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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아웃

화이트아웃이 발생하면 공간감이 사라지고 시야를 잃게 된다. 곧 두려움이 몰려온다. 불과 2m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앞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확보되면 걷고 사라지면 멈췄다.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하며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불안했다. 처음 맞닥뜨린 화이트아웃은 우리 모두를 불안으로 떨게 만들었다.

(화이트아웃이 생기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공간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움직였다가길을 잃을 수 있고 한자리를 뱅글뱅글 돌게 되는 예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불안과 두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싱이 숙소 ⓒ 정웅원
출발하기 앞서 스페인 팀을 짐을 꾸리고 있다. ⓒ 정웅원
화이트아웃이 사라진 직 후. ⓒ 정웅원
날씨가 좋을 땐 새파란 하늘과 산을 벗 삼아 걸을 수 있지만 그런 날은 없었다. 한 번쯤은 홀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오로라를 감상하고 싶었지만 오로라는커녕 눈이 오지 않길 기도했다. 하루가 끝나면 내일은 얼마나 넘어질까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물론 다치지 않고 끝까지 잘 걸어서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았다. 짧은 시간 동안 하늘이 잠시 열렸다. 그것마저 오래가지 않았다. 초코바 하나 먹으며 이 길이 어서 끝나길 기도했다.
ⓒ 정웅원
쉬지 않고 걸었다. 따뜻한 숙소에 들어가 밥이 먹고 싶었다. 오후 3시쯤 케브네카이세 숙소가 보인다. 바람은 아직도 세게 불고 있지만 곧 끝난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멀리 케브네카에서 산이 보였고 한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들 얼싸 안았고 서로 악수하며 수고했다고 이제 끝이라고 더이상 걸음은 없다며 몇몇은 울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내일 하루 더 걸어야 버스를 타고 키루나 마을로 갈 수 있는데 여기가 마치 모든 일정이 끝난 것처럼 시원하고 섭섭했다.
탐험대처럼 보였던 순간 ⓒ 정웅원
잠시 파란 하늘을 보였줬던 순간. ⓒ 정웅원
숙소에 도착해 텐트 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안에서 자기로 했다. 도미토리를 배정받았지만 그동안 수고했다는 보상에 1인실을 구했다. 도미토리는 5만원대였는데 2인실은 12만원 이었다. 하루 숙박비 치고 너무 비쌌지만, 선물이라 생각했다. 와이파이 이용도 가능해 한국에 소식을 알렸다. 계획은 틀어졌고 키루나에 도착해 며칠 쉬다 한국에 돌아간다는 말을 남겼다.

케브네카이세 숙소에는 음식뿐 아니라 산악장비도 팔고 있었고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산속에 있는 숙소치고는 방값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한국과 비슷한 가격대였다. 선물로 줄 몇 가지 기념품을 샀다. 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엔 가격대에 너무 높아 즉석식품으로 저녁밥을 때웠다.
케브네카이세 산과 숙소. ⓒ 정웅원
스페인 팀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다음에는 스페인으로 오라며 스페인은 춥지도 않다고 이런 곳에 오지 말라며 웃으며 떠났다. 스노 모빌을 타고 그들은 곧 사라졌고 나도 출발했다. 스키는 이제 신지 않아도 걸을 만한 땅으로 바뀌었다. 눈이 있어 쉽지는 않았지만 걸음은 빨랐다.

흐리긴 했지만, 날씨는 좋았다. 바람도 불지 않았고 눈도 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살짝 덥기도 했다. 트레커들을 태운 스노모빌이 왔다 갔다 하며 내가 갈 길을 안내해 주기도 했다. 니칼루옥타에 도착했을 때 버스 시간은 1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또 다른 독일인을 만났고 키루나에 도착해 숙소를 찾기까지 같이 움직여 주셨다. 이번 여행은 독일인과의 만남이 참 많았다.
니칼루옥타 ⓒ 정웅원
키루나로 가는 버스. 키루나까지는 1시간이면 도착한다. 버스에서 카드 결제 가능함. ⓒ 정웅원
키루나 버스 정류장. 니칼루옥타에서 키루나까지는 1시간 거리. ⓒ 정웅원

덧붙이는 글 | 2016년 3월 11일부터 3월 19일까지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스웨덴 쿵스레덴을 걸었던 이야기입니다.

태그:#쿵스레덴, #스키트레킹, #화이트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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