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에 등장한 고 노무현 대통령.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에 등장한 고 노무현 대통령. ⓒ sbs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난 22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백남기 농민 사망'편은 여러모로 화제였다. 그 중 프로그램 말미, 반갑지만 가슴 아픈 얼굴이 등장했다. 지난 2005년 12월, 그해 11월 쌀개방 반대 시위 중 경찰 진압으로 농민 2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상이었다.

이 방송을 연출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안윤태 PD는 최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 장면에 대해 "그 장면을 넣은 이유는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사람이 죽었으면, 기본적으로 사과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면서 "그때는 잘했는데, 지금은 왜 못하냐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 사람이 죽었으면 (대통령도) 사과를 해야 한다. 이건 국정운영의 '기본'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근본 도리이기도 하다. 성인이 아니라 '도덕'을 배운 아이나 학생이라도 다 인지하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그때'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런 시대다. 그렇게, 자꾸만,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의반 타의반 소환되는 시대다.

그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새출발' 혹은 대통령으로서의 '진정한 첫걸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지금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비단 '노빠'로 대변되는 팬들만을 위한 작품은 아니다. 그저 추모의 분위기에만 편승하지도 않는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26일 개봉)는 분명 박근혜 대통령의 초유의 헌정유린 사태를 맞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곱씹게 만드는 잔잔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작품이다.

2000년 부산... 노무현이 들려주는 정치, 정치철학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 장면. ⓒ 무현,두도시이야기 배급위원회


"두 명의 무현, 두 개의 공간, 그리고 2016년 대한민국."

여기 두 명의 무현이 있다. '바보 노무현'은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부산에서 출마했다. 또 하나의 무현, '바보 백무현'은 올해 20대 총선에서 전남 여수에 출마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살아 내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말한다. 추모하거나 기억하거나.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다.

눈길은 단연 '국회의원 후보 노무현'에게 이끌린다. 당시 노무현은 박근혜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와 맞붙었다. 노무현은 그때 "당 말고 사람을 보고 뽑아 달라"고 호소했다. 15대에서 낙선한 종로 대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간 터였다. 이때, 아깝게 낙선한 노무현 후보에게 '노사모'라는 전무후무한 팬클럽이 생기게 됐다. 제작진이 밝힌 대로, '대통령 노무현'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시기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당시 노무현 후보의 부산 유세 여정을 기본 골격으로 삼는다. 유세 현장에서 연설도 하고, '부산 갈매기'도 열창한다. 특유의 유머도 거침없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서민들도 만나고, 자식들과 아내 권양숙 여사도 돌본다. 분투 끝에 낙선. 지지자들 앞에서 끝내 눈물을 삼키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당당했다. (관련 영상 링크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1분의 진심 #5 어디든 달려갑니다 )

그 여정을 채우는 것은 말의 향연이라 할 수 있다. 인권변호사이자 달변가로 잘 알려진 '후보 노무현'은 유세 여정 중간 중간에 끊임없이 자신의 정치철학과 가치관을 설파한다. 현장 카메라가 이를 그대로 기록했다. "통일은 대박"이란 수사나 "우주가 도와준다"는 비정상적인 표현을 곁들이는 현직 대통령과 묘한 대비를 이룰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또 하나. '바보 노무현'이라 불렸던 만큼 16년 전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와 활력을 마주하는 일은 누구에게는 인간미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로, 누구에게는 (국민장 화면을 포함)고인에 대한 기쁘고 아픈 추억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다소 고통스러운 시간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상쇄하는 혹은 극복하고자하는 제작진의 의도는 현재의 시간으로 연결됐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출신의 백무현 후보의 선거 유세 장면과 '우리들'의 기억들이다. 

바보 노무현과 그를 운명이라 여긴 무현, 그리고 우리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스틸컷.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스틸컷. ⓒ 무현,두도시이야기 배급위원회


내레이션을 담당하고, 백무현과 사람들을 찾아 나선 이는 소설가 김원명이다. 그는 장준하, 백기완과 함께 유신헌법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으며, 부산에서 인권변호사 노무현과 함께 활동한 아버지 김희로씨의 영향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하여 김원명이 만나고 인터뷰한 이들은 모두 노무현과의 기억을 꺼내 든다. 그 선두엔  바로 노무현과의 인연을 '운명'이라 자처하는 백무현 후보가 자리한다.

야당 정치 신인의 행보도 눈물 겹지만, 백무현 후보의 여정 역시 드라마틱하긴 마찬가지다. 노무현을 그린 시사만화가, 정치를 그리다 정치에 뛰어든 정치신인, 게다가 (훗날 알게 되는) 암투병의 기록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정교하진 않지만, 분명 "우리가 노무현이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두 후보의 유세 장면을 후반부까지 교차시킨다. "정치는 개개인의 실천"이라는 주제를 위해서.

팟캐스트 <이이제이>의 진행자들을 비롯해 각기 다른 인연들을 소개하는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기억과 회고, 평가 역시 '2016년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란 명제 하에 '노무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나'로 맞춰져 있다. "99명이 반대해도 (노무현) 한 명은 내 편을 들어줬다"던 '노무현의 사진사' 장철영씨의 눈물 어린 회고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16대 국회의원 후보' 노무현을 중심 축으로, 백무현과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실천과 기억을 엮어낸다. 어깨에 힘을 크게 주지도 않는다. 자칫 '인물 다큐'가 찬양이나 훈계조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제작진 역시 잘 알고 있다. 그의 죽음이 남긴 역사적 충격이 컸던 만큼, 담담함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 짧지 않게 편집된 국민장의 현장 영상들은 어떤 묵직한 울림을 던져 줄 수밖에 없다. '왜'나 '어떻게'는 중요치 않다. 그런 대통령을 "우리가 잃었다"에 초점이 맞춰진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보고자 하는 관객들이 가질 "그런 '인간 노무현'을 잃었다"는 회한이 더 클 것임을 이미 감지하고 있는 것 마냥. 그 노무현 이후 우리가 혹은 51%가 뽑은 전현직 대통령들이 너무 초라해서 더더욱.

노무현 서거 7주기,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찾아 왔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포스터.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포스터.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꽤나 담담함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감상적인 화면과 음악들이 출현하기도 한다. 소재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37명의 후원인이 1억 2300만원의 모금을 모아 상영관 확보를 위한 배급위원회 발족시켰다.

그렇게 완성한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자 하는 관객들의 염원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노무현을 이야기해야 하는 지금, 여기의 현실이 담보돼 있어서다. 27일 하루 고작 56개 스크린, 111회의 상영 회수만으로 박스오피스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이유이리라.

"최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으며,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절이었고, 불신의 시절이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으며,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으며,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제작진이 길어 올린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이 다큐멘터리가 그렇게 과거, 거기의 노무현과 지금, 여기의 우리들을 공명시켜서다. 텍스트 자체를 넘어 현실과 공명해야만 하는 운명. 어쩌면, 그것이 모든 다큐멘터리의 운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서거 7주기,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그렇게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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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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