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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집에서 함께 차린 '인생 밥상'입니다.
 아내와 집에서 함께 차린 '인생 밥상'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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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칠십 전에는 인생을 말하지 마라."

칠십 중반 지인의 삶에 대한 조언입니다. 이유 물어보니 "살아보면 안다"고 합니다. 아니지요.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만으로 인생 논할 자격은 충분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 뭐 있습디까? 살아 보니 잘 먹고 건강하게 살면 그게 장땡. 잘났네, 못났네! 해 봐야 오십 보 백보. 어차피 한 세상. 이처럼 삶을 들먹이는 건, '인생 밥상'을 논하기 위한 전초전입니다.

돌나물 꽃, 노란 요정이 꽃으로 피어난 모양새

아내와 여수 상암동 죽공예가 장형익씨 집에 갔습니다. 목적은 '오디' 따기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께서는 죽순 손질에 한창입니다. 그래선지, 집 마당에 죽순 천지입니다. 마대 자루에 담긴 크고 작은 죽순, 다듬어 잘려나간 죽순, 벗겨진 죽순 껍질 등이 어지럽게 널렸습니다. 마당 한쪽 아궁이에선 죽순을 삶고 있습니다. 기분 좋게 죽순 회를 떠올리며 물러납니다.

오디 밭으로 갑니다. 3년 전, 논이었으나 지금은 뽕나무가 서있습니다. 검게 익은 오디가 달짝지근 입에 쩍쩍 달라붙습니다. 일이 끝이 없습니다. 두어 시간 남짓, 오디 수확을 마치고 박스에 담습니다. 그러는 사이 논과 밭 사이 길을 걷습니다. 가지런히 모내기 된 논들이 예쁘게 느껴집니다. 어느 논에는 모판이 대기 중입니다. 논둑과 밭둑에는 싱싱한 봄나물이 지천입니다.

까맣게 익은 '오디'입니다.
 까맣게 익은 '오디'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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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죽순 손질 중입니다.
 한창 죽순 손질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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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물 꽃입니다. 마치 노란 요정 같습니다.
 돌나물 꽃입니다. 마치 노란 요정 같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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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노란 꽃이 눈에 꽂힙니다. 자연 속에서 빛나는 '돌나물' 꽃입니다. 마치 노란 요정들이 꽃으로 피어난 모양새입니다. 그 주위로 돌나물 줄기들이 옹기종기 군락을 이룹니다. 여름으로 향해가는 계절은 초봄의 보드라운 돌나물 잎과 줄기를 억세게 만드는 중입니다. 머리가 한 발 앞서 갑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입 안 가득한 향이 일품인 돌나물. 오징어 한 마리 데쳐 돌나물과 함께 초장에 무쳐 먹으면….

돌나물, 부드러운 부분만 채취합니다. 돌나물 뿌리가 뽑히지 않게 손톱으로 줄기를 톡톡 끊습니다. 괜히 미안합니다. 손톱으로 끊어 내면서도 행여 아플까봐 신경 쓰입니다. 봄은 이렇게 사랑을 만들어 냅니다. 무심코 물이 고인 논둑을 바라봅니다. 순간 눈을 의심합니다. '엥, 저게 뭐야?' 설마 했습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미나리'입니다. 그것도 돌미나리입니다.

돌미나리와 씀바귀 쌈에 얽힌 추억에 군침이

우연히 발견한 '돌미나리'입니다. 요걸 보니 경북 청도에서 삼겹살과 함께 싸 먹었던 청도 특산품 '한재 미나리'가 생각나더군요.
 우연히 발견한 '돌미나리'입니다. 요걸 보니 경북 청도에서 삼겹살과 함께 싸 먹었던 청도 특산품 '한재 미나리'가 생각나더군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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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돌미나리가 있네?"
"저번에 낫으로 한 번 싹 비어 작을 텐데."

돌미나리가 확실합니다. 이렇게 확인하는 이유가 있습지요. 예전에 야생 천마를 보고 배려한답시고 나이 드신 지인에게 집에 가져가 먹을 걸 권했는데, 그 후 고생 끝에 결국 병원 응급실까지 실려 갔던 사건 때문이지요. 짝퉁 천마였다나 뭐라나. 돌미나리 따는 재미 솔솔합니다. 손과 머리가 따로 놉니다. 뭘 해 먹을까? 벌써 군침이 돕니다. 미나리로 유명한 경북 청도에서 삼겹살과 함께 먹었던 한재 미나리….

"앗, 저건 뭐지?"

씀바귀, 돌미나리 쌈입니다.
 씀바귀, 돌미나리 쌈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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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먹잇감이 눈에 들어옵니다. 몇 년 전일까. 제주도 우도 금강사에서 처음 맛보았던 쌈 채소 '씀바귀'입니다. 당시 덕해 스님은 자신만의 씀바귀 쌈 밭을 대단한 것인 마냥 어깨 으쓱이며 보여주었지요. 그러면서 "씀바귀 쌈이 천하제일이다!"고 자랑했었지요. 그리고 씀바귀를 뜯어 밥, 된장, 고추, 김치 등과 함께 점심으로 내셨지요. 그 기억은 아직까지, 씀바귀 쌈의 쌉쓰름한 색다른 맛이 일품을 넘어 명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랬는데 또 다시 씀바귀 쌈을 두 번째로 먹을 생각에 반가움이 앞섭니다. 손이 먼저 나갑니다. 씀바귀 잎을 뜯자 하얀 진액이 흐릅니다. 어릴 적, 뒷산에서 뜯어 토기 밥으로 주던 시절까지 떠오릅니다. 귀한 야채를 하루에 세 가지씩이나 먹게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횡재수가 있나 봅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이처럼 늘 풍성합니다. 다만, 아둔한 인간이 그걸 모를 뿐이지요.

"정어리 사서 당신 좋아하는 정어리 조림 해 주려고"

갓 삶아 낸 죽순입니다. 죽순의 식감은 잃은 입맛을 되실립니다.
 갓 삶아 낸 죽순입니다. 죽순의 식감은 잃은 입맛을 되실립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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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랄라~. 돌나물, 돌미나리, 씀바귀를 먹을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터집니다. 오디 따기를 마친 발걸음 장형익씨 집으로 향합니다. 죽순 손질이 막바지입니다. 어머니, 막 삶아 낸 죽순을 들어 "이거 한 번 먹어봐!"라시며 작고 가냘픈 부분을 건넵니다. 막 삶은 죽순에서 옥수수 냄새가 납니다. 경남 거제도 맹종죽순의 대명사 어머니, 집에서 먹으라고 죽순을 싸 줍니다.

"여보, 진남시장에 들렀다 가요."
"뭐 사시게?"
"정어리 사서 당신 좋아하는 정어리 조림 해 주려고."

정어리에 마음 들뜹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정어리 조림을 먹어야 비로소 나의 봄이 보낼 수 있어섭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재래시장,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아내, "장에 나온 재미는 즉석 어묵을 먹는 즐거움에 있다"며 먹길 권합니다. 시장 통 좌판에는 수박, 참외, 꽃게, 오징어, 주꾸미, 돼지머리고기, 낙지, 멍게, 김치, 떡, 생선회 등 온갖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정어리 좌판 앞에 섰습니다. 국내산 5천 원입니다.

재래시장에서 만난 국산 정어리를 5천원에 샀습니다.
 재래시장에서 만난 국산 정어리를 5천원에 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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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도 하나 살까?"
"오징어는 집에 있어요."

이를 어이 할꼬? 오징어가 없습니다. 아내는 "오징어가 있는 줄 알았다"며 "한 마리 살 걸"하고 미안해합니다. 그리곤 냉장고 파먹기에 돌입할 태세입니다. 전혀 미안해 할 일이 아니라며 말립니다. 죽순 회, 돌나물, 돌미나리, 씀바귀에 정어리 조림까지 풍성한 식탁에 마냥 행복한데, 고깟 오징어가 대수겠습니까!

부부, 둘만의 조촐하고 화려한 만찬을 즐깁니다!

아삭이는 '죽순 요리' 중입니다.
 아삭이는 '죽순 요리'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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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표 죽순 나물입니다.
 아내표 죽순 나물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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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뱀 나오겠네!"

돌나물, 돌미나리, 씀바귀 등을 깨끗이 씻던 중, 아이들 말이 생각납니다. 쌈 채소 먹을 생각에 씻는 순간에도 마냥 행복합니다만 아이들 말 생각에, 이어 지글지글 삼겹살을 굽습니다. 아내는 옆에서 죽순을 다듬고 초장을 만들어 뚝딱뚝딱 죽순 회를 완성합니다. 죽순 회를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기봉 대표(거제농산물수출영농조합법인)입니다. 그는 거제에서 식욕 죽순의 대명사인 '맹종죽순'을 종종 보내줍니다. 지금 한참 맹종죽 수확 중이겠네요. 잠시 거제도 김용호 시인의 '죽순' 한 수 읊지요.

    죽  순
                              김용호

  순간을 인내하여 하늘에 닿으리라
  햇살은 댓잎사이 파스름 산란하고
  새들도 둥지를 떠나 고요도 따로 없다

  정지된 시간들을 다시금 또 쪼개어
  겨우내 땅속에서 길렀던 힘찬 꿈을
  밀어라 하늘을 향하여 봉오리가 솟는다

상추, 돌미나리 쌈에 정어리 조림과 죽순 나물을 얹었습니다. 으으으으, 그 맛이란?
 상추, 돌미나리 쌈에 정어리 조림과 죽순 나물을 얹었습니다. 으으으으, 그 맛이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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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아내, 두부를 굽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어리 조림을 요리합니다. 식탁 위가 엄청 푸짐합니다. 쌈 채소에 죽순 회, 두부구이, 갓 물김치, 연근, 양파, 고추, 삼겹살, 배추김치, 양념된장, 재첩 국, 정어리 조림까지. 주방뿐 아니라 온 집에 맛난 냄새 진동합니다. 부부, 둘만의 조촐하고 화려한 만찬을 즐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탈입니다. 왜냐고요? 한 끼 한 끼 따로 먹어도 될 것을, 한꺼번에 먹는 즐거움에, 꼭 욕심쟁이 된 기분이랄까. 그래, 혼자 사는 지인에게 이 요리를 돌렸습니다. 나눔의 즐거움이죠. 하여튼, 5천 원 정어리에 자연식으로 만든 이 상차림은 제 삶에서 손꼽히는 '인생 밥상' 중 하나로 손색없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삶, 이처럼 잘 먹고 건강하게 살면 그게 최고 아니겠어요?

죽순 회무침과 삼겹살 그리고 돌미나리, 고추 쌈입니다. 으으으으, 그 맛이란...
 죽순 회무침과 삼겹살 그리고 돌미나리, 고추 쌈입니다. 으으으으, 그 맛이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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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밥에 정어리 조림과 묵은지 김치찜, 돌나물을 얹었습니다. 으으으으, 그 맛이란...
 맨밥에 정어리 조림과 묵은지 김치찜, 돌나물을 얹었습니다. 으으으으, 그 맛이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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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정어리조림, #죽순요리, #돌미나리 쌈, #돌나물, #인생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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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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