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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외로 지나가는 분들이 꽤나 관심을 가져주셨다. 사진을 찍어가신 분들도 계셨는데, 매번 '꼭 여기저기 올려주세요'란 밀을 빼놓지 않았다.
▲ 11월 7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1인시위를 해보았다. 예상 외로 지나가는 분들이 꽤나 관심을 가져주셨다. 사진을 찍어가신 분들도 계셨는데, 매번 '꼭 여기저기 올려주세요'란 밀을 빼놓지 않았다.
ⓒ 임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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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라도 해볼까?"

얼마 전 한 편의점에서 잘렸다는 형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미디어에서나 보던 1인시위 이야기가 나왔다. 매일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이것저것 걱정되는 것이 많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다면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니 '보도자료를 뿌려라' '유니폼을 꼭 챙겨라' '옷을 좀 추워보이게 입어도 좋다'는 조언이 쏟아졌다. 막상 하려고 보니, 할 일이 늘어 금세 지치는 체력이 드러날까 염려도 되었지만, 해보기로 했다.

노력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세상


돌이켜보면, 예전부터 이 나라는 공정하지 않았다. '없는 자'에 속한 우리는 자꾸만 손해를 보고 소외되어 간다는 생각을 매순간 해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새벽 일찍 나가 밤늦게 오셨고 저와 누나는 스스로 저녁을 차려먹는 것이 매우 익숙했다.

집에 밥도 돈도 없던 어느날 문득 세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서 손톱이 휘도록 일을 하시고 집에 와서도 밤을 새어가며 고생을 하시는데도 우리집 가정형편이 영 나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억울함 때문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 것 같은데, 왜 우리는 또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하지' 정든 동네를 떠날 때마다 들던 이 생각은 내게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이다'는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노력하지 않은 승자들

각종 승마관련 단체들과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이화여대 당국이 정유라씨 한사람을 위해 규정을 개설하고 무리수를 둬가며 길을 닦아주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그러나 내겐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 전부터 숱하게 있었던 '권혁형 비리'와 '특혜'가 보여주듯, 이는 '자본주의의 일부'였다. 그리고 그 민낯이, 정유라씨의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졌다.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탓해'

이 말은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린 인간에게 느끼는 분노보다, 사회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만드는 허탈감으로 받아들여졌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사회라고, 노력중심의 평등사회라고 여겨온 이 사회가 실은 신분제 사회였다는 걸 반증함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자, 편의점에 출근하면 밥값을 줄이려고 '폐기' 상품이 없나 찾을 때 오는 자괴감이, 교통비를 줄이겠다고 타기 시작했다가 사고로 고장이 난 자전거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술 한 잔 사주지 못 하는 야박한 마음과 얇은 지갑이 떠올랐다. 동시에 나와 가족들, 주변인들에게 '실력'없는 사람이라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신분사회였나... "자괴감들고 괴로워"

지금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지만, 하고픈 일이 있고 사회에 좀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기대로 버텨오던 하루하루였다. '네 부모의 탓'이라는 말이 이리도 끔찍할 수 있을까.

노력하면 인정받는다던 사회였다. 앞으로 얼마만큼 더 해야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부족한가보다, 라는 마음의 버티는 하루하루가 무의미해졌다. 아니, 처음부터 불가능한 꿈이었다. 일자리를 얻고 가정을 꾸리는 꿈도 '신분'에 따라 허용되는 사회였단 말인가.

현실에선 내일도 출근... 그리고 폐기를 먹지만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편의점 알바도 꿈이 있고 계획이 있다. 또,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국민이기도 하다.

지난 11월 5일 집회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민중총궐기에 함께 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각자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지금 시국은 일어서서 바꿔야만 한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우리는 부모님의 실력이 부족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지금도 감수하고 노력하며 살고있다.

편의점시국선언을 받기 위해 편의점을 돌아 다니기로 했다. '아현동 편의점 알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국에 있는 수십, 수백 명의 편의점 알바의 목소리라면 다르게 보여질까, 라는 생각에서다. 각자의 이야기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큰 마음은 같을 것이다.

한명이 짐을 들고 다른 한명이 서명을 들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틀간 총 30여곳의 편의점을 돌았다.
 한명이 짐을 들고 다른 한명이 서명을 들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틀간 총 30여곳의 편의점을 돌았다.
ⓒ 임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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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가 끝나고, 촛불이 끝나고, 서명지로 뽑은 시국선언문과 펜을 챙겼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민중총궐기 이후 얼마나 달라질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다가왔던 이 무력감마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편의점 시국선언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30곳의 편의점을 방문하면서 매번 나갈 때마다 동참하는 이가 늘어가는 것을 보고 힘을 얻는다. 그리고 더 많은 동참자가 생기면 더 많은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거라 상상하면서.

덧붙이는 글 | 편의점 알바 시국선언 링크
bit.ly/편의점시국선언
문의(카카오톡ID) : nnyam2
페이스북 '편의점알바시국선언' 페이지



태그:#편의점, #알바, #편의점시국선언, #시국선언,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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