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충무로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영화인들과 만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14일 오후 서울 충무로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영화인들과 만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성하훈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님은 지금이라도 물러나셔야 합니다."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보였다. 지난 10월 26일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대법원까지 항소심을 준비 중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발언들이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계의 향방에 어떤 식으로든 큰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도 이 위원장은 어떤 결심이 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본의 아니게 와전된 지난 12월 7일 자 <문화일보>의 "명예집행위원장 추대"(<이용관 前부산영화제 위원장 명예회복?>) 기사가 곤혹스러웠던 것도 작용했지만, 그보다는 영화제와 영화계 전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책임감의 발로라 보는 것이 더 컸던 것 같다(관련 기사: 이용관 BIFF 명예집행위원장 추대? "사실 아니다")

"첫째, 절대 안 돌아가겠다고 그간 결심을 굳혔다. 그게 영화제를 위한 것이고, 저 개인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둘째, 김동호 이사장 체제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지금 돌아가는 건 이상하고 웃기다.

셋째, (명예집행위원장 추대가) 2개월여 동안 논의가 됐고, 영화계의 요구라고 하니 혼란스럽기도 했다.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가 이 사안을 중재하고 있는 걸 확인해 달라고 했다. 김동호 이사장이나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그런 제안을 할 리가 없다. 만약 영화인들 공식적으로 돌아와 달라고 요구한다면 돌아갈 생각은 있다. 아마 내년 영화제 정기총회까지는 어떻게든 판명이 날 것 같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충무로의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좌담회 형식으로 영화인들을 만난 이 전 위원장의 결심은 확고해 보였다. 현 영화제 집행위원회나 김동호 위원장과 확실히 선을 그었지만, 영화계의 요구라 확인된다면 내년 정기총회 때까지 다시 숙고해 볼 여지는 남겨둔 셈이다.

이게 다 개인보단 전체를 생각하는 성격과 대의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이 전 위원장의 위치에서 비롯된 마음일 것이다. 그 '대의'를 위해서 이 전 위원장은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동호 이사장님, 인제 그만 물러나시지요"

 14일 오후 서울 충무로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영화인들과 만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14일 오후 서울 충무로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영화인들과 만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하성태


"김동호 이사장이 지금이라도 빨리 물러나시는 게 좋다. 이사들도 같이 빨리 그만두시고. 후배들이 앞길을 잘 가게끔 고민하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본인이 불명예스러운 건 물론이고 영화인들 전체가 부끄럽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인들 자체가 다 공모자가 되어가고 있다. 원로 영화인들이 나를 설득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난 오히려 김동호 이사장을 설득하라고 한다."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은 잘 알려지다시피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이제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역임 중이다. 서병수 시장이 물러난 부산국제영화제의 구원 투수로 영화제 측에서 초빙(?)하는 형식이었다. 이용관 전 위원장은 김 이사장의 영화제 복귀가 구원투수라기보다 악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지난 5월 7일 날 마지막으로 만난 뒤 (김동호 이사장과) 절연을 한 상태다. 몇 번 전화가 온 거 같은데 받지도 않았다. 이후 간접적으로 몇 번 명예집행위원장 맡아 달라는 제안이 왔는데, 답을 하지 않은 거다. 지금도 어떤 원로 영화인들은 내가 거짓말을 한 거로 안다. 그게 아니다.

그날 둘이 독대하는 자리에서 김 이사장이 서병수 부산시장의 전화를 받더라. 문밖에서 말씀하시는데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씀이 선명히 들리더라. 처음부터 싸움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격해져서 저도 결례를 좀 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일체 간접적으로든 어떤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그렇게, 김동호 이사장은 지난 5월 조직위원장에 해당하는 이사장직을 수락했다. 이후 김동호 이사장과 영화제 집행위원회 측은 공식적으로 이용관 전 위원장의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동호 이사장이 한 인터뷰에서 이용관 전 위원장의 '유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 일부 영화인들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편, 이 전 위원장은 작년 <다이빙벨> 논란 이후 영화제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모셔온' 강수연 집행위원장에 대한 미안함을 수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김동호 이사장 체제에서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저보다 더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는 것이 이 전 위원장의 판단이다.

"이사장이라는 분이 집행위원장보다 더 심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외국 영화제를 다녀도, 이사장이 위원장을 기를 안 살려 준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정말 안쓰럽다. 제 책임이고 인간적으로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고생시키려고 데려온 것도 아닌데.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도 영화제는 잘 될 거다. 김동호 없다고 영화제 어디 안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강수연 체제도 영화인들이 그분의 장점을 잘 살리면 되고, 단점이 있으면 보완하면 되는 거다. 20년 동안 영화제 하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부산국제영화제는 기본 자산이 튼튼하다. 훌륭한 분들이 많다. 세대교체가 돼도 새로운 인물들이 충분히 뻗어 나가게 만들 수 있다. 뒤로 갈 일은 없다. 전통은 계속 살아 있는 거니까.

다만, 김동호 체제가 되면서 철학적인 부분을 잃어버렸다. 타협하면, 그게 영화제를 죽이는 거다. 결국,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 중요한데, 그 정체성이, 철학이 없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정체성과 철학의 문제만 지켜진다면, 이번 상처로 인해 외형상 2, 3년 후퇴하는 모양새는 있을지 몰라도, 자산 가치로 볼 때 부산국제영화제는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좌파로 낙인 찍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지난 5월 <오마이뉴스> 인터뷰 당시 모습.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지난 5월 <오마이뉴스> 인터뷰 당시 모습. ⓒ 유성호


지난 12일,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12개 문화예술단체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9인을 '박영수 특검'에 고발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향후 영화진흥위원회 김세훈 위원장도 고발할 계획인 걸로 알려졌다. 그 바탕엔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이른바 '김영한 비망록'이 큰 견인차 구실을 했다.

이용관 전 위원장도 그 비망록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이 비망록 속에는 "부산영화제-다이빙벨-이용관 집행위원장 60억 예산 지원(9월 10일), 다이빙벨 상영할 것으로 예상함→수사(9월 20일)"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이 적시돼 있다. 그래서, 이 전 위원장은 이 이러한 국면을 만들어 준 김영한 전 민정수석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포함해서.

"저도 고발인의 한 사람이고 증인으로도 기꺼이 나갈 거다. 김영한 전 수석이 정말 고맙다. 비망록을 다 읽어 봤다. 마음의 빚을 졌고, 배운 바도 많다. 그런 분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 또 더 드러날 거고, 문화예술계가 얼마나 탄압을 받았는지 국민이 더 많이 알게 될 거다.

더 중요한 건, 잘 아시는 것처럼 문화예술인들이 오랫동안 어두운 시대를 지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나 <다이빙벨> 상영문제만 있었던 건 아니지 않나. 이미 블랙리스트는 MB 정권 초기에 만들어졌다. 1순위가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이었고, 결국 몰아내지 않았나. 2위가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였다. 부산을 건드리려고 하니 김동호 당시 집행위원장이 그만둔 거고, 차기 위원장을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물색하다 결국 제가 집행위원장이 된 거다."

그간 보수 정권은 영화제와 영화계를 노골적으로 '좌파'로 낙인 찍어왔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영화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용관 전 위원장이야말로 그러한 낙인찍기와 외압으로부터 20여 년간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켜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는 좌파라며 노골적으로 저를 몰아내려고 했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유인촌 전 문광부 장관이었다. 그래서 저는 정권에, 지역사회에서 찍힌 사람이었다. 그때는 제가 그만둬야 영화제가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그런 분위기가 잦아들기도 했고, 당시 여당 내 7~8분이 부산영화제와 제가 좌파가 아니라고 보완해줘서 겨우겨우 견뎌서 여기까지 온 거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 않나. 정말 다른 꽃이 활짝 필지 더 암울하게 될지 모르겠다. 근데 이렇게 겪어보니, 확실히 싹이 트고, 움직임이 일어나는 건 분명한 것 같다."

"학생들에게, 영화계 후배들에게 떳떳하고 싶다"

 <다이빙벨> 논란과 관련한 이용관 전 위원장의 발언.

<다이빙벨> 논란과 관련한 이용관 전 위원장의 발언. ⓒ 피클


외압과 관련, 이용관 전 위원장이 가장 분개한 대목은 바로 지역 토호 세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기회주의적 토호세력이 각 지역을 말아 먹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이 전 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도 이 토호세력의 개입과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부산에서 같잖은 토호세력과 싸우느라 힘이 다 빠졌다. 영화계 만만해 보이니까, 영화제를 접수하면 우리인들 왜 못해,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거다. 그게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MB 정권 때부터 만만하다고 덤벼들더니, 서병수라는 훌륭한 시장이 와서 더 노골화된 거다. 부산에도 그런 세력들이 어마어마하게 있다.

토호 세력 중에서도 자칭 오피니언 리더들이 있지만 대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점잖게 관망한다. 그런 부분을 좀 더 끌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의욕 있고 장래를 생각하는 고향(부산)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다."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을 겪는 와중에서도 "무엇보다 학교 학생들과 영화계 후배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떳떳하고 싶었다"던 이용관 전 위원장. 그는 "부산영화제와 함께하고 싶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명예집행위원장은 오히려 불명예요,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이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그리고, 15일 오후에는 "보고 싶었어요, 용관이 형"이란 제목으로 영화인들이 마련한 일일 호프가 열린다. 이 전 위원장의 재판비용 모금을 위한 자리다. 그렇게 많은 영화인이, 영화계를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 전 위원장을, 대법원까지 가서라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피고인 이용관'을 응원하는 중이다.

이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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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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