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김옥빈의 모습에서 하트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 인상적인 <악녀>의 스틸샷

총을 든 김옥빈의 모습에서 하트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 인상적인 <악녀>의 스틸샷 ⓒ (주)앞에있다


제70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악녀>가 8일 개봉했다. 액션스쿨 출신이자 <나는 살인범이다>의 정병길 감독 작품으로 칸 영화제를 통해 136개국에 선판매되는 쾌거를 거둔 작품이다. <악녀>는 김옥빈을 내새운 여성 원톱 액션 영화이다. 김옥빈과 <박쥐>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적 있는 신하균이 그녀의 전 남편으로 등장한다. 그 밖에 김서형, 성준, 조은지 등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조직폭력배 일당을 홀로 쓸어버리고 경찰에 붙잡힌 최정예 킬러 숙희(김옥빈), 그녀는 연변출신 조선족으로 어릴적부터 중상(신하균)에게 킬러로 길러졌다. 외적으론 이미 사망처리된 숙희는 가족의 안녕과 자유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권부장(김서형)에 의해 국정원 산하의 비밀조직의 일원이 된다. 비밀훈련소에서 더욱 업그레드되어 가던 그녀는 첫 번째 미션을 마치고 퇴소하고, 위장신분으로 외부에 정착하게 된다. 이사 첫날부터 자신에게 계속 호감을 보이는 현수(성준)에게 마음이 끌리면서도, 자신의 신분 탓에 그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날 죽은 줄만 알았던 중상이 자신의 타겟임을 알게되고, 자신에게 둘러싸인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악녀>는 액션신만 보면 한국액션영화에 신기원을 이룬 작품이다. 액션영화로서 장르적 기교는 가히 최고 수준이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FPS게임을 하는듯한 놀라운 1인칭 액션으로 관객에게 신세계를 소개한다.

 감탄을 자아냈던 오토바이 장검액션씬

감탄을 자아냈던 오토바이 장검액션씬 ⓒ (주)앞에있다


세계최초 풀타임 1인칭 액션영화 <하드코어 헨리>에서 사용됐던 고프로 헬멧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촬영법은 액션 시퀀스에서 주인공과 한몸이 되게 만들어 관객으로 하여금 안전거리를 가질수 없게 하면서 액션이 주는 불안감과 사실감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액션 시퀀스는 진경을 뿜어낸다.

스턴트 난이도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우선 오토바이 추견전에서 펼쳐지는 장검 액션씬은 창의력과 기술력이 돋보인다. 영화 후반 김옥빈이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 손을 뒤로한 채 운전을 하다 버스에 올라타는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여기에 <악녀>는 단검, 장검, 권총, 저격총, 기관총 도끼에 이르기까지 많은 무기들을 사용하며 액션의 질적인 완성도뿐 아니라 액션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액션뿐 아니라 초반 숙희가 비밀기관에서 어렵사리 자신의 방을 탈출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숙희가 자신의 방에서 탈출하여 마주한 첫 번째 장소는 여성들이 발레를 하고 있는 곳으로 매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곳은 킬러로 길러진 그녀가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번째로 그녀가 들어가게 된 곳은 요리 실습실로 남들에겐 요리하는 식칼이 자신에겐 단지 무기일뿐이란걸 보여주며, 다시 태어났다 하더라도 결고 남들처럼 살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연극무대를 통과하는데, 그녀가 연극배우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탄스런 연출

 <악녀>속 김옥빈과 신하균

<악녀>속 김옥빈과 신하균 ⓒ (주)앞에있다


<악녀>는 초반부터 액션과 상징성이 돋보이는 장면 연출로 몰입감을 선사하지만, 이외의 연출은 한탄스럽다. 우선 영화의 내러티브는 관객에게 설득을 강요하는 수준이다. 현수(성준)를 숙희(김옥빈)에게 접근시키는 설정은 그리 필요성을 느끼게 하지 못하며 초반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영화 중반 중상(신하균)의 재등장 또한 개연성은 멀리 보내 버리고 등장한다.

게다가 몇몇 장면과 대사들은 뒤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배치되지만, 결국 의문만 남긴채 등장의 이유를 상실하고 만다. 맥거핀이라고 포장하기엔 <악녀>의 내러티브가 전체적으로 너무 떨어진다. 치밀하게 설계하지 못할 바에 차라리 단순하게 스토리를 이끌어 나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캐릭터의 활용도 아쉬움이 많다. 현수(성준)는 정체를 너무 빨리 밝히고 등장시켜 후에 스릴러적 요소나 감정적인 요소로 활용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비밀조직의 리더 권부장(김서형)은 냉혹함과 카리스마만 표출할 뿐, 여러 첩보영화에 보여지는 치밀하고 유능한 리더로 그려내지 못한것도 아쉽다. 뭔가 하나 보여줄 듯한 김선(조은지)을 너무 쉽게 소비하며 허탈함을 불러일으킨다.

취약한 내러티브 속에서 영화를 지탱하는 건 김옥빈과 신하균이다. 김옥빈은 매혹적이면서도 서글픈 눈빛으로 극의 분위기를 잡아가면서 폭넓은 감정을 표출한다. 여기에 자신의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액션을 90% 가량 직접 소화한다. 신하균은 '중상'을 맡아 모호한 감정을 쏟아내는 동시에 김옥빈에 버금가는 절제된 액션을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와 포스트 (http://post.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악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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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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