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최순실 소환 앞두고 분주한 취재기자들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만 32살 김 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지난 9일이었다. 오전 취재를 마친 김 기자는 출고하지 않은 한 꼭지의 기사와 수첩에 눌러쓴 7줄의 자필 유서를 남겼다. 유서의 내용은 이랬다.

"몸도 정신도 너무 망가져서 더 이상 힘이 나질 않습니다. 결국 이런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국가기간통신사의 벽에 한없이 작아지는... 제가 싫습니다. 결국 발로 뛰어 조금이나마 격차를 줄이려고 했지만 안 되네요. 모든 것이 제가 못난 이유겠죠"

김 기자는 한 민영뉴스통신사의 부산취재본부에서 흔히 '법조'로 불리는 법원과 검찰 취재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김 기자는 기성 언론들이 꾸린 이른바 기자단 소속은 아니었다. 수사 브리핑 등 통상적인 취재 과정에서 연락을 받기도 어려웠다. 김 기자는 평소 주변 기자들에게 "나에게는 브리핑 연락이 안 오거나, 오더라도 한참 늦게 온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법조 취재에 있어 꼭 필요한 판결문 등의 자료를 받는 것 역시 힘들었다. 김 기자가 사망한 날도 그는 오전에 부산지방법원에 판결문을 요청했지만, 법원 측은 기자단에 자료를 먼저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자료 제공 차별 등 존재... 기자단 측 "취재 방해 없었다"

지역 언론계에서는 이 같은 일이 부산 기자 사회의 폐쇄성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지역매체와 중앙매체를 다 더해도 10여 개 남짓한 언론사만 기자단을 꾸리고 기자실이나 자료 제공 등의 편의를 받는 구조이다 보니 배제된 언론사는 기본적인 취재 여건조차 제공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부산에서 비단 법조만의 문제도 아니다. 출입처 역시 기성 언론이 잡고 있는 기자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출입처 관계자는 "기자단과 비 기자단에 일부 자료를 제공할 때 시차를 두곤 했다"면서 "(비 출입사도) 경쟁사이다 보니 고려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부산 법조 기자단 관계자는 "기자단 차원에서 취재를 방해하거나 자료 제공을 막은 사실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자단 차원이 아닌 개개인이 어떻게 했는지까지는 모르겠다"고 말을 아꼈다.

최근 불거진 엘시티 사건 취재를 위해 부산에서 법조 취재를 경험한 서울 지역 기자는 "자료를 제공할 때 비 출입사와 서울 기자들에게는 조심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걸 들었다"면서 "분명히 텃세라고 느낄 만큼 배타적인 시선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마구잡이 '독립채산제' 설립으로 언론 질 저하

독립채산제 문제를 다룬 15일 자 <기자협회보>
 독립채산제 문제를 다룬 15일 자 <기자협회보>
ⓒ 기자협회보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것만으로 김 기자의 죽음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김 기자가 근무한 민영통신사는 서울의 본사와는 법인이 달리 운영되는 독립채산제였다. 경영과 인사, 고용관계 등을 부산취재본부로 불리는 독립채산제가 행사했다. 기본적인 처우가 본사 소속보다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어떻게든 수익을 내야하는 독립채산제가 기자들에게 무리하게 광고 영업을 시킨다는 비판도 계속 터져 나왔다. 심지어 일부 독립채산제는 월급을 광고 수당으로 대신하는 곳까지 있다.

김 기자가 몸담았던 곳도 광고 영업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그를 해고하기까지 했다. 이후 소송으로까지 가는 다툼 끝에 김 기자는 복직했지만 이후에도 소위 '실적'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해 왔다고 주변인들은 전했다. 

이는 악순환의 고리이기도 했다. 기성 언론은 처우가 낮아 이직률이 높고, 취재보다는 광고 영업에 매달린다는 인식 때문에 독립채산제 기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역 기자 사회에서 동료로 인정받기가 어려웠고, 기자단 가입으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기자 사회 각성 촉구 "출입기자 시스템·적폐 뜯어 고쳐야"

기자 사회 내부에서는 더는 이런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에서 발행한 15일 <기자협회보>는 "출입기자단의 카르텔이 앳된 기자의 청춘을 앗아갔다니 참담할 뿐"이라며 "기자단이 출입처를 압박해 동료의 취재활동을 방해했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신문은 "출입기자단의 벽을 넘기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는 2년차 기자에게 위로는 못해줄 망정 실적을 강요한 것은 민영뉴스통신사의 이상한 지역본부 운영시스템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자협회보>는 "폐쇄적 출입기자 시스템 등 기자사회의 적폐를 뜯어 고쳐야 한다"면서 "기자를 소모품인 양 부려먹고 수익만 좇는 언론사는 퇴출시켜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신문은 "특권과 반칙을 비판하던 우리가 기자단이라는 알량한 기득권에 취하지 않았는지, 기자의 영혼을 직장에 팔아먹고 그렇고 그런 기자로 살아가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기자 사회의 자성을 촉구했다.


태그:#기자단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