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패 삶터의 이성호씨가 11일 오후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태에 저항하며 '블랙리스트 칼날' 위에 올라가 익살 맞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성호씨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풍물패 삶터의 이성호씨가 11일 오후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태에 저항하며 '블랙리스트 칼날' 위에 올라가 익살 맞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성호씨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 유지영


"인생, 예술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화 속 대사처럼 정말 인생 예술로 사는 사람도 있고, 낡아빠진 장판지 마냥 세상에 치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에 한번 하늘 쳐다보는 것도 버거운 삶도 있다. 예술이니 문화니 하는 말들이 사전 속에만 존재하는 딴 세상 얘기로 치부되기도 하고, 각자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그림으로 자리하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발 딛고 있는 현장은 달라도 일상의 시민에게 영화대사 속 예술은 자유와 상상을 담아내는 상징의 세계이고, 예술가에겐 다양한 정서와 인식을 담아내는 표현의 장이자 삶의 시공간 그 자체이다.

예술 검열은 단순히 예술가들의 창작행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발언을 통제함으로써 권력에 반하는 인식 자체를 사회와 격리하는 반민주적 행위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공화국의 헌법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창작을 업으로 하는 예술인의 삶의 본질을 짓밟는 파시즘의 전형이다. 문화예술이 21세기 성장동력이라는 의지에 찬 구호와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명쾌하게 정의 내리기 힘든 수많은 욕망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예술은 또 시민은 그렇게 검열당하고 있었다.

 12일 오전 8시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30여 명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들이 모여 조윤선 장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11일부터 1박 2일 동안 '블랙리스트 버스'를 조직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책임자인 조윤선 장관의 사퇴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지난 1월 12일 오전 8시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30여 명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들이 모여 조윤선 장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11일부터 1박 2일 동안 '블랙리스트 버스'를 조직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책임자인 조윤선 장관의 사퇴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유지영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고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목요일 정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1인 퍼포먼스 시위에서부터, 올해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빼앗긴 극장, 여기 다시 세우다"라는 취지로 광화문광장에 임시로 세워진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의 <몸, 외치다> 프로그램에서 펼쳐진 17개 작품, 그리고 3월 4일 해치마당에서의 야외 퍼포먼스 <우리가 헌법이다>까지 80여 명의 무용인이 광장의 시민들과 만났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 검열과 국정농단에 저항하는 무용인들의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9일 문체부에서 이번 예술검열 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심의절차와 기관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예술가 권익 보장,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등의 개선안과 함께 긴급자금 85억 원 지원을 발표했다. 민주공화국이라면 너무나 당연히 지켜져야 할 것들이다.

심지어 현행 관계 법령과 지침에도 버젓이 명시되어 있는 것들이다. 이런 있어서는 안 될 사태가 벌어진 것은 관계 법령이나 지침이 미비해서가 아니다. 권력자의 입맛대로 법질서와 인권을 짓밟아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관행이 문제인 것이다. 늘 그렇듯이 책임자 처벌은 없이 돈(예산)이라는 편리한 해결책을 들고 나왔다. 이번 예술검열 사태는 현 정부의 정책권자와 관련 공무원들의 예술과 민주주의에 대한 천박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근본적인 사과 없이 100억 원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소소한 개인의 삶에 묻어있는 디테일이 쌓여서 그 사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듯이, 예술은 개별적이고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를 일상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담아내는 그릇이다. 예술 검열은 예술가에게서 작품 제작과 발표의 기회를 뺏는 것일 뿐만 아니라, 창작행위를 통해 사회대중과 소통하는 이들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예술과 일상, 시민과 예술가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다만 직업으로서의 분리만 가능하다. 시민의 의식과 발언을 소몰이하듯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이와 같은 검열은 주권의 원천인 국민이 선출한 대리인을 통해 국정운영을 하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심히 중대한 사안이다.

 "권력은 짧고 예술은 길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이 11일 오후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정부세종청사에 와 1박 2일 간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시위와 공연을 펼쳤다.

"권력은 짧고 예술은 길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이 지난 1월 11일 오후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정부세종청사에 와 1박 2일 간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시위와 공연을 펼쳤다. ⓒ 유지영


지극히 개인적인 독특함이 명인의 입지를 만들어낸다. 각자의 예리한 감성이 거침없이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이 성숙한 문화예술의 토대이며,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충돌과 조화의 어우러짐 속에 민주주의는 꽃봉오리를 틔운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취약부문인 예술을 예산 지원이란 올가미로 길들이려 하지 마라! 네모난 수박처럼 일방의 취향으로 짜놓은 박스 안에 가두려 하지 마라! 예술은 특정 권력이나 정책권자의 욕망 해소 창구가 아니다!

불행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예술 검열에 항거하는 예술 행동에 참여한 무용인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이러했다.

"깨끗한 공기와 물은 물려주지 못해도 이런 부정의한 인식의 악순환은 대물림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회 국정조사와 새 정부의 진상규명위원회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부끄러운지 모르는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과 김세훈 영진위 위원장 등은 더 큰 죄과가 물어지기 전에 하루속히 속죄하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적폐청산 문화예술인 버스'를 탑시다
- 일시: 2017년 5월 17일
- 일정: 세종시 문체부 청사, 전남 나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사 방문
- 출발: 5월 17일 오전 9시,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선언 후 출발(서울 기준)
* 지역 출발 : 대전충남권 등은 11시 문체부 세종시 청사 앞으로 도착
                 영호남권은 15시 나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앞으로 집결
- 참가비: 3만 원
- 문의 및 신청: 010-6577-2007(이해성, '블랙타파') / 010-7711-3948(이두찬, 예술행동위)
- 주관: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의 '블랙타파'
- 주최: <박근혜퇴진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참가단체 

* 기본 일정 외 세부 계획은 변동 있을 수 있습니다.


적폐청산 문화예술인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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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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