌가 하고 내심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1시간 30분 주어진 시간 동안 원래는 40분하고 10분 쉬고 다시 40분을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참석자들의 강연을 듣는 태도가 너무나 진지해 쉬지 않고 내리했다. 수많은 곳에 강연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강연태도가 진지한 곳은 보질 못했다.

"저는 지체장애자로 학교 공부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오늘 강연을 듣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이 계신 줄 처음 알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강연 도중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앞으로 더 많이 여성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강연을 듣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 충북여성장애인연대 2 강연을 듣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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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상담소장 이선희 씨, 지체장애 1급 김태순 씨, 기자
▲ 충북여성장애인연대 3 성폭력상담소장 이선희 씨, 지체장애 1급 김태순 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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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1급을 가진 김태순(55)씨의 말이다. 골형성부전증이란 희소병을 앓고 있는 김태순씨는 강연장 맨 앞줄에서 휠체어 상태로 강연을 들었다. 강연 도중 혹시 회원들이 지루할 듯해 중간 중간에 퀴즈를 냈는데 올해가 광복 몇 해인가를 묻는 질문에 '72주년'을 정확히 맞춘 분이다.

'장애인들에게 여성독립운동 이야기가 어렵진 않을까?'라는 생각은 1시간 반 동안 이들과 호흡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틀린 생각임을 깨달았다. 이번 강연을 통해 '장애인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대한민국에서는 '인문학' 강의가 유행처럼 번져 크고 작은 강연 포스터를 동네 골목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지만 정작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한발 다가서는 '찾아가는 인문학'이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들 좋아하고 관심이 큰데 말이다.

혼자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사람들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강연을 하면서 다루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바로 '역사'였다. 일제 침략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야기를 펼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차근차근히 일제 침략의 역사를 다뤘다. 어렵지 않게 말이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 속에서도 지치고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이들은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함께 독립정신 구호를 외쳤다.
▲ 충북여성장애인연대 4 강연을 마치고 함께 독립정신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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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앞이 안보이는 시각장애인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심영식 애국지사 그리고 온 가족을 독립운동에 잃고 57세에 자신도 만세운동에 뛰어들다 잡혀 일제의 고문으로 두눈을 잃고 11년의 삶을 살아야했던 김락 지사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모두 숙연한 분위기였다.

또한 올 8.15 경축식장에서 생존 애국지사인 오희옥(92) 지사의 아일랜드 민요 올드랭사인에 맞춘' 옛 애국가'를 들려주면서 지금의 애국가가 나오기 전에 14살의 나이로 중국에서 나라없는 설움 속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야기를 해주고 함께 지금의 애국가를 부르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 신독립군이 된 듯 감격의 목소리로 강연장이 떠나갈 듯 불렀다. 장애를 가진 분들이라 가능한 장면일지 몰랐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만큼 강연의 한토막 한토막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자세도 태도도 진지했으며 그 어떤 강연장에서 느끼지 못한 열의도 느꼈다. 강연 내내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도 정상인들이 날마다 누리는 '인문학 강의'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어렵지 않고 쉽고 재미나게 해야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닐지 모른다.

충북여성장애인연대(대표 이현주)는 돌봄센터, 다울교육문화센터, 청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일터다울 (다함께 하는 우리의 약자) 등을 갖춘 시민단체이며 여성장애인들의 자활과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교육문화센터에서는 난타교실, 기타 교실, 캘리그라피 배우기 등등 취미활동도 할 수 있다. 또한 2008년부터는 '일터다울'에서는 국산콩으로 만든 다울두부를 만들어 파는데 콩을 한 알 한 알 정성껏 골라 장애인들의 손으로 정성껏 만들어 파는데 인기라고 한다.

이날 나에게 강연 의뢰를 해온 리산은숙씨는 일터다울에서 만든 두부를 몽땅 사서 비지와 함께 강연 참석자들에게 나눠주는 따스한 기부의 정신을 실천했다. 나도 한 모 받아와 찌개를 끓여 먹으며 장애인들의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뜻 깊은 강연이었다.

국산콩으로 장애인들이 정성껏 만드는 두부
▲ 다울두부 국산콩으로 장애인들이 정성껏 만드는 두부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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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여성독립운동가,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리산은숙,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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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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