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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발육이 빠르다. 5학년 딸아이 친구 중엔 성인 같은 외모의 아이도 제법 있다. 딸아이 말에 따르면, 중학생이라고 속이고 대학생 오빠들을 사귀는 아이들도 있다. SNS를 통해 여러 명을 동시에 사귀는 딸아이 친구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이 집을 나가기라도 하면 그렇게 맺은 관계가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 싶어서다.

10대 초반 아이들이 가출을 한다? 기우가 아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춘기가 오는 시기가 빨라져 12살쯤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민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속해 있는지 관심이 많다.

"우리 부모님은 오빠에게만 관심이 있다."
"우리 엄마는 오로지 성적에만 관심이 있다. 나에게 애정이 없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려고 하질 않는다."
"오빠(혹은) 언니가 심하게 때리는데도 엄마 아빠가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아 서럽다."
"엄마(혹은 아빠)가 언니들은 놔두고 나만 때린다. 우리 집에서 나는 화풀이 대상이다."
"좀 놀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자꾸 공부하라고만 한다. 짜증난다. 집을 나가고 싶다."

여기저기서 부모에 대한 원성을 전해들을 때마다, 아이들이 제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이 매우 적대적이어서 놀랐다. 아이들은 아우성 치고 있었다. 우려스러운 점은 엄마 아빠는 나름 신경을 쓰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다른 이야기 책표지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다른 이야기 책표지
ⓒ 이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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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딸 아이를 통해 '나는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고 종종 말하는 친구가 있다는 얘길 들은 뒤로는, 아이 마음을 읽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는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 책이다.

10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이 책을 읽었다. 다른 아이 이야기가 아닌 내 아이 혹은 내 아이의 친구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저자 김고연주씨는 성매매 경험이 있는 십대 여성들만 입소할 수 있는 쉼터 <새날>에서 만난 10명의 아이들을 인터뷰 해 박사논문을 썼다. 이 책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정리한 책이다.

가출은 아이들이 성매매를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하지만 집을 나온 아이를 비난해서도 안 되고, 집을 나오도록 만든 부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10대 성을 상품화 한 사회구조가 없다면,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일도 없었을테니 말이다.

'원조교제'라고 불렸던 청소년 성매매는 2000년대 큰 사회 문제가 됐다. 성을 파는 여성의 나이가 20대 이상 성인에서 10대 청소년으로 어려진 이유를 '자본주의'와 '가부장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학생이라는 무성적 존재였던 10대 아이들이 90년대 후반부터 성적 존재로 부각됐다. 화장을 하고 교복을 줄여 입고 다이어트를 하는 등 외모에 신경을 쓰는 10대 아이들. 더구나 이성교제를 스스럼없이 하고 성관계를 하는 아이들까지 생겨나면서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혼란스러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가장 발 빠르게 대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95년 미국의 십대 전문 화장품 브랜드 <클린앤드클리어>가 한국에 들어왔다. <클린앤드클리어>는 곧 대표적인 십대 전문 화장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라는 카피를 사용하며, 이은주(1997년, 당시 18세) 이요원(1998년, 당시 19세) 등 십대 여성들을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그러나 십대 여성을 겨냥한 독립 시장을 형성하려면, 20대 여성과 구분되는 컨셉이 필요했다. 십대의 무성성과 성인 여성의 섹시함이 결합된 '순수함과 섹시함의 공존'". 상품을 팔기 위해 만들어 낸 이러한 이미지는 십대 여성들의 성애화를 가져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 쏟아져 나온 걸그룹이다. 10대 아이들은 걸그룹을 보면서 십대 여성들만 가진 특수한 매력이 다양한 형태의 심리적· 물질적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됐다."(P.73∼74)

실제로 아이들은 가출을 한 뒤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성이 돈으로 교환될 수 있다는 걸 체험한다.

저자는 10대 성매매 형태가 개인형에서 알선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이들이 직접 성구매자를 만나지 않고 알선자를 통해 성매매를 하는 이유는 진상(아이들을 때리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성구매자를 일컫는 말)을 피할 수 있어서라고.

거리 생활을 많이 한 아이들은 대부분 진상에게 맞거나 금품을 빼앗긴 기억을 갖고 있었다. 결국 아이들은 알선자에게 착취를 당하거나 진상에게 폭력을 당하는 두 가지 상황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매매 경험을 하면 자존감이 낮아질대로 대로 낮아진다. 성매매를 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 스스로 그 덫에서 빠져나올 힘이 없어진다. 10대 성매매가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하는 이유는, 10대 성을 상품화한데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도와줄 사회적 자원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가출과 동시에 부모에게 멀어진 아이들은 그들을 도와줄 성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온통 어른답지 못한 사람들 뿐이다. 경찰도 예외는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경찰들도 좇나 건수 올리라 그러지 말만 잘하면 그냥 보내줘요. 그리고 민자(미성년자) 잡는 거보다 성인 여자 잡는 게 더 건수가 크다매요(P.181)

특히 '보호받아야 할' 보호관찰소에서 십대 아이들이 오히려 2차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사회에서 따지고 보면 보호관찰소 선생님은 남자고 난 여자잖아요. 그런데 나한테 맨날 그래요. "야 그런 아저씨들이랑 하면 좋냐?" 이런 걸 물어봐도 돼요? 안 되죠. 안 되죠?"(하나)

"나한텐 대박이야. 나한텐 더 심한 게 뭐냐면요. 이래요. "하면 좋아? 얼마 줘? 들어가서 무슨 말 해? 어색하지 않아?" 화장실 까지 쫓아와 가지고 막, "야, 지금도 하냐? 지금도 하고 싶지 않아?" 이러고 막 대박이에요."(슬아)

"다른 사람 있는데 "야, 하나, 너네 그거 해 가지고." 막 이러면 제가 입을 막아요. 솔직히 우리도 여자잖아요. 우리도 쪽팔린 게 있는 거잖아요. 사람이잖아요. 사람 취급을 안 해 주는 거 있죠." (하나) (PP.184∼185)

다행인 건 우리 사회에 아이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어른들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가 만난 10명을 아이들은 모두 쉼터 선생님을 통해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저 고모 정말 싫어했거든요. 저 키우기 힘들다고 쉼터에 보내버린 고모가 지원금 받으려고 "솔비 데리고 살겠다는데 왜 그러느냐"면서 몇날 며칠을 <새날>에 전화해서 욕을 했어요. 선생님들한테. 그런데도 참아주고, 솔직히 귀찮으면 보내버리면 되지. "애가 가기 싫다 그러면 설득을 해서 보낼 생각을 해야지 어디 동조를 하고 있냐"고 고모가 뭐라고 하니까 선생님들 막 울고 장난 아니었는데... 솔직히 "왠만하면 집에 가서 살아라" 이럴 거 같애. 관장님이 되게 말리더라고. "고모 성격이 너랑 같이 있어서 너가 건강해질 만한 성격이 아니다." 그때 좀 감동을 먹었어요. 그러고 학원 등록하고 공부하고 이러면서 좀 살 만해졌지."(P.226)

솔비는 선생님들이 끝까지 자신을 지켜줬던 점이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관심을 보여준다는 게 말은 쉽지만 행동하긴 어렵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모두 동감하리라.

이 책은 성매매를 경험한 10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른다움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처음 쓸 때부터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해빈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보다 더 간략하고 명확하게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여기에 옮겨 본다.

"선생님 응원해주세요, 해빈이가 잘 살 수 있도록!"

사회 곳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응원하길 바라는 어른들에게 이 책을 대안으로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조금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십대 여성들의 성매매 경험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 | 이후 | 2011| 15,000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 - 십대 여성들의 성매매 경험과 치유에 관한 기록

김고연주 지음, 이후(2011)


태그:#10대성매매, #이후출판사, #조금다른아이들조금다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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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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