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지난 6일 한국에서 개최된 WBC 서울라운드가 어느새 절반이나 진행되었다. 한국 대표팀은 세 경기 중 두 경기를 이미 패배하며 1라운드 탈락이 거의 확실시된 상태에 있다. 9일 대만에게 패배할 경우 조 4위로 차기 대회 본선 참가가 불확실한 만큼, 대표팀은 지금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열띤 응원으로 가득 찬 고척 스카이돔은, 대표팀의 기대 밖 성적 탓에 냉램함만 감돌고 있다.

물론 고척 스카이돔을 방문한 관중은 대한민국 국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이외에도 네덜란드, 이스라엘, 대만 총 4개국이 출전하는 국제 대회인 만큼 각국에서 경기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들의 조국 역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경기를 보여 주었던 팀이 있을 것이고, 우리 대표팀처럼 좀처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씁쓸한 입맛만 다시고 조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진행 상황이 좋지 못해 침울해 있다가도, 응원을 시작하면 곧바로 힘찬 응원을 이어가는 것은 여느 나라나 다르지 않다. WBC 서울라운드에 참가하는 4개국의 경기를 모두 지켜보며, 이들의 응원을 카메라에 잡아 보았다.

이스라엘 '야구의 세계화, 우리가 주도할 겁니다'

이스라엘 국기를 펼쳐 보이는 관중 이스라엘에 6년 반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고 밝힌 이 청년은 야구가 더욱 세계적인 스포츠가 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 이스라엘 국기를 펼쳐 보이는 관중 이스라엘에 6년 반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고 밝힌 이 청년은 야구가 더욱 세계적인 스포츠가 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 서원종


이스라엘은 야구 변방이다. 2015년 프리미어 12도 참가하지 못하고, 규모가 큰 세계대회의 본선 무대는 참가조차 전무할 정도로 야구와는 인연이 좀처럼 없는 나라이다. 하지만 야구 세계화를 지향하는 WBC의 지향점에 맞게, 유대인이 뿌리인 조상을 대표팀에 모두 소집했다. '도깨비 팀'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대표팀은 이렇게 탄생했다.

국적보단 혈연에 기초한 팀이기 때문에, 팬들 역시 국적보단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 등 이스라엘과 간접적인 영향이 있는 사람들도 구성되었다. 열렬한 이스라엘 지지자라는 것으로 자기 소개를 시작한 잭 랩(Zack Raab)씨 역시 이 중 한 명이었다. 현재 플로리다에 거주하고 있지만 과거 이스라엘에 6년 반 동안 거주한 경험이 있어 이에 응원한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야구를 세 번째로 잘 하는 한국을 이긴 것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스라엘 국내에서는 야구의 인기를 좀처럼 실감하기 힘들어, 서울에서의 WBC 운영과 관객의 적극적인 호응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며 대회를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아울러 이번 이스라엘 대표팀은 자국민보다는 혈연 관계로 이루어진 선수들이 대다수인데, 이를 점차 줄이고 자국 선수들로 선수단을 꾸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야구는 정말 굉장한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이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나라들이 안타깝다며, 이번 대회에 이스라엘이 계기가 되어 야구의 변방에 있는 나라들에게 이 즐거움을 전달해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환호하는 이스라엘 응원단 이스라엘이 야구 세계화를 선도할 나라가 될 수 있을지는, 이번 라운드의 여파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환호하는 이스라엘 응원단 이스라엘이 야구 세계화를 선도할 나라가 될 수 있을지는, 이번 라운드의 여파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서원종


잭 랩씨는 이스라엘 팀에서 홈런이 나오자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시아권에서 야구 강국을 자처하고 있는 대만마저 꺾으며 2라운드 진출이 가시화되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연호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이스라엘의 관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이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이번 WBC 대회에서 야구의 세계화를 가장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과연 잭 랩씨의 소망대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같은 야구 변방에서 돌풍이 시작된다면, 그 나비효과는 세계 곳곳으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선수뿐만 아닌 이스라엘의 응원단과 팬들의 역할이 중요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자부심 'We're from Royal Kingdom of Netherlands!' (우리는 네덜란드 왕국에서 왔다)

네덜란드식 복장을 한 관객들 단숨에 모든 관중들의 주목을 끌며, 경기장의 일일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 네덜란드식 복장을 한 관객들 단숨에 모든 관중들의 주목을 끌며, 경기장의 일일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 서원종


네덜란드는 아마추어 야구 강국이다. 가장 먼저 쿠바를 연상할 수 있지만, 4년 전 네덜란드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맛본 한국으로서는 네덜란드라는 이름이 뇌리에 강하게 박힐 수밖에 없다. 지난 7일 한국과 다시 이루어진 경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약한 상대인줄만 알았던 네덜란드가 점점 성장해 이제는 세계 야구 무대를 넘보고 있다.

유럽에 위치해 있어 한국과의 거리가 상당한 네덜란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네덜란드인이 고척 스카이돔에 자리해 주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상당히 있는 만큼, 경기장으로 향하는 팬들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이번 기회에 네덜란드의 힘을 보여 주겠다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자신을 네덜란드의 의류 사업가라고 밝힌 플로리스(Floris Jonkers)씨와 윌럼(Willem De Vries)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WBC가 개최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방문 계획을 잡았다는 이들은 네덜란드 출신임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응원 복장 역시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오렌지색으로 통일하고, 네덜란드의 전통 의상을 입는 등 WBC 대회를 네덜란드의 문화를 알리는 장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네덜란드를 응원하는 관중. 한국 야구장의 먹거리 문화가 특히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 네덜란드를 응원하는 관중. 한국 야구장의 먹거리 문화가 특히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 서원종


한국 대표팀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보며, 이들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여유를 느끼고 흐름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특한 의상과 콘셉트 덕분에, 한국 응원단상에서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춤까지 추었고 공수교대 시간에 진행되는 댄스 배틀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경기 전 야구광장에서는 네덜란드의 민요로 카니발을 진행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흔히 '야구는 일상이고 축구는 축제'라고 하지만, 이들에게 야구는 일상이 아닌 축제임에 틀림없었다. 자국 선수들의 세밀한 동작 하나하나에 열성적으로 반응하고, 한국에 원정을 온 팬들이라는 제한적인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마치 자신들의 것처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보였다. 경기가 끝난 후 이들은 대표팀의 이름을 한 명씩 연호하며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를 즐기는 네덜란드 관중.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은 네덜란드 대표팀과 한몸이 되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응원을 보여 주었다.

▲ 경기를 즐기는 네덜란드 관중.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은 네덜란드 대표팀과 한몸이 되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응원을 보여 주었다. ⓒ 서원종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한국 응원단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응원했지만, 결과적으로 경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즐길 수 있었던 네덜란드 관중에게 밀렸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응원단과 같이 즐길 수 있는 팬들이 많을수록, 선수들은 더욱 힘을 얻게 되고 프로의식을 함양할 수 있다.

특히나 일분 일초가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매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네덜란드 응원단의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없지 않다. 현재 1라운드 탈락이 거의 확실시 되어가는 상황인 만큼 크나큰 충격에 빠져 있는 대표팀을 비롯한 야구계에게, 더 높은 실력 함양만큼 절실한 것은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자세이다.

대만 '반드시, 반드시 이긴다'

서울라운드에 참가하는 4개국 중 한국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대만은, 짧은 거리에 걸맞게 다른 나라와는 다른 엄청난 수의 응원단이 경기를 함께했다. 경기장 개문 시간인 10시에 발맞추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대만 관중들은, 몸을 풀고 있는 대만 선수들을 향해 목청높은 '짜이요(힘내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국제 대회에서 정식으로 쓸 수 없는 타이완 국기를 정성스레 한 명씩 배부하고, 대형 국기 역시 준비하는 것을 잊지 않는 등 다른나라 못지 않게 애국심이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좋아하는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관중도 있었으며, 선수들의 사진을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찍기 위해 그물망에 착 붙어 있는 관중도 적지 않았다.

'타이완 짜이요!' 단체로 응원을 하러 온 대만 관중들이 응원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 '타이완 짜이요!' 단체로 응원을 하러 온 대만 관중들이 응원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 서원종


이날 대만 관중들을 취재하기 위해 온 대만 언론도 야구장 내 북새통을 이루었다. 대부분은 대만 관중들이 얼마나 대표팀을 믿고 있는지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이들의 응원 모습을 가득 담아가는 취재진도 있었다. 역대 최약체라고 평가되는 대만 대표팀인 만큼, 이들에게 힘을 넣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이 날, 이스라엘을 상대한 대만의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야유와 비난을 삼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선수들이 경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또 조금이라도 경기에 일조한 선수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는 현재 대다수의 팬들이 태업에 가까운 선수들의 태도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에 있다.

대만 언론과 인터뷰하는 관중. 대만 관중들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여 주었다.

▲ 대만 언론과 인터뷰하는 관중. 대만 관중들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여 주었다. ⓒ 서원종


이런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만은 공식 응원단을 한국으로 급파해 그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북, 드럼, 트럼펫과 같이 연주할 수 있는 도구들과 응원단장, 치어리더 등의 응원을 이끌어 갈 사람들도 있는 만큼 응원에 필요한 도구는 없는 것이 없는 대만 응원단이다.

일본 야구의 응원법과 매우 유사한 대만 야구는, 특별히 스피커와 앰프를 켜지 않고 직접 연주한 반주에 팬들의 노래를 곁들인다. 반주를 스피커로 대체하는 한국 응원단보다 응원단의 노고가 훨씬 많이 들어가는 점이다. 응원단의 이러한 노고를 당연히 알고 있는 관중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엄청난 육성으로 자국 선수들을 격려하고 상대 선수들의 기를 꺾는다.

우리 대표팀과 마찬가지로 2라운드 진출이 불투명한 대만은, 9일 치러질 예정인 한국전에 여러모로 총공세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해왔던 열성적인 응원이, 결전의 날 얼마나 많은 대만 선수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네덜란드 응원단과 비교해 봤을때 여유를 가지고 응원에 임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자국 대표팀을 위한 진정성만큼은 조 1위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단장의 지시에 맞게 응원하는 대만 관중들. 치어리더, 북, 드럼 등 없는것이 없는 응원단은 특별히 스피커를 켜지 않아도 경기장 가득 소리를 울려 퍼질수 있게 했다.

▲ 단장의 지시에 맞게 응원하는 대만 관중들. 치어리더, 북, 드럼 등 없는것이 없는 응원단은 특별히 스피커를 켜지 않아도 경기장 가득 소리를 울려 퍼질수 있게 했다. ⓒ 서원종


이처럼 모든 나라의 응원법이 제각기 다르지만, 자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마음만큼은 모두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열성적인 응원은 대표팀의 기운을 복돋아 줄 뿐만 아니라, 인접한 이웃 국가들의 관심 역시 잡을 수 있어 야구의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다. 누군가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 관심은 어느 순간 멀리 퍼지기 마련이다.

앞으로 절반밖에 남지 않은 WBC 서울라운드에, 얼마나 놀라운 응원이 더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특히 3월 9일 대만전에 많은 대만 현지인이 관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응원단 역시 실의에 빠진 선수들의 기운을 복돋아줄 수 있는 응원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WBC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