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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인 기자가 광주항쟁 당시를 취재하는 장면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인 기자가 광주항쟁 당시를 취재하는 장면이다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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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같이 영화 <택시운전사>를 같이 봐서 참 좋았어. 엄마는 영화 보는 내내 웃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래서 가볍게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면서 입술을 깨물기도 했지. 스무살이 된 딸은 어떤 느낌으로 이 영화를 봤을까?

엄마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0년, 당시 뭔가 잘못된 일이 일어나는 걸 알고는 있었단다. 너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밖에선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을, 뿌리가 없는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처럼 들었단다. 물론 TV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지.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당신들은 참 못마땅해 하셨지. 그 때 엄마는 어렸으니까 '그저 TV랑은 뭔가 많이 다른 거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단다.

대학에 입학해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걸 하는데, 대학 캠퍼스에서 관을 앞세우고 추모하는 몇몇 학생들을 보았지. 1987년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항의하는 행렬이었어. 학교 밖 세상이라고는 재수 학원밖에 모르던 엄마로서는 큰 충격이었단다. 더 놀라운 건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였어. '왜 지나치치지? 잘못된 거 맞잖아? 내 또래 학생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왜 같이 슬퍼하지 않는거지?' 그리고 알게된 논 픽션(Non Fiction)의 광주.

어쩌다가 보니 엄마의 대학 생활은 그 고민과 함께 시작되었네. 다 지나간 이야기니까 최루탄이 얼마나 매캐한지, 지랄탄이 얼마나 지랄같은지,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의 황금비율은 어떤지, 페인트를 지우느라 신나를 핸드크림처럼 썼던 그 시절 이야기는 그냥 접을게.

하지만 딸, 오늘 엄마는 이 영화를 보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단다. 영화는 2003년 독일 기자가 언론상을 받는 걸로 마무리를 하지.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그 기사를 신문으로 접하면서 영화에서 마지막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를 묻자 손님은 "광화문 갑시다"라고 대답을 한단다. 그 마지막 대사가 감독의 의도였든 혹은 아니든, 어쨌든 무거운 무게로 엄마의 가슴에 콱 박히는구나.

영화가, 문학이, 미술이 광주를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그래도 우리가 꼭 마무리 해야만 하는 일, 그것은 '역사에 대한 소환장'이라는 생각을 했단다. 독일이 유태인 학살범과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어떻게 끝까지 책임을 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고 자란 세대니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어.

딸이 재수를 하는 동안 일주일 내내 설거지를 하고 엄마에게 요구한 용돈이 단 돈 만원이지.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말이야. 엄마도 사주고 싶고, 맛있는 거 많이 해주고 싶지만, 스스로 참아내며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법을 배워가는 딸을 그냥 대견스럽게 지켜만 보고 있단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화가 나는 건, 나라를 팔아 부를 누린 그들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국회의원을 하고 있고, 잠시 대통령 '코스프레'를 한 누구는 교도소 문턱에 부딪힌 발가락이 부었다고 MRI 촬영을 하고, 10살도 채 안된 어린 아이는 단지 할아버지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몇백 억의 주식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상속받고,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된 것을 두고 '규정속도를 한참이나 위반했다'고 떠드는 자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전두환 회고록 편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전두환 회고록 편
ⓒ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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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저렇게 무참히 밟아 놓고 대통령이 돼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한자성어가 이심전(李心全心)으로 바뀔만큼 부당하게 재산을 모아 숨겨 두고는, 통장에는 29만 원 밖에 없다고 하고, 최순실재산몰수특별법에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서명하지 않은 당도 있단다.

다 지나간 일이니 적당히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한일 '위안부' 합의, 두 눈으로 아이들이 물에 잠기는 모습을 하루종일 보고 있어야만 했던 세월호 참사, 방산비리, 원전비리, 군 의문사, 인권 문제 등 밤새도록 나열을 해도 모자랄만큼 넘쳐나는 몰상식과 비상식적인 사건들 도 천지지.

딸, 엄마가 너의 나이였을 때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런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사회는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사회는 아직 많이 나아지지 않았고, 아직도 몰상식과 비상식이 존재하는 사회에 어쩌다보니 너와 내가 같이 살게 되었구나.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단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즈음 엄마의 가슴 속에 한가지 생각만 남았단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소환장을 내밀어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 해 겨울 수능이 끝나고 혼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너를 보면서, 엄마 마음 속 깊은 곳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느꼈거든. 나를 위해서라도, 너를 위해서라도 엄마는 희망을 갖고 싶고, 희망을 만들고 싶어졌단다.

엄마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어떤 꿈을 꾸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어떤 날은 너무 늦었다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직 시작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에게 남은 날들은 매일이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더 나아지는 날들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어. 우리는 같이, 아직, 광화문으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야.


태그:#택시운전사, #광주, #촛불, #세월호,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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