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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1심 선고가 내려진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부 승소 판결은 받은 노조측 관계자들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1심 선고가 내려진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부 승소 판결은 받은 노조측 관계자들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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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보기가 두렵다"

김성락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이하 '기아차 노조') 지부장은 통상임금 판결을 앞둔 지난 8월 25일 이와 같이 심경을 밝혔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을 두고 대다수 언론은 통상·최저임금 압박에..기업들 "해외로" (세계일보), 사측 패소땐 최대 3조폭탄..산업계 전체론 38조 부담 (서울경제), [후진하는 한국車]"노조 샴페인병에 국내 車 최악 위기"(아시아 경제) 의 제목으로 통상임금 소송이 기업의 경영을 위협한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 냈다. 김지부장은 "노동조합에서 몇 차례 보도자료를 제시했지만 언론에는 단 한줄도 노동조합의 입장이 전해지지 않았다"고 답답해 했다.

2011년 10월 2만7천424명의 기아차 노동자들이 법원에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휴일과 연장, 그리고 야간근로에 따른 초과근로수당을 재산정해 지급해 달라는 취지의 임금 청구소송이었다. 그로부터 장장 6년만에 1심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권혁중 부장판사)는 정기상여금과 중식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이를 통상임금에 반영하여 재산정한 추가수당 소급분 4223억 원을 기아차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회사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초과수당을 소급하여 지급할 경우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이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반면 회사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것이어서 "신의칙에 반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노조의 손을 들어 줬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이를 반영하여 연장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 것이다. 정기상여금을 빼고 연장과 야간, 휴일근로를 시켜 발생한 이익은 회사가 누렸고, 매출실적이 나쁘다 볼수 없을 뿐만 아니라 회사가 제시한 근거로는 사드보복등에 따른 재정상의 위기를 인정하기 어렵고, 지금까지 지급한 경영성과급 액수로 볼 때 지급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기아차는 앞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이에 따른 소급청구가 인정될 경우 인건비 부담으로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이 불가피한데 그러면 우리 경제의 중대 위협이 될 것이라며 사법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기아차가 노동자들에게 마땅히 지급했어야 할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이제 와서 기업 존립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기아차의 항변을 인정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판결 직전 '신의칙' 요건을 인정하여 기업의 손을 들어줬던 아시아나항공 판결(서울고등법원2014나32153) 과 현대중공업 판결(부산고등법원0215나1888), 그리고 가장 최근의 금호타이어 판결(2016나10826)을 들고 나와 "기아차가 유리할 것"이란 기사를 쏟아 냈지만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런데 개운치가 않다. 이번 소송의 승소로 기아차 노조 조합원들은 4223억을 지급받게 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두고 '로또 맞은 돈'이라 생각한다. 기아차 노조의 승소를 전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라. 기아차 노조에 대해 우호적 댓글 보다는 기아차 노조의 통상임금 소송을 비판하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법정에선 승리했지만 여론재판에서는 패배한 것이다.

법원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기아차 노동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했는데 왜 시민들은 불로소득이라 생각할까? 기아차 노조가 기업과 보수 언론의 프레임전쟁에서 진 것이 결정적이다.

기아차 노조가 회사에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한 가장 큰 이유가 과연 돈 때문일까? 기아차 노동조합의 성명서를 한번이라도 살펴봤다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기아차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한 가장 큰 이유는 잔업과 특근으로 유지되는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대한민국의 연간노동시간은 OECD 국가중 두 번째로 길다. 장시간 근로로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이 유지되다 본이 초과수당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기본급을 낮게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정기상여금이라는 특별급여로 달랬다. 노동부는 1988년 이래 행정지침을 통해 연간을 단위로 설정하여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이렇듯 경제주체들이 장시간 근로에 대한 묵시적으로 합의한 결과가 바로 2013년 시작된 '통상임금 전쟁'이다. 당시 대법원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 판결했다.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사간 통상임금 소송전이 시작됐고 그전쟁의 가장 최전선이 바로 잔업과 특근으로 '높은 임금'을 유지했던 자동차 업계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통상임금이 높아진다. 기본근로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회사는 기존인력으로 잔업과 특근을 통해 생산성을 유지하는 방식이 어려워 진다. 기아차 노조는 기본급을 안정화 시키고 잔업과 특근을 점차 줄여가며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고자 했다. 부족한 인력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여 채우자는 요구를 사측에 제시했다.

실제 기아차 노조는 지난 6월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를 통해 현대차 그룹 소속 17개 노동조합과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여 비정규직의 차별개선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사회연대기금의 종자돈이 바로 기아차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을 통해 확보하게 될 통상임금 소급분이다.

그러나 이런 기아차 노조의 통상임금 소송의 근본적 의의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대기업 정규직 귀족 노조의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왜일까? 판매부문의 대리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승을 거부하면서 생긴 갈등이 결정적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를 부담스러워 하는 노동조합이 통상임금 소송을 통해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한다면 누가 믿을까? 기아차 노동조합이 대리점 판매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입을 거부했다고 시민들에게 인식되는 그 순간 이제 더 이상 기아차 노조의 진심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와 언론은 임금 인상분의 20%를 출자하여 협력사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사용하는 임금공유제 제시한 SK하이닉스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금속노조와 기아차 노조의 사회연대기금에 대해서는 '남의 돈으로 생색낸다'며 온갖 비난을 쏟아 냈다.

기아차 노동조합은 지금이라도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의의부터 다시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통상임금 소송의 진정성은 투박하게 편집된 노동조합의 소식지만으로 시민들에게 전달될 수 없다.

여기에는 노동계의 지원과 연대가 필수적이다. 통상임금 문제는 기아차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장시간 근로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각자 소속 노동조합의 소송을 지휘하고 지원하며 통상임금 소송을 통해 노동계가 추구하는 가치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승소 소식에 현장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기아차와 비슷한 형태로 설계된 정기상여금을 지급받는 회사에서는 벌써부터 조합원들이 노조에 통상임금 소송 여부를 문의하기 시작하는 곳도 있다. 기아차 승소사례에 고무된 조합원들의 통상임금 소송 압박에 무조건 끌려가거나 조합원들에게 통상임금 소송으로 확보할 수 있는 소급분의 달콤한 이익만을 선전해서는 노동조합은 여전히 국민들에게'로또 맞은 돈'을 노리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춰질 것이다.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할때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노총 미조직비정규사업단 부천상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기아차 통상임금 , #통상임금,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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