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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기사 내 언급된 사례와는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기사 내 언급된 사례와는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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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그러면 사장님은 회사 생활 하시면서 조퇴·휴가 이런거 안 내세요? 그러면 경비 아저씨들은 몸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하나요?"

보다 못한 내 질문에 용역업체 사장은 "아니, 조퇴를 할 수는 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갑'인 입주자대표자회의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하니 '을'의 위치에 있는 자신을 어쩔 수 없다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정당한 조퇴"였는데... '막대한 지장' 덤터기

경기도 의왕시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김천일(가명, 남, 67)씨는 어느 날 기존 근무지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경기도 화성시의 W아파트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김씨에게 전보를 명령한 사유는 단 하나였다.

"귀사와 체결한 경비용역계약서 제18조 제1항에 의거 일부 직원의 관리주체의 지시감독 위반과 근로계약서에 의한 근무시간 중 무단이탈(조기퇴근 2~3회) 등 근무규정 위반으로 당 아파트 관리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중략) 해당 직원의 순환조치를 요청드립니다"

김씨는 조기퇴근 한 것은 사실이나 반장에게 허락을 받고 정당하게 이뤄진 조퇴라고 했다. 2년을 일하는 동안 몸이 아파서 딱 두 번 조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근무규정 위반'이라는 입주자대표회의의 통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경비원들이 조퇴나 휴가를 내야하는 경우 소정의 '서류'가 있냐는 질문에 "그런 건 없다"고 말했다.

비용절감 이유로 해고 일삼는 아파트대표자회의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아파트 경비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아파트 경비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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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파트경비원의 잦은 계약해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7월 충남 예산읍의 A아파트에서 주민들이 "경비실 통합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입주자대표회의 측에 반대해 "우리가 1만 원 아끼자고 경비아저씨들을 해고할 수 없다"라고 맞섰고, 같은 해 8월에 서울 강서구 D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보안시스템을 들이고 경비원 44명을 전원해고하겠다는 아파트대표회의게 맞서 법적소송까지 벌인 결과 공사를 무효화시키고 경비원들의 고용을 지켜낸 사례가 있었다.

이런 일들을 계기로 지금까지 어쩔 수 없는 듯 보이거나 비용절감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던 아파트경비원의 해고가 '주민들의 따뜻한 시선과 노력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졌고, 지난주 한 공중파의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초등학생이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의 해고를 막아주세요"라고 대자보를 써붙여 주민 70%의 반대로 해고를 막아낸 사연으로까지 소개되기도 했다.

단순한 비용절감을 이유로 또는 무분별한 해고를 일삼는 그간의 아파트대표자회의 전횡을 막아내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주머니속을 채우기 위한 전횡을 막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아파트주민회의의 갑질, 또 그 갑질을 당연히 여기던 그간의 관행을 함께 막아내고, 누구가의 '해고'에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행히 김씨의 이번 사건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보이므로 구제함' 판정을 받았다. ▲ 김씨의 근로계약서에 근무지가 '경기도 의왕시 S아파트'로 특정지어진 점 ▲ 전보지역이 김씨의 집에서 1시간 50분 거리로 생활상의 불이익이 초래되는 점 등이 구제 판정의 이유였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심판회의 구제사건을 통해 노동자들이 최소한 해고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길 바라고, 조금이나마 해고가 줄어드는 세상을 위해 심판회의 사례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지방노동위원회, #해고구제신청, #경비원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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