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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누적적으로 완성된다."

불법은 언제나 복잡하고 교묘하다. 쏟아지는 뉴스를 매일 봐도 일반 사람들에게 진실은 난해하다. 이러한 국민들에게 한 사안을 정리해서 전달하는데 신문·방송은 매체 특성상 한계가 있다. 반면에 시사 주간지는 상대적으로 시간과 지면의 '여지'가 있다. 또한, 심층 탐사보도에 특화된 매체 성격을 가진다. 일례로 현재 시사 주간지 한겨레21은 '대통령의 7시간'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주간지도 '인쇄매체의 위기'라는 굴레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사 주간지는 다시 부흥할 수 있을까. 그들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지난 11월 23일 오후 2시 한겨레신문사 빌딩 4층 출판국 회의실에서 한겨레21 안수찬 편집장을 만나 시사 주간지와 저널리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겨레21 안수찬 편집장
 한겨레21 안수찬 편집장
ⓒ 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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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 주간지'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주간지'의 고유한 특성은 특정한 뉴스 콘텐츠를 요즘 용어로 '패키징'해서 전달해주는 거다.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을 솎아내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주간지'다.

이게 21세기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많은 전략가들이 말하는 '타깃팅'과 '패키징'이다.

'타깃팅'은 뉴스 콘텐츠를 주로 누가 볼 것인가를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기사의 독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깊이 있게, 관련 정보를 연결시켜서 전달해주라는 것이다. 이것을 디지털에서 구현하려면 '독자 조사, 맞춤형 콘텐츠 제작' 등의 '수용자 개발(user development)'이 필요하다. 이게 '타깃팅'이다.

'패키징'은 기사를 온라인상에 작성할 때, 단순히 기사 몇 줄 내보내지 말고, 텍스트 분량 관계없이 연관된 기사를 계속 걸어주라는 거다."

'사람들은 신문·방송 뉴스로부터 오히려 갈증을 느껴'

"이 두 가지가 개념을 매스미디어 초창기부터 구현한 게 '주간지'다. 그 다음에 등장한 일간지와 방송은 이러한 특성을 약간 후퇴시킨 측면이 있다.

일간지는 더 많은 정보를 다루려고 기사를 더 짧게 썼다. 이 전략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문은 애착을 가진 독자를 없애는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신문을 읽어도 내가 알고 싶은 게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종합 일간지의 경제면을 읽어도, 인터넷이나 다른 미디어를 통해 아는 것보다 정보량이 적다. 결국 독자는 다른 매체를 찾게 된다.

방송뉴스는 더 짧다. 1분 30초 리포트는 원고지 매수로 치면 5매 분량이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본격적인 매스 미디어 시대가 열린 것은 맞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신문과 방송이 제공해주는 뉴스로부터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근데 이것을 해결해주는 플랫폼은 디지털 미디어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원하는 정보를 내가 직접 찾아서 읽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대신 직접 찾아서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 검증도 어렵다. 이게 얼마나 어디까지가 맞는 얘기인지, 이게 신뢰할만한 정보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시사 주간지가 거듭날 기회다'

"'전문가적인 기자 집단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검증을 거쳐,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모아주는 방식'으로 주간지가 거듭날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라는 게 아니다. 그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한다.

매거진들이 자기가 '타깃팅'하는 독자들을 먼저 파악하고, 원하는 정보를 '패키징'해서 신뢰할만한 정보중심으로 심층적으로 파고든다면,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매거진 특성이 더 어울린다.

이때 매거진은 종이로 된 인쇄물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에서 다시 구현하는 거다. 그것까지 포함한 매거진의 시대가 다시 '열릴 수 있다', '열리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 한국 시사 주간지 범주에서 <한겨레21>만의 영역은 무엇인가.
"1989년 심층 탐사 보도를 하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을 계기로 시사저널이 창간되었다. 그것을 보고 만들어진 매체가 한겨레21이다. 우리는 시사저널이 최초에 내걸었던 심층 탐사 보도 기치에 권력 고발과 부패·부정 폭로 등을 더해서 더 특화된 방식으로 포지셔닝을 가져간 주간지다.

이후 '한국 사회의 소수자,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하고 대의한다'라는 포지셔닝이 덧붙여졌다. 우리는 시사저널보다 더 비주류적인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본다. 동시에 더 근본적으로 시민사회를 대변한다. 이제는 성 소수자와 소외계층에 주목하게 됐다. 그 결과 동성애자, 생태 환경, 빈곤 계층 등 문제에 집중하게 됐다."

- 박근혜-최순실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결국 시사 주간지 독자는 '때늦은 기사'를 읽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21>의 기획방향은 무엇인가.
"박근혜 게이트 이후, 특집호를 계속 내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에 기획을 집중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정보가 들어온다. 이렇게 정보에 과다 노출되면, 그 정보의 체계를 잡을 수 없다. 오히려 더 무지한 상태에 빠진다.

예컨대 어떤 사람에게 일주일마다 50페이지 책 한 권을 준다. 그 사람은 책에 담긴 정보를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서 일련의 지식 체계를 스스로 구성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에게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5000페이지 분량의 정보를 일주일 동안 노출시켜보자. 이 사람은 5000페이지 정보를 정돈할 능력이 없어서 50페이지 책을 읽은 사람보다 더 무지해진다. 아는 것은 많아 보이지만, 실제 자기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판단과 관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가 된다."

한겨레21 안수찬 편집장(우측)
 한겨레21 안수찬 편집장(우측)
ⓒ 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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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과잉 노출은 되레 무지를 만든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5000페이지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그래서 이 사람들 상당수는 내가 많이 뭔가를 안다는 착각에 빠져있지만, 실제로는 모른다.

우리 한겨레21이 '타깃팅'하는 독자는 모든 대중이 아니다. 정보에 과잉 노출된 사람들 가운데 '어. 근데 나는 제대로 아는 건 별로 없네. 이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건 별로 없네'라고 자각하는 사람을 '타깃팅'한다.

즉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 이른바 단독·특종 등의 여러 기사들이 쏟아진다. 국민들 중 '보긴 보는데 정리가 잘 안 돼. 정리 안 하고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그냥 지나갈 문제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까 말했던 우리의 '패키징'된 정보를 전달하는 거다.

우리도 단독, 특종을 한다. 그런 기사들 중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조목조목 잘 정돈해서 한 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현재 우리가 만들고 있는 콘텐츠의 핵심이다. 사안의 본질·사건의 핵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그 다음 이에 관련한 우리만의 단독 기사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략적인 포지셔닝을 하고 있다.

사실 한겨레21 인력은 신문·방송에 비해 1/10 규모다. 우리로서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종 경쟁을 하긴 하는데, 그 특종이 본질과 핵심에 대한 취재로 집중된다. 예컨대 지금 우리는 '세월호 7시간'에 집중하고 있다."

- 지난 14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기사를 3개로 나눠 온라인에 먼저 게재했다. 그러면 정기 구독자가 구독을 하는 의미가 줄어드는 게 아닌가. 이러한 경우가 빈번한가.
"이게 모든 언론의 '딜레마'다. 디지털에 노출하면 훨씬 더 많은 독자가 우리 기사를 볼 수 있다. '확장성'에서 큰 도움이 된다. 근데 디지털에 풀면 실제로 돈을 내고 보는 독자들은 독점적으로 기사를 볼 수 있는 '독자성'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돈을 지불해야 될 이유가 사라진다. 이런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적절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디지털을 매체의 존재와 한겨레21의 가치를 확장시키는 교두보로 삼되, 정말 중요한 기사와 콘텐츠는 여전히 정기 독자와 유료 독자에게만 공개하는 방식을 유지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이 매체를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최장집 교수 인터뷰 같은 경우는 우리의 판단이다. 당시 국회가 계속 탄핵을 미적거리고 있었고, 특히 야당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지 대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 계속됐다. 하루 이틀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질 텐데, 최장집 인터뷰를 내보내야 이게 실제 변화를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먼저 내보냈다. 기본적으로는 디지털에 먼저 내보내는 일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 박근혜 게이트에 관한 퍼즐을 TV조선과 한겨레가 함께 맞추어 나갔다. 우리나라 언론 지형에서 낯선 모습이다. 어떻게 보는가.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가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시작했을 때,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첫째, 미국에 있는 대부분 매체들이 닉슨 대통령 관련 추문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WP)만 보도한 게 아니다.

둘째, 저널리즘 스쿨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 이전에는 미국 시민들이 언론에 대해 굉장히 비관적이고 회의적이었다. 미국의 언론이 '자유'를 지키는 게 아니고, 오히려 정부를 대변한다는 비판 여론이 높았다. 이 일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언론이 가담하게 되는 것은 시장경제 때문'

"한 매체가 특종을 하면, 다른 매체들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뉴스를 따라 쓰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속에서 TV조선과 한겨레가 같이 경쟁하는 거다. 뒤이어 다른 매체들도 합류했고. 뉴스나 언론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아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매체 성향과 무관하게 모두 '권력 고발'이라는 기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근데 한 가지 중요한 건. 이 시기가 조금만 더 지나고 나면 매체별로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 사안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추적 보도할 것인지, 다시 분화되기 시작할 거다. 지금 그 목전에 와 있는 상황이다. 조선일보나 내가 속한 한겨레도 어떤 식으로 취재 보도하게 될지 앞으로 더 지켜봐야한다.

지금은 한국 사회가 맞이한 약간 가히 혁명적인 상황이다. 시민들의 에너지는 '갈아엎자, 뒤엎자'라는 거다. 이 계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남아있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인들도 이제 기존의 정치 패러다임들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을 언론에 대입하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언론도 지금까지의 보도 행태나 언론 상황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 비록 이 상황은 불행 중 다행스럽게 언론이 먼저 선도했다.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 2.0 시대가 도래했다'라고 하기도 했고, '87년 체재가 마침내 끝났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기회다. 그럼 언론은 어떤 식으로 권력 고발과 시민 대변을 할 것인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 과제가 우리 언론에게 있다."



태그:#시사주간지, #안수찬, #저널리즘,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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