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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평화항해일지 1] '무동력' 배로 항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평화항해일지 2] 1년 동안 쓰지 않았던 요트를 정비하다.
[인도네시아 평화항해일지 3] 드디어 바다로 떠나다.

히잡(hijab)은 머리카락만 감싸는 스카프로서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이 사용한다
▲ 13세 신타와 어머니 히잡(hijab)은 머리카락만 감싸는 스카프로서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이 사용한다
ⓒ 수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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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쏭팀의 소식을 못 들었다. 걱정은 되면서도 미라가 차려준 빵과 홍차에 손이 갔다. 신타는 새벽 5시쯤에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여기는 워낙 더우니 약간 서늘한 새벽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것 같다. 신타의 교복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설레었던 첫날과 달리 쏭팀이 걱정되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안을* 하였다. 우리가 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봐주는 가족들을 보며 따뜻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이안. 계류장에 묶인 계류줄을 풀고 요트에 올라타는 것) 

(왼쪽부터) 강정마을에서 만난 20대 청년 바람말, 대안학교 교사를 하다가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서 1년간 지냈던 다코타, 개척자들 리더 쏭박
▲ 오후 5시 반 정도에 만난 쏭팀 (왼쪽부터) 강정마을에서 만난 20대 청년 바람말, 대안학교 교사를 하다가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서 1년간 지냈던 다코타, 개척자들 리더 쏭박
ⓒ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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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질 무렵 멀리 쏭팀의 배를 발견하였다. 속도를 늦췄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잠은 어떻게 잤는지, 배는 안 고픈지 물었다. 다들 얼굴이 많이 탄 듯했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었다.

가는 방향이 같으면 이런 망망대해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행히 쏭팀도 바다에서 밤을 지새우지는 않았다. 우리가 정박했던 곳보다 조금 더 내려간 마을에서 우리처럼 어부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고 한다. 얼마간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각자의 바람 속도에 맞춰 항해를 떠났다.  

빈땅, 물란 그리고 낄릿

서서히 쏭팀의 배가 멀어지더니 또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밤이 되었고 우린 불빛이 꽤 보이는 육지 근처 요트 위에서 쏭팀을 다시 기다렸다.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하늘에 빈땅(별)이 가득하고 그 옆에는 환한 달(물란). 다른 한쪽에서는 낄릿(번개)이 번쩍번쩍 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로미와 익산이 날 깨우면서 웃으며 "해 뜨는 것 좀 봐"라고 말했다. 나는 농담하지 말라고, 해가 지는 거 아니냐고 비몽사몽해서는 되물었다. 난 정말 익산과 로미가 농담하는 줄, 농담이길 바랐다.

루아오르 마을에서 랑카이 섬까지는 약 370km
▲ 아부 아저씨의 집이 있는 빠레빠레 루아오르 마을에서 랑카이 섬까지는 약 370km
ⓒ 수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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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빠레빠레이다. 결국 어제 라부앙에서 이곳 근처까지 와서는 배위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객실도 없는 요트위에서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아부 아저씨와 부인이 운영하는 카페 쪽 해변에 닻을 내렸다.

쏭팀은 많이 지쳐보였다
▲ 접안을 위해 배 끄는것을 돕는 로미 쏭팀은 많이 지쳐보였다
ⓒ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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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이틀 밤을 보낸 후 다같이 모이다
▲ 아부 아저씨 카페 따로 이틀 밤을 보낸 후 다같이 모이다
ⓒ 수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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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지나자 쏭배도 들어왔다. 우리는 거의 이틀 만에 다 같이 모이게 되었다. 먼저 다들 씻고 함께 회의를 하기로 했다. 우물가에 씻으러 갔다가 만난 24세 대학생 위그라.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집에서 샤워를 한 후 전체회의를 하였다.

'예상 경로가 달랐다'

첫째 날, 쏭은 빠레빠레로 가려 했고, 아부 아저씨는 너무 일찍 육지에 정박하였다. 둘째 날, 육지 가까이에 와서 쏭팀은 아부팀의 불빛을 놓쳤다. 우리는 쏭팀이 우리를 보면서 따라 왔다고 생각했고 연안 요트 위에서 밤을 지새웠다.

회의 후 자유 시간을 가진 뒤 5시까지 아부 카페로 모이기로 했다. 다코타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고 나는 위그라, 바람말과 시내에 나갔다. 인도네시아에 온 첫날 마카사르 외에 큰 도시는 처음이다.

바람말은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카페로 나갔고 위그라와 나는 전통시장에 가서 싸롱과 내일 배에서 먹을 간식을 샀다. 과일과 채소는 배 위에서 최고 간식이다. 우리나라처럼 쉽게 살 수 없기에 있을 때 사두어야 한다.

멀리서도 보이는 모스크에도 가보았다. 버스를 타고서도 한참을 올라갈 정도로 높은 곳에 지어졌다. 가까이서 보니 궁전처럼 더 예뻐 보였다. 실내 공간도 굉장히 넓었고 시원했다.

보통 집보다 훨씬 시원해서 너무 더울 때는 여기 들어와 낮잠을 자거나 땀을 식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그라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섬들을 혼자 여행한 적은 있지만 외국 여행은 한 번도 안 해 봤다고 하며 나를 부러워했다.

새롭게 알게 된 나의 아킬레스건

저녁을 먹고 난 후 내일을 위한 미팅 후 남자들은 아부 아저씨 집으로 갔고, 다코타와 나는 위그라 집에서 잤다. 위그라 집은 여태껏 묵었던 곳 중에 제일 좋았는데 다코타 말로는 앞으로도 이런 집에서는 잘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집은 복층이었고 한 층에만 방이 3개가 넘는듯 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우리를 묵게 해준 방안에는 화장실도 따로 있었는데 그때 알았다. 나의 아킬레스건은 냄새와 좁은 공간이라는 것을.

여기도 우리처럼 샤워실과 화장실이 한 곳에 있는데 한 명이 쓰면 딱 맞을 정도의 크기였다. 방과 화장실 사이에 문이 없어서 의식적으로 냄새가 더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장이 있는 침대를 놔두고, 요트위에서의 잠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스스로에게 당혹스러운 밤이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5시에 일어났다. 급히 준비를 하고 위그라 어머님이 챙겨주신 아침밥을 들고 아부 카페 옆에서 배를 탈 준비를 하였다. 선크림을 챙기지 않던 쏭과 다코타(선크림이 산호에게 좋지 않다는 이유로)는 선크림을 바른 나와 피부색 차이가 확연히 나자 이후 열심히 바르기 시작했다.

위그라와 여동생, 아부 아저씨 부인과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전 6시 반에 출항하였다. 출발하자마자 아침을 먹고는 노곤하게 잠이 들기 전 펜을 들었다.

물 위에도 반짝거리는 빈땅(별)이 있다. 그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들도 보인다
▲ 고기잡이 배 물 위에도 반짝거리는 빈땅(별)이 있다. 그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들도 보인다
ⓒ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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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떠다니는 배, 바다에 흐르는 빈땅들

6시쯤부터 바람을 타고 항해를 하다보면 꼭 2~3시간 지나서는 바람이 멈춘다. 한쪽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지나가고 다른 쪽에서는 바다 위로 무심코 떠다니던 나무토막에 두 마리 새가 앉아 있다. 하염없이 잔잔하다. 바다와 하늘 구분이 없는 이 광경은 정말 신비하다. 주변에 있는 배들이 마치 하늘에 떠다니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처럼 수줍음이 많은 돌고래들. 살짝 살짝 솟아오르며 등 지느러미만 보여줬지만 짜릿했다
▲ 오전에 만난 돌고래 떼 인도네시아 사람들처럼 수줍음이 많은 돌고래들. 살짝 살짝 솟아오르며 등 지느러미만 보여줬지만 짜릿했다
ⓒ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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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점심 먹고 난 후다. 평소답지 않게 쏭팀의 배가 저만치 안보일 정도로 앞서 있다. 나와 대화를 나누던 다코타와 더위에 지친 로미가 이내 잠에 빠졌다. 아부는 여전히 키를 잡고 있다.

바다 위 생각의 편린들 : 채식, 고래 자살, 단식, 안락사

다코타는 돌고래도 수족관에 스스로 머리를 부딪히는 등 자살을 한다고 했다. 나는 채식하면서 소식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물론 아직 관심만 가질 뿐이지 적게 먹는 실천은 못한다. 많이 먹는다.

<조화로운 삶>을 쓴 미국의 철학자 헬렌 니어링 부부는 자급자족을 하며 살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단식을 했다. 그녀의 남편 스콧 니어링은 100세가 되던 해에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단식으로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다코타는 자신은 생명연장하지 않는다고 남편과 가족들에게 미리 말해놓았다고 했다. 한 서양인이 기모노를 입고 안락사를 하기 전 친구들과 파티처럼 마지막을 보낸 영상을 봤는데 감동이었다고.

영화 <미비포유>가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동물 안락사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안락사에 대해 대체로 인간은 선택할 수 있으나 동물은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나 병으로 인해 동물이 너무 고통스러워할 때는? 그것도 인간의 기준이지만 정말 수 백번을 생각해도 이게 최선이라면 안락사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보통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결정할까.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디다"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의 저자 원종우 작가가 해준 얘기다. 키우던 고양이를 한국에까지 데려오려고 했으나 복부에 물이 차는 불치병에 걸렸다. 의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만 비행기를 타면 바로 죽을 거라고 진단하였다. 작가는 한국에 돌아와야 했고 안락사 밖에는 방법이 없다 생각했다. 손 잡아주며 눈 감는 것도 지켜봤지만…. 결국 그 작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디다." 

나를 제대로 돌아보는 일 : 자기기만에 대하여

이사를 가야 해서, 못 키워서 길에 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안락사가 낫지 않냐는 사람. 일이 바빠져서 개와 많이 못 놀아주니 다른 집으로 가는 게 낫지 않냐는 사람. 원래 키우던 고양이와 자주 다툰다며 중성화까지 시키고 데려온 지 한 두 달 만에 다른 집으로 보내는 사람 등등.

차라리 길에 버리는 내가 못된 사람이라고, 못 놀아 주는 건 핑계이고 책임감 없이 데려와 또 다른 곳으로 보내는 상처를 준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그러나 내 마음을 솔직히 돌아보는 건 너무 어려운 일. 계속해서 자신을 제대로 직시하려 노력하는 것이 삶의 수양이며 경험치인 것. 지금의 항해도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나의 한계와 타인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

나름 털털한 나라고 해도 지난 밤처럼 냄새가 살짝 나는 화장실이 방 안에 있으면 잠들기 힘들다. 거실에 바람이 조금도 통하지 않으니 답답해져서(더위를 별로 안탄다고 해도) 힘들다. 모기 물리는 것도 어느 정도 적응한 줄 알았지만 너무 힘들다.

가난한 집, 부잣집을 떠나서 자연 바람이 부는, 집이 별로 안 좋아도 냄새가 별로 안 나는 그런 집이 낫다. 인정하자. 내 한계가, 지금의 내 수준이 그 정도라는 걸. 우선 알고 인정해야 다음단계 진입이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평화 항해를 위한 배를 구합니다 dlgidfla2001@naver.com>



태그:#빠레빠레, #인도네시아 돌고래, #안락사, #자기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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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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