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다른 종류의 장애를 가진 니모와 도리.

각각 다른 종류의 장애를 가진 니모와 도리.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오후 5시면 어김없이 TV 앞에 앉았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 영화를 챙겨보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다. 만화를 보다 말고 몇 번이고 대사를 따라 했다. 선반 위, 비스듬히 놓인 액자는 그 시절의 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진 속 나는 신문지를 둘둘 말아 칼처럼 쥐고, 무엇인가 힘껏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익숙할 법도 됐지만 볼 때마다 부끄럽다. 심지어 속옷 바람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다.

그 무렵,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 모여 역할극을 했다. 우리는 돌아가며 주인공이 되었다. K는 그 무리의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기억건대, K는 어릴 적 백혈병을 앓았다. 항암 치료로 인해 머리가 빠졌다. 거꾸로 뒤집어쓴 야구 모자는 K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교실 안에서 단 한 사람, K에게만 모자를 쓰는 것이 허용됐다. 누구도 이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힘이 약하고, 동작이 느렸지만, 이 역시 문제 될 것 없었다. 우리는 누구 하나 뭐라 않고 K를 기다렸다.

중학교 2학년, 다시 K와 같은 반이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이었지만 중학교는 구성원이 절반 이상 달랐다. K의 느린 행동은 이전과 달리, 문제가 되었다. K를 기다리는 일이 사라졌다. 시간과 성과를 이유로 K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제한했다. '수고'로 여겼다. 종종 반 아이들은 K의 행동을 흉내 내며 조롱했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가 K의 별명이 됐다. '애자', 그렇게 불렀다. 이따금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외면했다. 2학년 내내, K는 조용히 학교에 다녔다. 점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도리를 찾아서>는 K와 같은 친구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전작인 <니모를 찾아서>의 플롯을 거의 그대로 재구성했다. 전작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도리'가 어릴 적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단순한 모험극이 감동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도리에게는 장애가 있다. 기억을 곧 잘 잊어버린다. 이는 '니모' 또한 마찬가지다. 니모의 한쪽 지느러미는 선천적으로 크기가 작다. 도리가 부모를 찾는 여정을 막아서는 것은 이들의 장애요소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이다. 말린은 도리가 기억상실증을 이유로 그의 행동 범위를 제한한다.

 "바다에는 벽이 없어"라는 이 말을, 나도 전해주고 싶다.

"바다에는 벽이 없어"라는 이 말을, 나도 전해주고 싶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도리가 난관을 헤져나가는 과정을 통해, 장애요소가 목적을 달성하는데 아무 문제되지 않음을 이야기 곳곳에 녹여낸다. 영화에는 도리를 도와주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들 또한 저마다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다리가 7개인 문어와 근시로 앞을 잘 볼 수 없는 상어 등이다. 서로를 돕고, 용기를 심어준다. 이들의 연대를 통해 스스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관객에게 전달한다.

학년이 끝날 무렵, 반 아이들과 함께 롤링페이퍼를 돌려썼다. 짓궂은 농담과 인사치레 사이에 유독 긴 문장이 눈에 띄었다. 두세 줄에 걸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유별나게 짝이 없는 그 문장은 '고맙다'라는 말이 수없이 반복됐다. 문장의 주인이 K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고마움을 표했다. K의 문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하늘색 카드에서 좀처럼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졸업을 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K는 숨어있다. 간간히 들리는 친구들 소식 속에서 그의 소식만이 들리지 않는다. <도리를 찾아서>에서 유독 기억에 밟히는 대사가 있다. 그 말을 뒤늦지만 K에게 전하고 싶다. 근시 때문에 벽에 부딪히는 일이 두려운 상어, '데스티니'에게 고래 '베일리'가 건넸던 말.

"바다에는 벽이 없어."

도리를 찾아서 도리 장애 사회적 편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