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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는 책을 스무 권이 조금 안 되게 읽었다. 책을 읽은 시간과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책을 통해 많은 깨달음과 생각의 발전을 만들어냈다. 2017년 더 나은 책 읽기를 구상하다 보니, 새로운 다짐들이 여럿 생겼다.

한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는 것, 너무 많은 책을 한꺼번에 읽지 않는 것, 어려운 책만 찾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제대로 읽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 책을 읽는 방법으로 서평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글을 쓰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책을 평가하는 일은 어렵다. 나는 글쓴이의 주장에 수동적인 편이며,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이 부족하다. 조금 어려운 책을 읽게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더 많은 집중과 꼼꼼한 독해 대신, 흘러가듯 텍스트를 눈으로 넘기는 편을 택한다. 이러한 책 읽기는 읽는 중에도 글쓴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평을 위한 책 읽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더 많은 생각과 비판을 만드는 책 읽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과 생각을 말, 글로 담아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생각을 말로 표현할 때 제 생각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말조차도 이런 효과를 지니는데, 논리가 더욱 꼼꼼해야 할 글의 효과는 어떻겠는가.

그래서 택한 책이 '독서의 완성'이란 부제가 붙은 <서평 쓰는 법>(이원석, 유유)이다. 짧은 책이다. 총 180쪽이고, 책 크기도 가로 12.8, 세로 18.8cm로 무척 작다. 처음 책을 받아보았을 때 크기가 작아 놀랄 정도이다. 속지에 여백이 없어 약간 답답하다. 글자 크기는 크다.

책 <서평 쓰는 법>의 표지
▲ 서평 쓰는 법 책 <서평 쓰는 법>의 표지
ⓒ 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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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길지 않고, 내용이 적은 편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모든 글은 높임말로 쓰여 있고, 문장도 쉽고 간결하다. 쓸데없는 미사여구나 전문용어를 넣지 않았다. 잘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여러 고전과 깊이 있는 배경지식을 담아내고 있으니, 많이 알수록 재미있고,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책 제목은 '서평 쓰는 법'이지만 내용은 '쓰는 법'이라기보다는, 글쓴이의 서평 가치관이 담겼다. 쓰는 법이라고 할 수 있는 '서평의 방법'은 146p부터 162p까지, 열여섯 페이지 남짓일 뿐이다. 책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굉장히 얄팍하고 평면적인 지식만 담을 수 있는 분량이다. 글쓴이는 서평을 쓰는 기술과 형식보다는 본질과 의의에 대해 말하려 한다.

'독후감이 주관적이라면, 서평은 객관적입니다. 자신의 입장을 객관화하느냐의 여부에서 서평과 독후감으로 갈라집니다. 독후감이 독백이라면, 서평은 대화입니다.' - 25p.

책 내용의 일부이다. 책은 이런 형식과 내용의 글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서평의 본질, 목적, 전제, 요소, 방법의 순으로 책은 진행되는데, 사실 방법을 제외하고는 위의 문장과 비슷한 이론의 반복이다. 그 이론을 말하며 다양한 예시를 끌어다 쓰고, 여러 사람의 주장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서평에 대한 글쓴이의 가치와 생각을 강화해 나간다.

정작 많은 독자가 궁금해할 '서평 쓰는 법'은 온데간데없다. 따분하고 당연한 글쓴이의 생각만 반복한다. 만약 친절한 높임말로 쓰이지 않았다면, 쓸데없이 문장을 늘어트리고 전문용어를 반복했다면, 그나마 읽을 만한 여러 인용을 제외했다면 이 책은 아주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었을 것이다. '서평학개론' 같은 내용을 술술 읽히게 풀어놓았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 되겠다.

책의 마지막에 '서평 쓰는 (방)법'이 등장하는 까닭에 앞부분의 페이지는 빠르게 넘겼다. 하지만 그 방법조차도 얄팍하고 당연한 지식의 나열이었을 뿐이다. 서평을 쓰는 방법이 궁금해서 산 책인데, 잘 읽기 위한 방법으로 '서평'이 꽤 훌륭하다는 걸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놓는 효과만 얻었지,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선 얻은 게 없다. "아, 서평을 쓰자!"는 다짐을 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책에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그러나 아쉽지만 서평을 써보려는 이들(방법이 궁금한 이들)에게는 함부로 추천할 수 없는 책이다. 서평을 쓰려고 결심한 사람이라면 잘 쓴 서평을 여러 개 읽는 것이 훨씬 낫다. 막상 서평을 쓰기 위해 앉아 키보드에 손을 얹거나 펜을 쥐었을 때 이 책은 아무런 도움이나 통찰을 가져다주지 못 할 것이다.

다만, 서평에 관심을 두던 사람이 실제로 손을 움직이며 서평을 쓰게 하는 효과는 있다. 난 그런 효과를 봤다. 책을 읽을 때도 서평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때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마음에 드는 문장은 적어놓고, 참고할 가치가 있는 페이지는 사진을 찍어 두었다. 책을 읽고 나면 드는 생각을 간단하게나마 기록한다. 내용을 비판적으로 곱씹어본다. 그리고 처박아둔 카메라를 꺼내 표지도 찍어 보고, 언제까지 서평을 써서 블로그에 올릴지도 고민한다.

부작용도 있다. 남한테 보여주는 글을 쓰기 위한 책 읽기가 되다 보니 한 글자 한 글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한 손에 펜을 쥐고 있게 되고, 흥미로울 법한 주제인데도 비판 거리를 찾고 날카롭게 접근하려는 마음에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한마디로 책을 읽는 재미가 줄어든다.

그런데도 내가 서평 쓰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내 책 읽기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었음에도 머리에 남은 게 영 없는 내 잘못된 책 읽기 습관의 훌륭한 치유책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서평은 꽤 훌륭한 글쓰기 연습법이다. 서평을 쓸 때는 어떤 주제로 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책 안에서 찾으면 되니까!). 생각하고 쓰는 것 외에 조사나, 취재와 같은 다른 노력이 상대적으로 덜 요구된다. 어디서든 간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이니, 이만한 글쓰기 연습도 없겠다.

모든 사람이 서평을 쓸 필요는 없다. 서평을 쓰는 책 읽기가 그렇지 않은 책 읽기보다 훌륭한 것도 아니다. 서평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책 읽기의 큰 즐거움을 저버린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다. 나와 비슷한 책 읽기를 하고 있거나, 서평에 관심을 가지려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한다. 서평이라는 좋은 글쓰기 방법을 소개받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 (http://youthr.tistory.com) 에도 올라가는 글입니다.



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이원석 지음, 유유(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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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평 쓰는 법, #유유, #이원석,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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