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김인식 감독이 9회초 8-8 동점 상황에서 선동열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3월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김인식 감독이 9회초 8-8 동점 상황에서 선동열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국보' 선동열 감독이  한국 야구 사상 첫 대표팀 전임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4일 선 감독에게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야구대표팀 지휘봉을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선동열 감독은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 출신이다. 현역 시절 그가 남긴 업적은 현대야구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신의 경지로 평가받는다.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에서 11시즌간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으며  규정 이닝을 채우고 평균자책점 0점대(1986년 0.99, 1987년 0.89, 1993년 0.78)를 달성한 시즌만 3차례나 된다. 앞으로 KBO리그 역사에서 언젠가 다른 기록은 모두 깨지더라도 선동열의 통산 자책점 기록은 절대로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한국야구의 국제적 위상이 그리 높지않은 시절이던 90년대 중후반 전성기를 넘긴 상태에서도 일본프로야구(주니치 드래건즈)에서 최고의 마무리로 군림하며  4시즌간 10승 4패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1996-99)의 호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역 시절 말기에도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입단 제의를 받았을 정도였다. 10년만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선수로서의 업적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은퇴 후 지도자로서의 행보는 호불호가 엇갈리는 편이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듬해인 2005년 삼성 사령탑에 오르자마자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2005, 2006년)을 차지했다. 선감독의 삼성에서의 통산 성적은 417승 13무 340패로 승률 0.551에 이르렀고 6시즌간 5번 포스트시즌에 올라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다.

하지만 두 번째 지휘봉을 잡았던 기아 타이거즈 사령탑 시절은 흑역사로 기억된다. 선감독은 2012년 친정팀 기아 감독에 올라 명가 재건을 이끌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3년간 단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기아에서의 3년간 통합 성적은 167승 9무 213패(승률 0.439)로 고 김동엽 감독(82년 13경기 5승 8패)을 제외하고 역대 타이거즈 사령탑 중 최악의 성적이었다.

기아 사령탑에서 물러나는 과정도 다소 굴욕적이었다. 당초 기아는 성적부진에도 불구하고 선동열 감독에게 2년 재계약을 보장하려고 했지만 홈팬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선감독은 홈페이지에 '반성문'까지 쓰며 팬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 군입대가 예정되었던 내야수 안치홍의 팀 잔류를 강요했다는 구설수에까지 휘말리며 더 이상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 낙마했다.

사실 KBO 팬들이 기억하고 있는 '감독 선동열'의 이미지 하면 흔히 슈퍼스타 출신의 감독들이 그러하듯 권위적이고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가 강했다.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이종범·양준혁 같은 소속팀의 레전드들을 사실상 강제 은퇴로 몰아넣은 과정이라든지, 선수들의 소통 문제에서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르내린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런 이미지를 굳히는데 영향을 미쳤다. 정상급 투수 출신답게 특유의 투수운용이나 지키는 야구에 강점을 보이지만 한편으로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는 혹평도 강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역대 최고의 투수코치 중 하나였다. 2006년 WBC, 2015 프리미어 12, 2017 WBC에서 모두 투수코치로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며 다양한 국제대회 경험을 쌓았다. 투수운용에 있어서는 김인식 감독도 선동열 코치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고 존중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선감독은 2017 WBC를 끝으로 사실상 은퇴한 김인식 전 감독의 후임으로 이미 사실상 국가대표 전임사령탑 1순위로 꾸준히 거론되어왔다.

선동열 감독은 올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을 시작으로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한국대표팀을 이끌게 된다. 10년이 넘게 코치와 감독, KBO리그와 대표팀을 넘나들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스타급 선수들을 장악할 수 있는 명성과 카리스마에서 선감독보다 검증된 인물을 찾기는 쉽지않다.

시대적 추세에 걸맞게 야구대표팀도 다른 종목처럼 전임감독제를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속에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많았다. 야구는 국제대회가 다른 종목에 비하여 부족하기 때문에 대표팀에 대한 연속성이 떨어지는 데다 비용 문제도 부담스럽다는 게 주된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국제대회마다 매번 새롭게 감독을 뽑는 문제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사령탑 후보로 꼽힌 프로야구 현직 감독들이 소속팀과 대표팀을 병행하는데 난색을 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야구가 한동안 정식 종목에서 퇴출됐던 올림픽에서도 2020년 도쿄 개최와 맞물려 야구가 부활했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와 아시안게임 이외에도 최근 몇 년간 프리미어12와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등이 신설됐다. 사실상 매년 한 차례 이상 A대표팀이 출전해야하는 국제대회가 펼쳐지게 됐다.

지난 3월 WBC 1라운드 탈락의 수모도 전임감독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더했다. 한국은 2013년에 이어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었다. 10여 년 넘게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며 무수한 영광을 맛봤던 백전노장 김인식 감독도 어느덧 현장감각과 시대 흐름에 뒤쳐졌다는 혹평을 받으며 쓸쓸하게 물러나야했다. 자국 KBO리그의 성공에 도취된 한국야구가 시스템·연속성 면에서 세계야구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선동열 감독은 한국야구가 중대한 과도기에 놓여있는 시점에 제 1대 전임감독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게 됐다. KBO는 앞으로도 전임감독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선감독이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방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겠지만 대표팀의 장기적인 시스템 확립이나 세대교체, 투수 발굴 등 선감독이 고민해야할 현안들이 수두룩하다.

선감독에게도 이번 대표팀 사령탑은 부담도 있지만 한편으로 재기를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선감독은 2014 시즌이 끝나고 기아를 떠난 이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왔다. 기아 시절에 보여준 실패와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부각되어서 한동안 현장 감독으로 재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지도자에게는 성공만큼이나 실패의 경험 역시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한국야구를 풍미한 역대 최고의 전설이 한 두번의 실패로 쉽게 잊혀지는 것 역시 큰 인적 손실이다. 63년생인 선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3년 임기를 마치고 나도 만 57세에 불과하다. 지도자로서는 연륜과 열정이 한창 조화를 이루어 전성기를 보낼 수 있는 시기다. 감독 선동열의 세 번째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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