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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 올린 물고기를 직원이 낚시 바늘에서 빼주고 있다
 잡아 올린 물고기를 직원이 낚시 바늘에서 빼주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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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살 때는 바다에 가려면 큰맘 먹고 하루를 투자해야 했다. 바다에서 떨어진 시드니 서부에 사는 이유도 있지만, 교통 체증 또한 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닷가 한적한 곳에 살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바다를 자주 찾는다. 파도 소리가 그리울 때면 아무 때나 모래사장을 걷든가 바다에 몸을 담근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낚싯대도 가끔 챙긴다. 얼마 전에는 자그마한 배도 샀다. 배를 타고 내해에서 물고기를 낚거나 주변을 둘러보기도 한다. 그러나 넓은 바다로 나가지 않기에 큰 고기를 잡는 일은 흔치 않다. 호주에서 바다에서 흔히 잡히는 도미(호주에서는 25cm 이상 되는 것만 잡을 수 있다) 혹은 와이팅(whiting)이라는 작은 물고기를 잡을 뿐이다. 

큰맘 먹고 낚싯배를 빌려 타기로 했다. 넓은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멀미 걱정이 되기는 했으나 큰 생선을 잡아 보고 싶은 마음이 멀미 걱정을 밀쳐낸다. 처음 타보는 낚싯배라 조금 설레기도 한다.    

낚시 가는 날이다. 조금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여러 종류의 배가 정박해 있다. 선상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커다란 배(house boat)가 있는가 하면 바다에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날렵한 배도 보인다. 매매 가격과 전화번호를 크게 써놓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배도 정박해 있다. 호주 사람들은 물을 좋아한다. 세계적인 수영 선수가 배출되고 바다가 보이는 집값이 비싼 이유를 알 것 같다. 

낚싯배가 선착장을 벗어난다. 중국인 가족 4명을 합쳐 11명의 사람이 배에 탔다. 시드니에서 놀러 왔다는 나이 든 부부는 일찌감치 멀미약을 먹는다. 나도 뱃멀미 걱정을 하며 껌을 씹는다. 심한 파도는 아니지만,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배는 흔들린다. 어디선가 들은 대로 출렁거리는 파도를 보기보다는 먼 지평선과 육지를 보며 멀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한다.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오자 직원이 인조 미끼를 단 낚싯대를 3명에게 주며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 낚싯대를 후미에 매달고 배는 서서히 항해한다. 조금 지나니 한 사람이 물고기가 잡혔다고 소리친다. 배를 세우고 큼지막한 생선을 걸어 올린다. 생선 이름이 다랑어(bonito)라고 한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인조 미끼를 달고 조금 있으니 낚싯대가 휘청한다. 열심히 끌어올린다. 물고기 힘이 세다. 조금 전에 다른 사람이 잡은 것과 같은 생선이다. 크기도 비슷하다. 기억하기로는 내가 잡은 물고기 중에 가장 큰 생선을 낚은 것 같다. 손맛이 좋다. 다랑어를 대 여섯 마리 잡은 후 배는 더 넓은 바다로 향한다. 수심 깊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망망대해에 배를 세우더니 낚싯대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미끼도 끼워준다. 묵직한 추가 달린 무거운 낚싯대다. 던질 것도 없이 배 아래로 추를 내리는 데 끝없이 내려간다. 아마도 50m 이상 내려갔을 것이다. 무언가 꿈질한 느낌이 낚싯대를 타고 올라온다. 커다란 물고기 생각을 하며 힘들게 낚싯줄을 감아올린다. 그러나 무거운 추 하나만 덜렁 있고 물고기는 없다. 미끼만 따먹고 간 모양이다. 옆에 있는 사람은 물고기를 잡아 올리며 소리친다. 붉은색이 도는 제법 큰 돔(snapper)이다. 

직원이 끼워준 미끼를 달고 다시 바다에 낚싯줄을 내린다. 이번에는 나도 한 마리 잡았다. 옆에서 잡은 것과 같은 생선이다. 곧이어 이름 모를 제법 큰 생선도 잡아 올린다. 선장이 물고기 이름을 이야기하며 좋은 생선이라고 하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다. 

물고기 올라오는 것이 조금 뜸하다. 배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바다를 잘 아는 선장이 어군 탐지기를 보면서 이동하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바다 한가운데 덜렁 솟은 작은 바위섬 근처에 배를 세운다. 다시 낚싯대를 바다에 담근다. 이곳에서는 플랫 헤드(flathead)라는 물고기만 올라온다. 내 낚싯대에는 팔뚝만한 플랫 헤드 두 마리가 동시에 잡혀 올라오기도 한다. 

뱃멀미 중에도 낚싯대를 놓지 못하는 중국인 관광객

관광객을 바다로 안내하는 직업을 가진 선장. 자부심이 대단하다.
 관광객을 바다로 안내하는 직업을 가진 선장. 자부심이 대단하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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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물고기 잡느라 정신없는데 중국인 관광객은 뱃멀미하느라 난리다. 그래도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아들은 큼지막한 생선을 잡고 좋아한다. 뱃멀미하는 부모를 불러 사진도 찍는다. 그러나 조금 지나 아이들도 멀미 때문인지 의자에 눕는다. 나는 다행히 견디어 냈다. 아마도 낚시하는 재미 때문일 것이다.

두어 군데에서 낚시를 더 한 후 돌아간다. 오는 길에 다랑어를 잡았던 근처에서 다시 인조 미끼를 바다에 던지며 다랑어 몇 마리 더 건진다. 집으로 가지고 갈 물고기가 풍성하다. 아내에게 연락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회와 매운탕이라고 자신 있게 메시지를 날린다.  

느긋하게 낚시를 끝내고 돌아가는 선상에서 포스터(Forster) 해안을 즐긴다. 해변은 사람들이 펼친 요란한 색의 파라솔로 장식되어 있다. 가끔 찾아가 바다를 바라보던 전망대도 보인다. 눈에 익은 전망대이지만 배에서 보니 색다르다. 바다에서 육지를 보니 같은 장소도 생소하게 다가온다.

이것과 저것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것이라는 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어느 스님이 설파하던 공(空)이라는 단어도 떠오른다. 모든 것은 같은 것이고, 옳고 그름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면서도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의견이 틀렸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며칠 전에는 지인으로부터 한국 정치 이야기가 싸움으로 번졌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글을 쓰는 지금, 한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의 취임사를 듣는다. 사랑을 나누는 대통령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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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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