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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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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자르는 일을 할 때였다. 한번은 18미리 유리를 4~5천 평 잘라야 되는 오더가 들어왔다. 재단과장이 유리칼을 들더니 자를 생각은 안 하고 벌벌 떨고만 서있다. 벌벌 떨던 재단과장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아무리 깨지라고 있는 유리라지만 자르는 과정에서 모두 파손이 나버리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장님은 얼굴이 벌게지고 수백만 원어치의 유리가 새로 들어왔다. 다시 유리를 자르기 시작하는데 첫 장부터 파손이 나면서 결국 재단과장은 유리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는 재단과 직원들 모두 사장님 앞에 섰다.

"재단과 직원이 모두 몇 사람인가?"
"예, 열두 명입니다."
"그러면 열두 명 중에 18미리 유리를 자를 수 있는 인력이 우리 회사에는 없다는 말인가?"
"..."
"없는가?"
"..."

"재단과장 네 놈은 18미리 유리도 못 자르면서 과장자리에 앉았던가? 철석!(뺨맞는 소리) 못 자르면 못 자른다고 솔직하기나 하던지. 철석!(뺨맞는 소리)"
"죄송합니다."
"그따위 말로는 내 자존심이 회복되지를 못해. 다시 한 번 묻는다. 앞에 놓인 이 유리를 자를수 있는 사람?"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사장님은 플로우트 판유리업계 서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에서 18미리 유리조차 자를 수 있는 고급인력이 없다는데 대한 자존심이 상해서 벌벌 떨고 서 계셨다. 그러나 자를 수 있는 사람도 없었지만 있다고 해도 함부로 나서기가 뭐했다. 재단과장의 체면 때문이었다. 드디어 사장님의 화는 폭발했고 이사님은 사장님의 발길질에 정강이에 불이 났다. 보다 못해 결국 내가 나섰다.

"제가 자를 수 있습니다."
"너 이리와. (철석!) 너 이 자식 이렇게 되기까지 왜 보고만 있었어?"
"저는 재단과 말단입니다. 대리가 둘이고 과장님이 있습니다. 제가 함부로 나설 수 있는 자리가아닙니다."
"..."
"좋다. 지금부터 재단과는 모두 평직원이다. 상하의 구분이 없다."
"..."
"지금 도착한 유리는 자네에게 맡긴다. 나는 자네가 이 유리를 다 자르는 것을 보고 올라간다. 그리고 내일 다시 내려온다."

사장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작업이 시작 되고 재단과장이 이틀에 걸쳐 붙잡고 씨름하던 18미리 유리를 세시간 만에 모두 잘라 놓았다.

"자네 언제 입사 했는가? 어이 이사, 저 사람 인사카드 가져와 봐."
"예."
"자네 어디서 유리 자르는 것 배웠나?"
"포천의 모모 강화유리회사에서 배웠습니다."
"이력서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먼저 있던 회사에서와 동일한 대접을 받으려니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사장님은 서초동 본사로 올라가고 재단과장은 알아서 짐을 싸고 있었다. 나는 무슨 큰 죄나 지은 놈 마냥 옆에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고 사람들은 흘끔흘끔 나와 짐을 싸는 재단과장을 훔쳐보기에 여념이 없다.

다음날 이미 재단과장과 대리 둘은 짐을 쌌으니 말할 필요는 없겠다. 나는 말단에서 과장으로 파격 승진이 됐고 월급은 배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본 실력이 발휘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사님이나 공장장님과 별도로 사장님과의 다이렉트 전화선이 연결되었다. 유리회사에서의 원가절감은 오로지 유리를 자르는 재단과장의 손에 달려 있기에 어느 누구도 재단과장에게는 함부로 못했다.

재단과장으로 진급을 하고 명절 때면 유리를 실어 나르는 차량이나 자르고 남은 자투리 유리를 실어가는 사람들에게서 구두티켓이 들어오는데 많을 때는 20여장이 넘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구두티켓이라든가 선물로 들어온 꿀단지를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모두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재단과장으로 그렇게 삼년을 근무하고 주말부부생활에 염증을 느껴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다.

이 글이 픽션이다 논픽션이다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있는 사실을 더욱 리얼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울 뿐더러 이 글에 관련된 사람이 지금도 비즈니스 관계로 얽혀있어 그 사람이 이 글을 읽으면 파안대소하지 싶다.

지난 내 앞전의 재단과장을 보았을 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그 바탕에 깔린 축적 된 실력이 없으면 오래 못 간다는 사실이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대통령이나 여타 정치인들을 볼 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야말로 허구요, 처절한 픽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만큼은 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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