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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0년의 서울살이와 직장생활을 내려놓고 제주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서른일곱 살 늦은 나이에 '육아'의 세상에 갑자기 던져져 온갖 추태를 보이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육아 중인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웃기고도 모자라게 육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드리기 위해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연재해보려 합니다. - 기자 말

하루에 몇 시간씩 앉아서 수유하는, 이른바 '부처님 생활'이 석 달쯤 됐을 때, 무릎에 문제가 생겼다. 다리를 제대로 펼 수가 없을 정도로 아프고,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 그토록 기다리던 백일이 찾아왔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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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선배들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듣고, 생후 100일 즈음에 '눕수'로 수유 자세를 바꿔보았다. 베개를 옆구리에 끼고 높이 조절을 한 다음, 나도 아기도 마주 보고 누워서 수유하는 자세다. 눕수 첫날 나는 천국을 맛보았다. 아니, 이렇게 편한 것을 내가 왜 이제야 실행에 옮겼을까?

하지만 천국을 맛본 것도 잠시, 눕수는 내게 무릎의 평화를 주는 대신 너무 큰 것을 앗아가 버렸다. 밤중에 비몽사몽으로 울 때마다 누워서 젖을 덜컥덜컥 내준 바람에, 아이는 젖을 물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젖 물고 자는 버릇은 엄마에게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서너 시간으로 겨우 늘려놨던 밤중 수유 텀은 두 시간, 한 시간으로 삽시간에 줄어들고 말았다. 아이는 밤중에 수시로 깨 젖꼭지를 찾았다. 

시간마다 칭얼거리는 아이 때문에 나의 수면은 엉망이 되었다. 잠결에 아기에게 짜증도 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면 '아이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아이에게 사과하고, 반성하고, 다시는 눕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밤만 되면 나는 눕수의 유혹을 이겨내질 못했다. 어떻게든 누워 있으려고 하는 엄마와 눕는 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아이가 만나 곤욕을 치르는 나날들이 계속됐다.

탈부착 가능한 젖가슴 어디 없나요

침대에 모로 누운 채 밤마다 젖꼭지를 빨리는 상상을 해보라. 어떤 날은 잠이 들지 않아 날밤을 새우고, 화가 치밀어 울기도 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수학 문제를 밤새 푸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며칠 전까진 모유량 때문에 가슴이 투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눕수를 하고부터는 가슴에 지퍼가 달려서 뗐다 붙였다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이가 울거나 보채면 나는 옛날 할머니들처럼 젖을 훌러덩 까고 젖꼭지를 내주었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울지 않고 금세 잠이 들었다. 나의 젖꼭지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단, 젖 없이는 못 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매일 밤잠을 설치고 나면 나는 또 '그래, 누구를 탓하랴, 내가 들인 버릇인데…' 하며 자책했다.

내가 힘들어하자 남편은 퇴근길에 매일같이 유아용품점에 들러 공갈젖꼭지를 사오기 시작했다. 짧은 것, 길쭉한 것, 납작한 것, 실리콘 재질, 고무 재질…. 세상에 공갈젖꼭지 종류는 왜 이렇게 많은 건가. 하지만 엄마 '쭈쭈'에 길든 아이는 그 어떤 공갈젖꼭지도 물지 않았다. 매일 밤 사투를 벌였다. 젖을 물렸다가 잠이 들었다 싶을 때 공갈젖꼭지로 싹 바꾸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 나에게 공갈을 치려고 해? 퉤!' 하며 귀신같이 뱉어냈다.

이후로도 몇 개를 더 샀지만, 아이는 물지 않았다.
▲ 남편이 퇴근길에 매일 사오던 공갈젖꼭지 이후로도 몇 개를 더 샀지만, 아이는 물지 않았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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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이는 생후 10개월 차에 들어갔는데, 나는 아직도 밤에 수시로 일어나 젖을 물린다. 한동안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성장통이나 이앓이가 찾아오면 아이는 고집스럽게 젖을 찾았고, 나는 백기를 들고 젖을 내줬다. 아직도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인터넷 속 '똑똑이 엄마'들에게 주눅 들다

임신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일 '눈팅'을 하는 온라인 카페가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임신'으로 검색해 맨 처음 뜨는 곳엘 가입했는데, 알고 보니 꽤 유명한 카페였다. 대충만 훑어봐도 '아 이곳에서 아이템 하나가 엄마들 눈에 띄면, 책이든 출산용품이든 날개 돋친 듯 팔리겠구나' 싶었다.

워낙 규모가 큰 카페라, 임신준비·임신·난임·출산·수유 등 질문 방도 체계적으로 세분돼 있었고, 키워드만 검색하면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이미 누군가가 해놓아 참고만 해도 충분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또 기상천외한 질문이나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다. 뭘 이런 것까지 물어보나 싶은 것들. 예를 들면 "저 임신 몇 개월인데 파인애플 맛 나는 아이스크림 먹어도 되나요?" 같은 것들. 당시 나의 산부인과 주치의는 술, 담배 빼고 다 즐기라고 했는데…. 온라인 카페에서 사람들의 글을 검색하다 보면, 임산부는 아무것도 먹어선 안 될 것만 같았다.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던 나는 글을 읽다 괜한 걱정만 사게 됐다.

또 본인의 배 사진을 찍어 몇 개월로 보이는지 수십만 불특정 다수에게 퀴즈를 내는 글도 자주 올라왔다. 그건 본인이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또 그런 글을 보다 보면, 내 배가 주수에 비해 큰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카페 글에 몰입할수록 나는 걱정과 의심을 더 사서 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틈만 나면 그곳에서 여러 가지를 검색해봤다. 임신방, 출산방, 신생아방, 수유방을 전전하며 매일 같이 정답 없는 물음을 검색했다. 트림 어떻게 빨리 시키나요, 모유량 어떻게 늘리나요, 젖 물고 자는 아기 어떡하나요….

"우리 아기는 50일 이후로 통잠 자요."
"젖 물고자는 것만큼 나쁜 버릇 없어요. 당장 수면교육하세요."
"사흘만 애 울려보세요. 처음엔 네 시간, 그다음엔 두 시간 이렇게 줄어들 거예요."

젖물고 자는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고민에 달린 댓글을 보면 괜히 주눅 들었다. 수면교육 성공기라며 올린 엄마들의 블로그를 보면서도 그랬다. 나는 수면교육을 할 만큼 단호하지 못하고, 아이의 울음소리도 참지 못한다. 어떻게 아이가 우는데 두 시간씩이나 지켜보고만 있나. 나는 20초도 못 견디겠던데. 어쩜 엄마들이 이렇게 단호하고 똑소리 날까. 나는 멍청하고 미련해서 밤마다 이렇게 고생인가. 

'나만 이렇게 못하나 봐.'
'내가 너무 우유부단해서 그래.'

처음 하는 엄마 노릇에 부정적인 생각은 참 쉽게도 마음을 파고든다. 하지만 참 희한하게도 내 주위 지인들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야, 이제 10개월 '밤수(밤중수유)'해놓고 징징거리냐. 나는 둘째 만삭 때까지 첫째가 내 배 위에서 잤어."
"나 17개월 동안 밤수했잖아. '단유(모유수유 중단)'하고 나니까 아이가 잠 잘 자더라. 말귀 알아들을 때까지 그냥 그러고 살았어."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열심히 고군분투 중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다가도 점점 예뻐지는 아이를 보면, 짜증나고 화나던 순간들이 후회되었다.
▲ 목 가누기 연습 중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열심히 고군분투 중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다가도 점점 예뻐지는 아이를 보면, 짜증나고 화나던 순간들이 후회되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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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벌써부터 남의 아기와 비교하며 육아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는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갖고 태어났을 텐데. 주변 출산 선배 지인들과 인터넷 카페의 똑똑 맘들의 조언은 하나같이 주옥같지만, 내가 그 조언에 아이를 맞추려는 노력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언과 매뉴얼보다 내 아이가 우선임을 놓치고 있었다.

번개보다 빠르다는, 초고속 육아 기억상실증

가을이 되면 아이는 첫 돌을 맞는다. 단유의 시기를 그때쯤으로 정해놓고 있다. 엄마 젖가슴을 세상 최고로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 내가 과연 단유를 성공할 수 있을까 벌써 걱정되기도 한다.

얼마 전 시어머니와 대화하다 단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괜찮다. 우리 손주 공갈젖꼭지 뗀 거 봐라. 알아서 자연스럽게 할 거야."
"어머니, 선우는 원래 공갈젖꼭지를 잘 안 물었어요. 우리가 억지로 물렸잖아요."
"어, 그랬냐?"

어머니의 왜곡된 기억에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어머니는 당신의 손주가 세상에서 가장 순한 아이라고 생각하신다. 사실은 당신의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순했는데, 손주가 2등 자리로 밀어낸 것이다. 남편은 어릴 적에 파리 한 마리와도 한 시간을 놀 정도로 착하고 순했단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전 손주의 기억도 이렇게 왜곡된 걸 보면, 어머니는 분명 아들의 좋은 점만 기억하고 계신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교육'과 '기다림'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갈팡질팡의 끝에는 늘 '기다림이 가장 좋은 교육이 아닐까'라는 문장이 서 있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와 내가 아이를 기다려주는 속도에 늘 차이가 있어 늘 조바심이 나지만, 언젠가 나도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모든 힘듦을 잊은 채 아이와 좋았던 점만 생각하는 날이 오겠지.

단유를 이토록 갈망하고 있지만, 언젠가 젖꼭지를 물고 자던 네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겠지.


태그:#육아, #밤수, #모유수유, #공갈젖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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