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진화를 거듭하는 음악세계 가수 김윤아가 8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번째 솔로 프로젝트 앨범 <타인의 고통> 쇼케이스에서 신곡 '꿈', '독', '타인의 고통' 을 열창하고 있다. 김윤아가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듀스를 도맡아 진행한 <타인의 고통>은 6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안에서 비로소 개인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며 상실과 슬픔, 공감, 위로를 담아내고 있다.

▲ 김윤아, 진화를 거듭하는 음악 세계 가수 김윤아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번째 솔로 프로젝트 앨범 <타인의 고통> 쇼케이스에서 신곡 '꿈', '독', '타인의 고통' 을 열창하고 있다. ⓒ 이정민


얼마 전 참석했던 한국여성민우회 송년회에서의 일. 우리는 행사의 마지막으로 불을 끈 채, 질문에 해당하는 사람만 소형 전등을 켜는 '비밀 질문 파티'를 했다. 그리고 파티에서는 '때로는 내가 페미니스트인 게 싫다'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결과는? 놀랍게도 거의 모든 사람이 라이트를 켰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기성의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폭력과 차별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일상의 지천으로 널려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여성주의자인 것도 아니고 나의 문제의식은 공감되지 못할 때가 많다.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때로는 외롭고 고된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 모든 것을 모르고 살았으면 싶을 때가 있다.

단순하지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 중 하나가 아마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일 것이다.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기도 벅찬 사람들에겐 자주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런 건 없고 사는 게 견딜 만 하면 된다'라고 은근슬쩍 답을 회피했다. 물론 꿈이 정말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살기에 나은 곳이 되었으면 한다. 소수자들을 향한 만연한 혐오와 폭력이 사라지고, 모두가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차별이 종식되고 누군가가 여벌의 용기가 없이도 일상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러한 꿈은 너무나 요원해 말 그대로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말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꿈을 묻는 질문에 답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무겁지만 벗을 수 없는 꿈


많은 노래가 꿈을 주제로 다루곤 한다. 대부분 자신이 가진 소망을 이야기하거나 그것이 언젠가 이루어지리라 말하는 노래들. 혹은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꿈을 좇을 것을 북돋는 노래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꿈이 그 자체로 우리를 짓누르고 때로는 지치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노래는 흔치 않다. 특히나 그 꿈이 삶의 기본적인 가능성이나 조건과 관련이 있으며, 거기에 그것이 너무나 요원한 것일 때의 감정은 흔히 꿈을 말하는 노래에 등장하는 것처럼 마냥 긍정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 그 꿈을 위해서 지난한 싸움을 거쳐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발표된 김윤아의 4집 타이틀곡 '꿈'은 내가 이야기한 꿈의 성격이 탁월하게 표현된 노래가 아닐까 싶다. 가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어떤 꿈은 언제까지 분투를 이어야 이루어질까 몰라 '너무 무거운 짐'이 되곤 한다. 하지만 투쟁을 포기하는 것은 나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아 그 꿈은 '괴로워도 벗을 수 없는 굴레'가 된다. 노래는 꿈이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춘'다고도 한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세상 속의 나를 상상하다 현실로 눈을 돌리면, 거기에는 너무도 처지가 궁색한 내가 서 있다. 꿈이라는 거울 앞에서 나는 스스로가 오물 덩어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가사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때로 / 다 버리고 / 다 털어버리고 / 다 지우고 / 다 잊어버리고 / 다시 시작하고 싶어." - 김윤아 '꿈' 중에서

하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그 꿈

김윤아, 침묵의 위로로 다독이며...  가수 김윤아가 8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번째 솔로 프로젝트 앨범 <타인의 고통> 쇼케이스에서 신곡 '꿈', '독', '타인의 고통' 을 열창하고 있다. 김윤아가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듀스를 도맡아 진행한 <타인의 고통>은 6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안에서 비로소 개인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며 상실과 슬픔, 공감, 위로를 담아내고 있다.

▲ 김윤아, 침묵의 위로로 다독이며... 김윤아가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듀스를 도맡아 진행한 <타인의 고통>은 6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안에서 비로소 개인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며 상실과 슬픔, 공감, 위로를 담아내고 있다. ⓒ 이정민


어쩌면 내가 더는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에게 왜 단체에서 회원 활동을 하고 글을 쓰냐고 물으면, 나는 세상이 더 나빠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하지만 정말로 원하고, 그렇지만 너무도 막연해서 직시하기 힘든 내밀한 소망은 그저 가슴 한 쪽에 접어둘 뿐이다. 가끔 퇴근 후 카페에 앉아 노트를 펴고, 무언가 끼적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게 다 무슨 소용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내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하지만 꿈은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속성 때문에, 동시에 기각될 수 없기도 하다. 그 꿈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어 온 현실과 연관이 있는 것이기에. 내 삶의 근본적인 조건이 달라지고 지금은 닫혀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문제이기에. 아마 각자의 현장에서 열심히 분투하는 활동가들이나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과 다양한 소수자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마주하고 뇌리에 깊게 박혔던 '성 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말처럼, 우리 각자가 추구하는 꿈에는 저마다의 삶이 달려있다. 그래서 노래에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꿈은 '차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페미니스트가 되겠다

김윤아, 침묵의 위로로 다독이며...  가수 김윤아가 8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번째 솔로 프로젝트 앨범 <타인의 고통> 쇼케이스에서 신곡 '꿈', '독', '타인의 고통' 을 열창하고 있다. 김윤아가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듀스를 도맡아 진행한 <타인의 고통>은 6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안에서 비로소 개인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며 상실과 슬픔, 공감, 위로를 담아내고 있다.

▲ 김윤아, 침묵의 위로로 다독이며... 김윤아의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컸다.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주고, 마지막 기대어 울 곳이 되기도 하는 곳. ⓒ 이정민


서론에서 언급했던 비밀 질문 파티의 마지막 질문은 '그럼에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페미니스트가 되겠다'였다. 그리고 이번엔 단 한명의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가 라이트를 켰다.여성주의를 만나고 우리는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정을 마주하고 더 많은 고통과 분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방어하고 대항할 힘을 키우기도 했다. 꿈을 향한 길은 멀고 척박하지만,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김윤아의 노래는 꿈을 이렇게도 노래했을지 모른다. 꿈은 우리를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주고 '마지막 기대어 울 곳'이 되기도 한다고.

나의 경우 그 길은 나 자신을 조금 더 긍정하고 지킬 수 있는 경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라이트를 켰던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치열했던 2016년도 막바지에 다다랐고 새로운 해가 다가오고 있다. 2017년 또한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혔던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속 걸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최근 발매된 김윤아의 4집 앨범 <타인의 고통> 재킷 이미지.

최근 발매된 김윤아의 4집 앨범 <타인의 고통> 재킷 이미지. ⓒ 인터파크



김윤아 페미니스트 타인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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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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