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란 안내가 나온 후 택시운전사 만섭이 조용필의 노래 '단발머리'를 따라 부르며 운전하는 모습이 나온다. 경쾌한 시작이다. 그런데 이 노랫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내 마음 외로워질 때면 그 날을 생각하고
그 날이 그리워질 때면 꿈길을 헤매는데
음-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조용필이 1979년에 발표한 1집 <창밖의 여자>에 수록된 '단발머리' 속 그리움의 소녀. 이 소녀는 과거 그 날의 그리운 대상이란 점에서 주인공 만섭과 닮았다. 영화 말미인 2003년 12월 한국에서 피터는 언론인상을 받으면서 수첩에 적힌 이름인 김사복에게 감사하며 그를 찾는다고 밝힌다.

또한 실화의 주인공인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2015년 11월 영상을 통해서 애타게 찾는 모습까지 다시 나온다. 피터에게 만섭은 평생 절대 잊을 수 없는, 1980년 5월에 홀연히 만난 은인이자 동지이다. 한편, 영화 속에서 만섭은 손님이 두고 간 신문에서 피터의 수상 뉴스를 접하고 흐뭇해한다.

"광주 돈 워리"

독일 ARD 방송국의 일본 주재원으로 8년째 근무하는 피터. 아무 일 없는 일본은 기자인 그에게 따분하다. 1980년 5월 19일, 남한에서 온 BBC 기자를 통해 남한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선교사로 위장하여 서울로 간다. 한국인 지인을 통해 광주가 현재 외부와 연락 두절인 데다, 지역신문이 빈 지면으로 발간되는 것에 의문을 품고 광주행을 결정한다.

촬영중인 기자 피터 1980년 5월. 일본주재원으로 있던 독일방송국 소속 기자 피터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광주로  떠난다. 만섭의 택시를 타고 본 그의 카메라 렌즈에 광주의 참혹한 현장이 담겨진다.

▲ 촬영중인 기자 피터 1980년 5월. 일본주재원으로 있던 독일방송국 소속 기자 피터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광주로 떠난다. 만섭의 택시를 타고 본 그의 카메라 렌즈에 광주의 참혹한 현장이 담겨진다. ⓒ 쇼박스


만섭은 밀린 사글세 10만 원을 갚기 위해 식당에서 들은 정보를 가지고 먼저 약속장소로 간다. 극장 앞에서 만난 만섭과 피터 그리고 그의 지인. 돈을 벌기 위해서 사우디에서 트럭 운전대도 잡은 만섭은 영어를 할 줄 안다며, "광주 돈 워리. 베스트 드라이버"라며 자신만만해 한다. 그들이 떠난 후, 본래 예약한 택시회사 소속 택시가 오자 피터의 지인은 당황해한다. 먼저 온 택시운전사는 어떤 상황인지 모를 테니까.

광주로 가는 길목에서 군인에게 제지를 당하자, 이제야 위험한 사태임을 파악한 만섭은 광주에 갈 수 없다며 버틴다. 그러나 피터가 영악하게도 "노 광주. 노 머니"로 화답하니 환장할 노릇. 결국 일단 5만 원을 받고, 나중에 나머지를 받기로 하고 돌진. 찰떡궁합 케미로 위기를 모면한 그들은 드디어 목적지인 광주 시내에 도착한다.

기자가 왔다는 말에 대학생 구재식을 비롯한 청년 시위대와 광주 시민들은 환호한다. 서울에서 대학생 시위를 보면 만섭은 "호강해서 저래", "사우디에 가서 고생을 해봐야~"라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광주에서 마주친 모습은 달랐다. 대학가요제가 가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구재식 마저도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섭은 이제 두렵다. 고장 난 택시도 고쳐주고 숙식도 마련해준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의 집에서 몰래 빠져나온다.

이러다 자신까지 죽으면 딸은 어쩌라고. 그는 사우디에서 번 돈을 아픈 아내를 위해 거의 썼다. 아내는 남은 돈으로 그에게 택시를 사게 했다. 딸을 키워야 한다며. 결국 아내는 죽고, 그에겐 택시 한 대와 딸만 남았다. 아내가 죽은 후 술로 지새우다, 어느 날 죽은 엄마의 옷을 껴안고 우는 딸을 본 후로 술도 끊었다. 지금까지 딸을 위해 아등바등 버티고 산 그였다. 

홀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린 딸이 있다는 것을 아는 피터와 태술은 그의 선택을 이해했다. 피터는 잠든 척하고, 태술은 기자가 주었다며 돈을 건네며, 서울로 갈 수 있는 다른 길도 알려준다. 그렇게 해서 만섭은 순천에 온다.

독일 기자와의 약속

피터, 구재식을 만나다 만섭과 피터는 광주에 도착하여 시위중인 대학생 구재식을 만난다.통역 담당으로 도움을 주던 재식은 나중에 위기에 처했을 때, 피터에게 세상에 광주의 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며 최후를 준비한다.

▲ 피터, 구재식을 만나다 만섭과 피터는 광주에 도착하여 시위중인 대학생 구재식을 만난다.통역 담당으로 도움을 주던 재식은 나중에 위기에 처했을 때, 피터에게 세상에 광주의 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며 최후를 준비한다. ⓒ 쇼박스


순천의 식당에서 만섭은 여주인과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에 놀란다. 그가 목격했던 광주의 진실은 가짜뉴스를 통해 서울에서 빨갱이 대학생들이 폭력배까지 이끌고 와서 군인을 살상한 사건으로 변질되었다. 허겁지겁 국수를 먹는 만섭에게 식당 주인은 주먹밥 한 개를 서비스로 준다. 많이 시장해 보인다며.

그 순간 그는 낯선 이에게 선뜻 주먹밥을 선물했던 이름 모를 광주 여인을 떠올린다. 그리고 무자비한 공수부대의 진압으로 죽어 나가는 시민들. 다시 서울로 데려가기로 약속했던 승객과의 약속도. 만섭은 장에서 산 딸의 분홍 구두를 보며 애써 다잡는다. 그리고 서울로 향하는 길에서 흐느끼며 노래를 부른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는 1979년에 발표한 노래로, 당시 혜은이는 동명의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기도 했다. 노랫말처럼 만섭은 피터와 약속을 했었다. 광주에 가서 다시 통금 전에 서울로 돌아오기로. 카센터에서 그는 전화를 한다. 집주인이자 친구인 상구 아빠에게 전화를 하여 지방이라 좀 늦는다고. 딸에게는 두고 온 손님이 있노라고. 그리고 그는 한강교 밑을 지나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광주로 향한다. 그리고 두고 온 손님을 다시 태우고 처음에 한 맹세를 지킨다.

피터도 광주시민들에게 다짐했다. 꼭 반드시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겠노라고. 그는 한때 위기에 처한 구재식과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에 절망하며 고뇌했다. 하지만 자신을 돕는 만섭 그리고 구재식과 시위대, 태술을 비롯한 택시기사들, 최 기자를 포함한 광주시민을 생각하며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는 일본으로 가서 그가 직접 본 광주의 참상을 전했고, 그 덕분에 광주는 폭도들의 도시가 아닌, 민주화 항쟁의 도시로 제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택시운전사> 포스터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항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온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를 광주에 데려다 준 택시운전사 김만섭이 겪은 며칠 간의 일정을 담았다.

▲ <택시운전사> 포스터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항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온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를 광주에 데려다 준 택시운전사 김만섭이 겪은 며칠 간의 일정을 담았다. ⓒ 쇼박스



택시운전사 5.18광주민주화항쟁 영화리뷰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