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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 승소한 하이디스 지회 조합원 단체사진
 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 승소한 하이디스 지회 조합원 단체사진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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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살인으로 이어지는 '해고의 자유'는 확대돼야 할까. 수원지방법원의 대답은 '아니오'다. 법원은 844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면서도 앞으로의 회사 사정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공장 문을 닫고 노동자들을 회사에서 쫓아낸 것은 부당 해고라는 판단을 내렸다.

수원지방법원 민사13부(재판장 김동빈)는 지난 16일 하이디스테크놀로지 해고 노동자 58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 무효 확인 소송 판결에서 노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게 이 법원의 판단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된 지 2년 2~3개월 만에 법의 위로를 받았다.

최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와 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제기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서 잇따라 2심 판결을 뒤집고 회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해고의 자유가 확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이러한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마이뉴스>는 판결문을 입수해, 그 내용을 살펴봤다.

하이디스는 왜 노동자를 해고했나

하이디스는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1989년 현대전자 LCD사업본부로 첫발을 뗀 뒤, 2003년 중국 BOE에 매각된 후 부도를 맞았고, 2008년에는 대만 이잉크에 인수됐다.

하이디스는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2015년 1월 이천공장의 문을 닫았다. 이후 희망퇴직을 진행했고, 이를 거부한 58명을 그해 3월과 4월에 해고했다. 회사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5월 회사를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는 변론 과정에서 "정리해고 당시 경영위기는 부분적·일시적인 위기가 아니었다"면서 "경영 악화 방지를 위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해고 노동자들은 "회사가 보유한 광시야각 기술 원천 특허 수익을 생산 라인에 투자했다면, 경영 정상화가 가능했다"면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정리해고가 아니었다"라고 반박했다. 

하이디스는 2008년 1161억 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한 뒤, 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손실의 규모를 줄였다. 2014년에는 844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광시야각 기술 원천 특허 덕분이었다.

법원의 판단은...

하이디스 공장 앞, 몸조끼의 행렬
 하이디스 공장 앞, 몸조끼의 행렬
ⓒ 하이디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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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정리해고를 하는 근거는 근로기준법 24조 1~3항이다.

①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②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③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에 관하여,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에 해고를 하려는 날의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사의 주장을 물리쳤다. "정리해고 무렵 주요 경제지표는 호전되고 있었던 바, 정리해고를 단행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의 생산라인에 세대교체를 이룰 정도의 대규모 투자가 아닌 합리적인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고부가가치 분야의 다품종 소량 생산 전략 등을 통하여 생산부문 자체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가능성도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또한 회사가 진행한 희망퇴직을 두고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회사)가 실시한 희망퇴직은 해고회피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의 고용상실을 초래한다는 측면에서 최후적인 해고회피 수단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그 외 일시 휴업도 1~2차례에 불과했다"라고 강조했다. 판결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피고(회사)는 위와 같이 원고들이 요구한 인건비 감축조치 이외에 무급휴직과 같이 전형적인 해고회피조치로 인정되는 다양한 방법 등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이천공장 폐쇄 결정 후 바로 희망퇴직을 실시하였고, 공장폐쇄로 잔여인력이 필요 없다는 주장 이외에 위와 같은 고용유지를 전제로 한 비용절감 방안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하여 전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재판부는 "노조가 공장 폐쇄 철회만 고집하는 탓에 해고 회피 방안과 해고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회사의 주장을 물리치기도 했다. "피고는 공장의 일부라도 재가동하자는 방안에 대해서는 수용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협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합의에 이르지도 못했다" 등의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결국 이번 정리해고는 부당해고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한 노동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무를 회사에 지웠다.

해고 노동자들의 변론을 맡은 김기덕 변호사(법무법인 새날)는 "재판부는 사용자가 투자와 같은 공장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정리해고를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흔치 않은 소중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되살아나는 악몽' 쌍용차·콜텍 해고 노동자 판결

2012년 2월,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가운데, 같은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콜트악기·콜텍 지회 대법원 판결에 따른 긴급기자회견에 참가한 이들이 부당한 정리해고와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2년 2월,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가운데, 같은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콜트악기·콜텍 지회 대법원 판결에 따른 긴급기자회견에 참가한 이들이 부당한 정리해고와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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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은 쌍용자동차와 콜텍 해고 노동자에게 좌절을 준 대법원의 판결과 큰 대비를 이룬다.

201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제기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서 노조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쌍용차가 2008년 재무제표에서 손실을 과다하게 계산해 경영상의 위기를 부풀렸다는 노조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그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해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의 예상 매출수량 추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가정을 기초로 한 것이라면, 그 추정이 다소 보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정리해고자 숫자와 관련해,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판례를 인용했다. 결론은 "인원 감축 규모가 비합리적이라거나 자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였다. 

대법원은 또한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없었던 콜텍의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단도 뒤집었다. 2012년 2월 대법원은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사정을 인정할 수 있다면, 해당 사업부문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잉여 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아 불합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쌍용자동차 노조를 변호했던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이번 하이디스 해고 무효 판결은 쌍용차와 콜텍 노동자들이 제기한 해고 무효 소송 판결 이후 정리해고 남용 흐름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김태욱 변호사는 "정리해고 규모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판단했고, 해고회피 노력 중 고용상실을 초래하는 희망퇴직은 최후 수단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도 의미가 크다"라고 밝혔다.


태그:#해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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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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