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개봉을 앞두고, 5.18을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1980년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도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그들을 피해자로 볼 이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굳이 그들까지 피해자의 범주로 넣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 영화감독의 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틱낫한은 시인을 일컬어, 종이에서 구름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영화감독은 가해자의 눈에서도 피해자의 눈망울을 읽는 힘을 가진 것 같다.

더 나아가 영화감독은 그러한 자신의 시선을 관객에게 전파하는 능력도 지녔다. 물론 매개는 영화다. <박하사탕>과 <26년>이 대표적이다. 두 영화에는 반성하고 고뇌하는 계엄군이 나온다.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계엄군이었던 둘의 달력도 1980년 5월에 멈춰있다.

대속, <박하사탕>

 영화<박하사탕>(1999)의 한 장면

영화<박하사탕>(1999)의 한 장면 ⓒ 신도필름


"나 다시 돌아갈래" - <박하사탕> 대사 중에서

영호(설경구 분)는 구로공단 야학에 다니는 꿈 많고 순수한 학생이다. 그런데 영호는 한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변하게 된다. 갑자기 형사에 지원하더니, 점점 폭력적이게 되어 나중에는 지원해서 운동권 학생을 고문한다.

영호는 서로가 사랑했던 순임을 두고서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이후 형사를 그만두고 가구점을 차리는데,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다. 부인을 때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IMF가 터져 모든 걸 잃고 그는 기찻길에 뛰어든다. 달려오는 기차를 정면으로 맞으며 소리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꿈 많고 순수했던 영호가 이처럼 급변하게 된 것은 1980년 광주 때문이었다. 군인이었던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됐다. 그리고는 실수로 여고생을 쏘아 죽이게 됐다. 거기서부터 영호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살인을 하게 된 영호는 더 이상 순수한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영호가 다시 순수한 마음을 갖고, 착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할수록, 이는 살인자에게는 가당치 않은 가식이고 모순이 되었다. 그래서 영호는 '살인자답게' 사는 길을 택한다.

폭력과 방탕이 점철된 삶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다. 끝내 그마저 야학 시절 야유회 장소 옆 기찻길에 투신하고 만다. 이는 죽어서라도 1980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실낱같은 꿈이자, 그날의 여고생과 희생된 시민을 위해 그가 줄 수 있는 전부였다. 

단죄, <26년>

 영화<26년>(2012)의 한 장면

영화<26년>(2012)의 한 장면 ⓒ (주)인벤트 디, 영화사청어람


"우리는 26년을 기다렸어" - <26년>대사 중에서

김갑세(이경영 분)도 광주의 계엄군이었다. 원하지 않은 투입이었고 '진압'에도 소극적이었지만, 결국 도청에서 한 남자를 죽이게 된다. 갑세도 그날 이후 다른 인생을 다짐한다. 오히려 악착같이 더 열심히 살아서 대기업 회장이 됐다.

속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번 돈으로 희생된 시민의 자식들을 몰래 도왔다. 그리고 말기 암 판정을 받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서두른다. 바로 광주학살의 원흉인 '그 사람'(장광 분)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그가 선택한 속죄의 마지막 단계, 바로 단죄였다.

갑세는 대기업 회장이라는 직분을 이용해 철통같은 호위를 지나 '그 사람'(전두환 대통령을 극 중에서 '그 사람'이라고 부른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흉상을 선물하는 척 하면서, 실은 그 안에 권총을 넣어두었다. '그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게 되는 순간, 바로 권총을 빼 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갑세는 계엄군 동료였던 경호실장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둠으로써, 실패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암살 계획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진심만큼은, 암살 계획에 함께한, 부모를 잃은 광주의 자식들에게 충분히 전해졌다.     

속죄할 것인가

 영화<26년>의 한 장면. 그 사람(전두환 대통령) 역의 배우 장광.

영화<26년>의 한 장면. 그 사람(전두환 대통령) 역의 배우 장광. ⓒ (주)인벤트 디, 영화사청어람


영호는 계엄군인 자신이 자멸함으로써 광주에 진 빚을 씻고자 했다. 그래서 자멸의 삶을 살다 죽음으로 자멸했다. 반면, 갑세는 26년을 꿋꿋이 버텼다. 더 끈질기게 살았다. 힘을 길러 광주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원수이자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다.

영호가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대속의 길을 걸었다면, 갑세는 주범을 단죄함으로써 속죄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둘은 속죄를 받았을까. 적어도 영화를 본 관객들은 둘을 용서했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 계엄군들의 이후 인터뷰 등 기록을 보면, 아쉽게도 영호와 갑세는 현실에서는 극히 소수인 것 같다.   

최근 계엄군을 다룬 영화가 또 개봉됐다. <포크레인>은 어떤 속죄의 길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아니, 속죄를 하지 않는 것도 좋은 전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포크레인은 주인공 한 사람이 아닌 여러 계엄군의 군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보다 다양한, 좀 더 현실적인 계엄군을 그려주길 기대한다.

박하사탕 26년 택시운전사 포크레인 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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