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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도 잘나가는 때가 있었습니다. 한때 나도 절망의 늪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아니면 적어도, 누구에게나 이런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잘나갈 때야 뭐 그리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절망의 때에는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죠. 하지만 그런 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죠. 그게 인생이 아닐까요.

그런데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문장들'이 곁으로 다가온다면 어떨까요. 가시라기 히로키의 <절망 독서>는 그런 '다가오는 문장들'을 만난 이의 간증입니다. 저자는 대학 재학시절 난치병을 선고받고 13년간 투병한 사람입니다. 그는 긴 절망의 터널을 책과 이야기를 통해 극복했다고 토로합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절망에 빠진 독자들을 만나주고 있습니다.

그럼, 절망을 이기게 해주는 책을 소개해 주냐고요? 아닙니다. 저자는 절망은 이기는 게 아니고 견디는 것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절망의 순간이 문제가 아니고 절망하는 기간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그는 경험상 '절망하지 마라'라고 하는 책은 별로였다고 합니다.

쓰러져 있는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지, 그 고민이 이런 책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망을 어떻게 보낼지'에 관한 책입니다. 1부에서 절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고, 2부에서 절망의 순간 다가와 준 책, 영화, 드라마 등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재미없다 하지만 구원이 있어

<절망 독서>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 펴냄 / 2017. 6 / 235쪽 / 1만3000 원)
 <절망 독서>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 펴냄 / 2017. 6 / 235쪽 / 1만3000 원)
ⓒ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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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에 구미가 당기세요? 아마 아닐 겁니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은 예외겠지만 절망에 빠져 책을 들출 사람이 그리 많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연기자이며 소설가인 신동욱은 "이 책은 재미없다"로 시작하는 추천사를 썼습니다. 그는 "모범생이 쓴 일기나 편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뭔지 모르게 반듯한 느낌"이라며 직설적으로 재미없다고 씁니다.

그래도 그러다가 괜찮다고 하지 않을까, 나름 기대했지만 신동욱은 거듭 말합니다. "과연, 역시 재미없었다. 엄청난 정보를 주는 책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소설처럼 작가의 입담이 좋은 책도 아니었다"고.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철학과 방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절망에 빠져서 힘겨울 독자를 다독여주는 책이라는 데는 신동욱도 저도 동의합니다.

네, 재미있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극도의 절망을 견디고 있는 이라면 한번쯤 들춰보면 좋을 책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란 말 있잖아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 심정을 알죠. 그는 자신이 절망을 견뎌왔기에 절망에 처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올올이 책에서 '곁으로 다가오는 문장들'이 됩니다.

"(자신의 기분을 알아주는 책이 좋은 이유는) 절망적인 사건으로 인해 혼란해진 인생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정이 불가피해진 인생 각본은 어떻게든 고쳐 써야 하니까요. (중략) '이것은 나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과의 만남, 이 책만이 지금의 내 기분을 이해해준다 지금의 나만이 이 책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책과의 만남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매우 큰 구원이 됩니다."(54-55쪽)

'큰 구원'까지? 네, 그의 절망의 구렁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책을 접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네'라고 생각하며 구원에까지 이른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지 않을까요. 그는 그런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 누가 재미없다 해도 그의 인생엔 비교할 수 없는 구원인 거죠.

슬픔은 슬픔으로 다스려야

저자는 특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하면 신나는 음악을 듣고 기분을 풀라고 충고합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눈물 짜는 영화보다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웃기는 영화가 슬픈 이에게 도움을 줍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열치열, 열을 열로 다스린다는 뜻이죠. 슬픔은 슬픔으로 다스리라고 합니다. '슬프냐 그럼 슬픈 책을 읽어라', 이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들며 자신 있게 이열치열을 강조합니다. 절망하고 있을 때는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기분이 어두울 때, 갑자기 밝은 음악을 들으면 더욱 우울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니 슬플 때는 우선 슬픈 음악을 들읍시다."(61쪽)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확실히 문제는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절망에 빠진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구원을 받을까요. 그런 사람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78쪽)

저자는 정말로 울어 줄 사람은 없어도 울어 줄 책은 있다고 합니다. 언제라도 동행해 주는 책이야말로 절망적인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이지요. "책이란 한 사람을 위해 쓰인 것은 아니지만 신기할 정도로 '이건 내 얘기를 쓴 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책, 영화, 드라마 등이 도움이 되는지 추천해줍니다. 끝없이 기다림이 두려울 때는 일본의 소설가 디자이 오사무의 <기다리기>를 읽으라고 합니다. 절망은 벗어나기보다 기다리는 작업이라는 취지에서 이런 책을 추천합니다.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절망과 마주했을 때는 카프카의 단편들을 읽으며 쓰러진 채로 머물라고 합니다.

고뇌가 계속 머릿속에 머물 때는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고뇌 속에 틀어박히기'를 해야 한답니다. 고뇌 속에 있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문장들이 불쾌한 게 아니라 가슴 속에 스며든다고 합니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사무칠 때는 가네코 미스즈의 시를 읽고 외로움을 홀로 견디랍니다.

외에도 저자는 가쓰라 베이초와 '지옥 돌아다니기', 영화 <바샤우마상과 빅마우스>을 보고 '꿈 포기하기',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보고는 '쓸쓸한 마음 느끼기'를 하라고 합니다. 참 특이하죠. 슬픔의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죠. 가족에게 절망할 때는 무쿠다 구니코의 드라마 <겨울 운동화><아수라처럼> 등을 보고 가족에 대해 절망하랍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비는 내립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누구의 인생 각본도 수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긍정만을 강요하는 세상을 향해 <절망 독서>는 일침을 가합니다. 세월호 사건을 자꾸 잊어야 한다는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TV드라마 <강변의 앨범>의 작가 야마다 다이치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접습니다.

"지금 사회는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양쪽 면으로 성립됩니다. 인간은 부정적인 것을 통해서도 성장한다는 사실을 다들 깨달으면 살기 편해질 겁니다."(214쪽)

덧붙이는 글 | <절망 독서>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 펴냄 / 2017. 6 / 235쪽 / 1만3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다산초당(다산북스)(2017)


태그:#절망 독서, #가시라기 히로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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