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버든

현대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생리통'도 환경호르몬의 탓이라고 < SBS 스페셜 >은 진단한다. ⓒ SBS


<SBS 스페셜>은 지난 2006년 '환경 호르몬의 습격' 편을 통해 생리통이 심한 여학생들에게 '자궁 내막증'의 위험이 있으며 이것이 환경 호르몬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과연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환경 호르몬'이 습격한 세상의 10년 후를 지난 2월 26일과 3월 5일, 2부작으로 방영된 '바디 버든'이 살펴봤다.

호르몬은 생체의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로 생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환경 호르몬(environmental hormone)은 말이 호르몬이지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산업 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와 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물질이 우리 몸의 정상적인 호르몬 작용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동물군의 생태계, 나아가 지구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안방의 세월호'로 기억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2001년 만들어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는 당시 신종 플루의 유행을 등에 업고 날개 돋친 듯 연간 60여만 개가 팔려나갔다.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쓸 수 있다'던 문구를 믿고 사용했던 소비자 중 폐가 굳은 채 죽어간 1124명의 사망자를 비롯한 5410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그러나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폴리 클로로 바이페닐(PCB), 다이옥신 화합물 등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 70여 가지가 넘는 물질이 있다. 그리고 이 '외인성 내분비 교란 물질'은 또 언제 어떻게 우리를, 우리 지구를 죽음으로 몰고 갈지 모른다.

자궁, 경고하다

 sbs스페셜- 바디 버든 1,2부

10년이 흘렀다. 증상은 더 심각해졌다. ⓒ SBS


2006년 방송 당시 다큐멘터리는 환경 호르몬이 자궁 내막증, 성조숙증, 요도 하열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문제 제기했다. 왜 자궁이었을까? 환경 호르몬은 우리 몸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치지만,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 자궁이다. 그 이유는 바로 환경 호르몬이 우리 몸에 들어와 '여성 호르몬'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큐는 5개 기관 30여 명의 연구진과 함께 생리통을 비롯한 5가지 자궁 질환을 가진 여성을 주목했다. 이들과 4주간 '바디 버든 프로젝트'를 통해 환경 호르몬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는 한편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2006년 조사 당시와 10년이 지난 현재, 놀라운 차이점이 있다. '생리통'이 여성들에게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병적이라 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여성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이런 여성 중 상당수가 자국 내막증을 비롯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희귀 질환이었던 자궁 내막증이 이젠 여성들의 흔한 질환이 되었다.

극심한 생리통을 비롯하여 자궁 내막증, 불임 등 다양한 자궁 질환을 가진 여성들이 모였다. 우선 이들 몸속의 '바디 버든'을 측정해 보았다. '바디 버든(BODY BURDEN)'은 인체 내 유해 인자, 화학 물질의 총량을 뜻하는 용어이다. 바디 버든이 높다는 건 인체 내 유해 물질의 축적 수준이 '높'거나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걸 뜻한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은 바디 버든의 원인이 된다. 화학제품 범벅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개별 화합물의 유해성도 문제이지만, 이로부터 비롯된 화학적 유해의 총량이 진짜 문제라며 다큐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아침에 일어나 플라스틱 통에 든 샴푸로 머리를 감고, 화학제품 용기에 든 화학제품 범벅의 화장품으로 빠짐없이 온몸을 도배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 끼니를 챙기느라 화학제품 용기에 든 식사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먹거나, 그도 아니면 역시나 화학제품 용기에 든 간편 조리 식품으로 배를 채운다. 그리고 화학제품으로 코팅된 컵에 커피를 마시고, 화학제품인 생리대를 쓰고…. 동어반복처럼 '화학제품'으로 매일의 삶을 살아간다.

인간, 그중에서도 특히나 여성들이 더 많은 환경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만 봐도 당장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여성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이 환경 호르몬 중 상당수가 몸속에 들어와 '여성 호르몬'인 체하며 여성의 자궁을 '공격'한다. 당연히도 조사에 참여한 여성들의 바디 버든 수치는 심각하게 높았다.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독성 유전

 sbs스페셜- 바디 버든 1,2부

환경호르몬은 아이에게까지 전달된다. ⓒ SBS


1부가 환경 호르몬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여성들의 문제에 접근했다면 2부는 우리 대에서 끝나지 않는 환경 호르몬의 영향을 살핀다. 딸과 함께 '바디 버든 프로젝트'에 참여한 캐나다의 감독 베리 코헨, 코헨 감독은 검사 결과를 보고 경악한다. 캐나다에서는 20여 년 전에 사용이 금지된 환경 호르몬, 당연히 감독 역시 어린 시절 이래로 사용한 적이 없는 환경 호르몬이 그녀의 딸 몸에서 측정됐기 때문이다.

2부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의 후손들이, 그들이 사용한 적조차 없는 환경 호르몬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모유 수유를 하지만, 그 모유 수유를 통해 어머니의 바디 버든은 줄어드는 반면, 축적됐던 환경 호르몬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진다. 최경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어린아이일수록 '언제' 노출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노출되느냐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2013 <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라는 책을 펴낸 임종한 교수는 현대인들의 대다수 질병이 '환경 호르몬'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천식, 아토피, 당뇨 등의 질병이 느는 것만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ADHD 등의 정신적 질환조차 환경 호르몬과의 연관성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 당 하루 200여 종 이상의 화학 물질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를 임종한 교수는 '담배만큼' 나쁘다고 경고한다.

완벽하지 않은 대안, 우리가 진짜 해야할 것

 바디 버든

8주의 노력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SBS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 생활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환경 호르몬에 우리는 무방비하게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다큐는 미흡하나마 그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8주간의 '바디 버든 프로젝트'에서 여성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주변의 환경 호르몬과 '절교'를 고한다. 화장을 지우고, 친환경 제품을 쓰고, 채소 위주의 유기농 식사를 하고자 노력한다.

겨우 8주에? 하지만 겨우 8주 만에 참가한 실험자들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생리하면 그 며칠간은 일상생활을 전폐해야 할 정도로 아팠던 실험자들은, '생리통'을 잊은 자신이 놀랍다. 불규칙한 생리로 고통받던 여학생은 피부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며 생리도 원활해졌다. 불임 부부에게는 희망조차 보인다.

겨우 8주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모유 수유조차 두려운 '독성 유전'도 마찬가지다. 환경 호르몬'이 덜한 숲에서 온종일 뛰어논 아이들의 몸은 달라졌다. 비록 엄마로부터 '독성 유전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도 '유기농' 위주의 식단 등 노력을 한다면 발병 정도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다큐는 분명히 밝힌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이런 일련의 환경 호르몬에 대한 대처가 '개인적'인 소신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제아무리 '환경 호르몬'에서 안전하다는 면 생리대를 쓰고, 유기농 제품을 먹고 사용하고, 자연에서 뛰논다고 해도 말이다. 인간 생활지 근처에서 변형되어 태어난 무당개구리와 까치에서 보이듯 무차별적인 환경 호르몬의 공격에 우리의 삶은 무방비하다.

2006년 처음 환경 호르몬의 문제를 제기했던 다큐.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로부터 10년 후 '안방의 세월호'를 겪었다. 역시나 같은 시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은 우리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유럽 연합은 2007년부터 화학물질 규제 제도(REACH) 제도를 도입해 연간 1t 이상 제조 또는 수입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제조량, 수입량, 위해성 등에 따라 제조와 유통 등에 제한을 두고 있다.

물론 우리도 '화학 물질 등록 및 평가에 대한 법률'이 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이, 적정량에 대한 실험조차 없이 무방비하게 제공되면서 소비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게 현실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유럽에서는 통용되던 원칙이 대한민국에 오면 대한민국식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생활 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안전 관리법(살생물제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비용 부담' 등을 우려한 산업계의 반발로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SBS스페셜- 바디 버든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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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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