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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희 여성부장관으로부터 표창과 상금을 받은 최연수 센터장.
 강은희 여성부장관으로부터 표창과 상금을 받은 최연수 센터장.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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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들을 24년간 돌보며 살아온 최연수(53) 한빛청소년대안센터장이 지난 15일 열린 제12회 청소년푸른성장대상 시상식에서 여성가족부장관 표창과 상금(5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수상 장면을 찍는데 그의 표정이 어색합니다. 2011년 앓았던 구안와사(얼굴신경마비)가 완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폐석(廢石)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보석(寶石)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얻은 훈장이고 20년 넘는 활동에도 월세 사무실 신세를 면치 못한 고달픔으로 얻은 병입니다.

수상의 기쁨도 잠시입니다. 한빛청소년대안센터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서 돌보던 소년 가운데 대학에 입학한 두 명을 내보내야 합니다. 그동안은 정부 지원 없이 그룹홈을 운영했는데 재정난 때문에 지원을 받기로 하면서 18세 이상 소년을 내보내야 하는 규정을 지켜야합니다. 이들 대학생들은 고시원에서 지내게 할 계획입니다. 불우소년들을 보살피는 일은 괴롭습니다.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재임용 탈락... 24년째 거리의 스승

24년째 거리 스승으로 살면서 구안와사라는 병까지 얻은 최연수 센터장.
 24년째 거리 스승으로 살면서 구안와사라는 병까지 얻은 최연수 센터장.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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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 출신인 최연수 센터장의 꿈은 교사였습니다. 전남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1년간 근무하다 학생운동 전력이 밝혀지면서 재임용에서 탈락한 그는 서울에 올라와 학원 강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쫓겨났습니다. 돈 봉투를 건네면서 시험문제를 알려달라는 학부모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학원장은 그를 융통성 없는 선생이라며 쫓아냈습니다.

운동권 출신이라고, 전라도 출신이라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고 쫓겨난 그는 이 나라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송파구 거여·마천지역 가난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야학교사로 봉사하다 만난 학교 밖 청소년들로 인해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가족 모두를 잃고 혼자가 된 아이, 엄마는 가출하고 막노동하는 아빠는 술독에 빠진 판자촌 아이. 비가 새는 판자촌에 모여 술과 담배와 본드에 취해 뒹구는 아이들. 염색한 머리카락에 코와 귀를 뚫어 장식물을 달고 온몸에 문신한 아이,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일진 아이…."

교사의 꿈이 좌절된 것은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24년간 거리의 스승으로 살면서 2천여 명의 제자를 키워냈으니 말입니다. 제자 중에는 사업가, 경찰관, 대기업 사원, 뮤지컬 배우, 요리사, 카센터 사장, 유치원 원장 등 다양합니다. 물론 조폭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제자도 있고 소년원에 간 제자도 있습니다. 열 손가락 중에서 더 아픈 손가락 같은 제자들입니다.

힘든 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제자들의 행복한 모습 때문에

2001년 공부방으로 시작한 도시형 대안학교 '사랑의 학교' 수업 장면. 자원봉사 선생이 학교 밖 청소년을 가르치고 있다.
 2001년 공부방으로 시작한 도시형 대안학교 '사랑의 학교' 수업 장면. 자원봉사 선생이 학교 밖 청소년을 가르치고 있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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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계획이요? 한빛청소년대안센터가 운영하고 있는 '사랑의 학교'를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2001년 공부방으로 출발한 '사랑의 학교'는 재정과 인력 부족 때문에 자원봉사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 운영에 한계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내년엔 교사를 채용해 책임성을 담보할 생각입니다. 문제는 재정입니다. 최 센터장은 "수업료 일부를 받는 등의 재정 마련 방안을 강구 중"이랍니다.

학교 밖 청소년을 처음 품었던 24년 전, 판자촌에서 만난 본드중독 소년들은 어느덧 40대가 됐습니다. 그동안 주례를 선 제자도 20쌍이나 됩니다. 내년이면 거리의 스승 생활 25년째, 50대 중반인 그의 몸은 병들었고 체력은 딸립니다. 이렇게도 힘든 길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모 이혼 등의 이유로 가정이 해체되면서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은 마음의 상처가 심합니다. 20년 넘게 아이들의 아픔을 보듬는 일을 하지만 여전히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순간이 지나가면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주고 그 제자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힘들지만 이렇게 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시밭길, 다들 꺼리는 길이지만 누군가는 가야만 합니다. 누군가 그 길을 갔기 때문에 희망의 길이 생겼습니다. 길이 생겼는데도 다들 그 길을 싫어합니다. 가도 가도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아우성인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나? 사람의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이웃의 아픔과 눈물을 이고지고 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희망의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로 인해 삶을 고쳐 맵니다. 희망의 길은 무겁고 힘들지만 그래도 갈만 합니다.


태그:#청소년푸른성장대상, #최연수 센터장, #한빛청소년대안센터, #학교_밖_청소년, #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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