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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의 목적 중 하나인 시민복지 자체가 불법이 되고 있다. 그간 박근혜 정부는 국가의 재정 위기에 대처한다는 기조 속에서 지방정부의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중앙정부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마련하였고,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방안'과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을 수립하여 전국 방방곡곡의 복지정책 검열에 나섰다.

지방자치와 지역복지를 훼손하는 처사라고 지속적인 반발이 있자 법적 근거가 미약함을 인지한 정부는 곧바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중앙 통제에 어긋나는 자치단체에게는 예산상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2016년 1월부터 이 법령이 시행되었으니 올해는 제대로 된 통제의 원년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착공은 민주주의, 자치, 복지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시작되었다.

10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지방자치에 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그 성과를 공유하자고 2012년 법정 기념일로 제정했다. 임기를 시작한 첫해에 제1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때에도 미처 몰랐다. 스스로 자랑할 것을 만들어 자랑하고자 하는 관료들 외에는 별달리 관심을 가지기 힘든 날이었으니까. 이런 날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지금도 더 많으리라. 어쨌든 박 대통령은 말했다. "새 정부는 각 지방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주도적으로 개발해서 추진해 나가고 정부는 지역맞춤형 지원정책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만들어 놓은 결과는 벌써부터 참담하다. 정부가 밀어붙인 사회보장사업 정비결과, 불과 1년 사이에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한 예산의 3분의 1이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동민 의원실에 따르면 지자체 복지분야 총예산이 지난해 2117억 원에서 올해 1356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순식간에 761억 원(35%)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노인, 아동, 저소득층, 장애인 등에 대해 그나마 지자체가 지원하고 있던 사업의 예산들이었다. 이런 사업의 대부분은 중앙정부 차원의 제도가 없어 지자체가 직접 만들었거나, 제도권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 양이 턱없이 부족하여 지자체가 보존책으로 강구한 것이었다. 지방자치는 물론 시민들의 삶도 동시에 위협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중앙정부만의 문제겠는가. 오히려 합작품이다. 국가의 중앙과 지방의 복지를 균형 있고 실효성 있게 발전시킨다는 사회보장기본법의 애초 취지를 생각해 보자. 당연히 정부의 성격과 기조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었다. 부족한 재원은 중앙정부가 채워주고, 모범적인 지역 사례는 중앙정부가 나서서 제도화하는 것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작동했다.

중앙정부의 지침이 발표되자 각 자치단체장은 경쟁하듯 스스로의 복지제도를 견적내기에 바빴고, 몇백 건의 정비대상을 발굴했다, 또는 얼마의 예산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축했다. 그리고는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말했다. '중앙정부의 지침이라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냐.' 이렇게 지방정부는 빠져나가기 좋은 핑계로 지자체의 전체적인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경직시키는 데 충분히 일조했다.

시민들의 생살여탈권을 부여잡고 흔들어 대는 중앙정부의 손가락 사이, 그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렇지 않아도 아까웠던)복지예산을 명분 있게 날릴 수 있게 된 지방정부의 얄팍한 웃음기 그 사이로 4번째 지방자치의 날이 다가온다. 본디 지방자치의 날이 10월 29일인 것은, 지방자치 그 자체가 1987년 민중항쟁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날은 지방자치 실시 계기가 된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일인 10월 29일에 근거한다. 하지만 우린 오늘 무엇을 기념해야 할까?

대구광역시청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애인인권단체 회원의 모습
 대구광역시청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애인인권단체 회원의 모습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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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금도 대구시청 앞에는 중증장애인들이 2개월째 1인 시위를 매일 매일 이어가고 있다. 요구는 간단하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공약했던 '중증장애인에 대한 24시간 활동지원' 약속을 지키라는 것. 조사도 끝냈다. 하루 종일 타인의 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 당장 60명에 달한다고 대구시는 파악했다. 하지만 3년째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며 지침 이야기만 할 뿐, 별다른 대책은 내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중증장애인들의 생명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만들어 낸 이 핑퐁게임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없는 '지방자치의 날', 이제는 묻고 싶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시민들의 표를 받고 선출된 공직자들과 임명된 관료들에게. 시민들은 당최 무엇을 축하하면 좋을지를.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전근배 시민기자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인권, #지방자치의 날, #활동보조인, #복지정책, #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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