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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와 밀가루를 더 많이 넣은 계란부침. 부족한 단백질은 고등어에게 부탁해본다.
▲ 계란이 귀한 밥상 야채와 밀가루를 더 많이 넣은 계란부침. 부족한 단백질은 고등어에게 부탁해본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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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과 김으로 애들 키웠다"라는 말이 있다. 엄마들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말이다. 반찬 없는 날, 반찬 하기 싫은 날, 밥 잘 안 먹는 날, 그 언제든 계란과 김만 있다면 걱정 없다. 삶은 계란, 계란후라이, 계란찜, 계란국, 계란말이, 계란볶음밥, 조미 김, 마른 김, 김국, 계란과 단무지만 넣어도 맛있는 김밥. 나 역시 삼남매를 이렇게 먹인 날이 태반이다. 거기에 남편의 점심 도시락도 계란과 김에 의지한 날이 많다.

더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계란이다. 계란으로 한 모든 걸 좋아한다. 계란이 딱 하나 남은 날엔 아이들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라면에 계란을 톡 깨서 몰래 혼자 먹곤 한다. 쌀이나 김치 떨어지는 것보다 계란 떨어지는 게 더 걱정이다. 요즘말로 '계란 덕후'.

그런 계란이 요즘 전국적으로 비상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독감으로 고생을 한다. 2003년부터 겨울이면 AI 바이러스(아래 AI)로 전국의 농가에 비상이 걸려왔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보다 혹독하게 퍼지고 말았다. 보통 2월경에 퍼지던 A형 독감이 12월 초에 휘몰아쳐 영유아부터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까지 호되게 고생을 했다. AI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7년 1월 현재 3200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을 당했고, 계란값은 50% 이상 올라버렸다.

계란과 김으로 키운 아이들... 이젠 언감생심

한달을 계란 한판으로 버틴다, 식구 다섯이서.
▲ 열흘에 계란 한판이었는데 한달을 계란 한판으로 버틴다, 식구 다섯이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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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이후 한 가지 뉴스에 집중하느라 다른 뉴스에 소홀했었다. 라면에 '계란 톡'을 못하는 게 억울해 지나간 뉴스를 다시 찾아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어 밥상에서 계란 구경하기 힘든지.

2016년 10월 28일: 충남 천안 봉강천 야생원앙 분변에서 검출된 고병원성(H5N6형)에서 AI 첫 확진 판정.
2016년 11월 11일: AI 확진 판정. (언제 떨어진 분변인지, 해외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돼 국내에 유입된 철새의 분변인지, 반대로 국내 농가 등에서 바이러스가 옮은 경우인지 등 여러 가능성과 변수에 대한 조사 없음). 방역대를 시단위로만 설정한 뒤, 인근농가에 '철새 주의' 문자를 보내는 수준으로 그침.
2016년 11월 16일: 농가에서 처음 의심 신고 접수.
2016년 12월 12일: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 첫 소집.
2016년 12월 15일: AI 위기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 살처분 가금류 2000만 마리 넘어섬.

우리나라와 달리 올 겨울 똑같이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일본은 야생조류 분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자 즉각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아베 총리가 직접 방역상황을 챙겼다. 90만 마리의 가금류 살처분으로 상황이 진정되었다. 방역 골든타임을 놓친 우리 정부를 향해 원망을 하고 싶지만, 지금 우리에게 정부가 있는지조차 의문인 상황이라 원망의 대상마저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AI 확산 과정으로 정리해보면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45일 동안 외부 접촉(달걀수집상이 하루 1~2차례 농가 방문)이 잦아 사람에 의한 AI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높은 산란계와 평소 위생과 방역이 열악한 축산농가 환경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버렸다. 위기경보가 내려진 후에도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24시간 내 살처분 원칙도 며칠씩 지연되면서 더 빠르게 퍼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놀림축산식품부는 16.12.2. 24시 기준으로 첫 현황지도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12월 2일, 6일, 7, 11, 13일까지 간헐적으로 게시하다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 첫 소집된 12일 이후인 12월 14일부터 매일 현황을 업데이트 하고 있다.
▲ 2017.1.18 08:00기준 - AI 양성농장 현황지도 놀림축산식품부는 16.12.2. 24시 기준으로 첫 현황지도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12월 2일, 6일, 7, 11, 13일까지 간헐적으로 게시하다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 첫 소집된 12일 이후인 12월 14일부터 매일 현황을 업데이트 하고 있다.
ⓒ 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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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발견된 2003년부터 정부는 그 원인을 철새탓으로 돌려왔다. 그런데 왜 철새는 집단으로 감염이 되지 않고 우리나라 농가의 닭과 오리는 집단으로 감염이 되는 걸까?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럼 왜 A4 용지 반도 안 되는 공간에서 닭들은 알 낳는 기계로 사육하는 걸까?

AI 발생 전 7000만 마리(적절한 산란닭 수는 6000만 마리 정도)에 이르는 산란닭 수 과잉으로 양계업계는 더 많은 계란을 더 싼 가격으로 공급하가 위해 농가들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2016년 상반기 달걀 출고가는 개당 110원 가량) 수익이 적으니 축사와 닭 관리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평소 '공급과잉'이었던 계란수를 짚어보자. 더민주당 김현건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평소 계란이 전체 생산량에서 20%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AI로 부족해진 계란의 수는 30%, 뺄셈을 하면 10%가 부족해야 하는데 계란값은 50% 이상(동네 슈퍼의 경우 평소 5800원 선이던 특란 30알이 17년 1월 1만 2000원~1만 5000원. 대형마트는 이보다 저렴하다)까지 상승했다. 유통과정의 문제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계란은 수집상에 의해 유통된다고 한다. 산란계 축산농가보다 수집상의 수가 더 많다는 설이 나돌 정도이며 설을 앞두고 수집상들이 사재기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정부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정부의 발표로 더 의혹만 증폭되는 거 어쩔 수 없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 미국산 계란 수입 후 주춤하는 국내산 계란값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 채널A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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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분간은 '라면에 계란 톡' 금지"

1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계란 소비자가(30개들이 특란 기준) 1월 13일 9543원에서 16일 9491원으로 하락했다. 한 달 넘게 오르기만 하던 계란값이 드디어 떨어진 것이다. 미국산 계란이 수입되면서 벌어진 결과다. 계란 수입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계란은 유통기한이 짧고(냉동이 되지 않는다!) 운송의 여러 문제가 있어 수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설을 앞두고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한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미국산 계란 수입을 결정했다.

미국의 계란 유통방식, 통관과 항공 운송 과정, 수입 후 국내 유통기간 등 살펴보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데 과연 다 고려한 것일까? 이런 문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수입 계란 판매 가격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는 계란 수입 항공료를 일부 지원하고 할당관세 작용(27% → 0%)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수입을 허가했다. 그러나 결과는 미국산 계란 한판에 8990원, 겨우 500원 인하된 가격이다. 대형마트들은 국산 달걀값을 인상하는 대신 달걀 수입 유통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고 하는데 지난 6일 이마트 계란 한 판 가격인 7560원 보다 더 비싼 미국산 계란값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게다가 정부가 지원하는 수입 계란 항공운송비 50%(수입 계란 한 개당 76원의 항공운송비가 지원)를 계산하면 계란 한판의 25%는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하는 셈이 된다. 계란 수입이 본격화 되면서 명절을 앞두고 치솟을 계란값과 수집상과 대형 제과업체의 사재기 의혹 등이 해결되어 수급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같은 기분을 지우기 힘들다. 

16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미국산 계란수입계획을 밝힌 이후 미국에서 산지 계란 가격이 최근 2∼3일 새 32%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설 연휴 전에 계란 3000만 개를 더 들여오겠다는 정부는 미국산 계란값 상승과 톤당 200만 원으로 예상했던 항공운송비의 300만 원 인상으로 인해 1월 25일까지 통관되는 물량은 톤당 100만 원 한도인 항공운송비 지원액을 150만 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서민들 밥상을 걱정한 정부의 정책이라고 하는데 과연 누구의 걱정이 덜어지고 누구의 주머니가 불려지는 걸까? 결국 이익을 보는 건 미국 산란계와 유통업자들이 아닐까? 농림축산부는 지나 16일 "살처분 보상금 예비비(1687억 원) 확보, 살처분 농가 경영 안정을 위해 축산정책자금 상환기간 2년 연장 및 이자 감면"이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4년에 경영난을 겪은 개인 농가가 양계기업과 계약을 맺고 2014년에도 정부 보상금의 상당부분(80% 이상)은 기업 통장으로 들어간 선례를 본다면 올해에도 보상금이 개인 농민에게 돌아갈 확률은 미비할 것이다.

친정 아버지께서 1987년부터 25년 동안 비육소를 키우셨다. 25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정부의 지원, 예방대책이 아닌 개인의 빚과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시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소를 모두 팔아버리는 것으로 정리하셨다. 이미 자립의 힘마저 잃고 대기업의 위탁농이 된 개인에게 환경개선과 방역을 미루는 정부의 태도에 농민의 딸로서 화가 치민다. 대기업을 위한 정책은 해마다 개선되는데 농민과 농가시설을 위한 정책은 왜 점점 더 열악해져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것을 버리게 하는지!

우리 농가가 회복될 때까지 계란 반찬 줄이고, 명절에 부치던 전(덕분에 하루 종일 부쳐야 하던 전에서도 해방되고) 줄이면서 계란 대란을 버텼으면 싶다. 완전식품인 계란을 대체할 식품이 많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계란과 김에 의지하던 육아와 도시락을 제철식품으로 바꿔보고 말이다. 여보, 당분간 "라면에 계란 톡!"은 금지!


태그:#AI, #계란값, #계란, #달걀, #조류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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