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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동부의 테를지(Terelj) 국립공원. 기암괴석의 산 중턱에 자리잡은 불교 사원까지 올라갔다 오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차가 다니는 길가에서 점심식사를 할만한 식당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몽골은 관광지라고 해서 식당이 모여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고, 테를지의 여러 여행자 캠프의 식당 중에서 한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무너질 듯한 암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미라지 캠프(Mirage Camp)였다.

식당으로 사용되는 초대형 게르 안에는 중앙 기둥을 둘러싸듯이 식탁이 놓여있고 하늘로 뚫린 게르 천장을 통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식당 안에서는 테를지에 여행 온 몽골인들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몽골에서 먹은 고기 중 가장 맛이 좋았던 양고기를 주문하기로 했다. 우리는 함께 여행하는 몽골 친구의 추천으로 양고기 샐러드, 그리고 양고기 만두소로 만든 몽골 만두를 주문하였다.
미라지 캠프에서의 식사. 양고기 만두와 양고기 샐러드로 싱싱한 양고기를 맛보았다. ⓒ 노시경
주문을 한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40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이곳이 한국이었으면 빨리 음식을 달라고 재촉을 했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곳은 시간이 여유롭게 흘러가는 몽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 여행자들을 위해 조리된 양고기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무던한 맛이어서 큰 감흥은 없지만 양이 지천인 몽골의 특성상 고기 자체는 너무 싱싱했다.

초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몽골 하면 떠오르는 칭기즈칸(Chingiz Khan)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칭기즈칸의 거대한 기마상이 있는 천진벌덕(Tsonjin Boldog)에 가기로 했다. 다시 차장 밖으로는 몽골 중부의 초원이 달리기 시작했다.
수원 시민의 숲. 몽골의 사막화를 막으려는 한국인들의 노력이 여기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 노시경
천진벌덕 가는 길에 반가운 한글 표지판, '수원 시민의 숲'이 보였다. 우리나라 수원시민들이 사막화되어 가는 몽골의 초원에 와서 한 그루 한 그루씩 나무를 심은 곳이다. 드넓은 몽골 초원에 극히 일부분의 땅에 나무를 심은 것이지만 사막화를 방지하려는 노력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넓고 황량한 초원에 다시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꽃이 피고 풀밭이 가득하다면 참으로 풍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서 번쩍번쩍거리는 칭기즈칸의 기마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마상과 꽤 떨어져 있었지만 기마상이 워낙 커서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초원에 덩그러니 서 있는 은빛 기마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압권이다. 기마상 아래에 도착해서 봐도 기마상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마상이고 말의 형상을 한 조형물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 기마상의 높이만 40m인 데다가 기마상 아래의 칭기즈칸 기념관 높이까지 합치면 총 높이가 50m나 된다.
칭기즈칸 기마상. 몽골 초원 한복판에 칭기즈칸 기마상이 압도적인 크기로 서 있다. ⓒ 노시경
천진벌덕의 칭기즈칸 기마상은 울란바토르(Ulaanbaatar)에서 동쪽으로 약 54km 지점에 있어서 울란바토르에서는 가까운 편이지만 외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2006년 몽골제국 800주년 기념으로 건립을 시작하여 2010년에 완공된 최근의 건물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앞둔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가 지난 천 년 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밀레니엄 히어로'로 바로 칭기즈칸을 선정했는데, 이때 이후로 전세계적인 칭기즈칸 붐이 일어났고, 이 영예로운 수상이 칭기즈칸 기마상의 건립 배경이 되었다. 서양 사람들의 시각에서도 칭기즈칸을 인터넷 발명 수백 년 전에 이미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경영한 영웅으로 인정한 것이다.
칭기즈칸 복합단지 정문. 문 위의 기마상들은 지금이라도 전장으로 뛰어나가려는 듯 하다. ⓒ 노시경
칭기즈칸 기마상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승리의 개선문 같은 정문이 보인다. 정문의 전체적인 윤곽은 파리의 개선문 같이 생겼고 얼핏 보면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같이도 보인다. 브란덴부르크 문 같이 보인 이유는 문 위에 엄청나게 큰 기마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는 말 4마리가 마차를 끌고 있으나 이 정문 위에는 9마리나 되는 군마들이 곧 출정하려는 듯이 서 있다. 문 위의 말들은 브란덴부르크문의 청동마상 같이 아름다운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칭기즈칸 기마상은 정문 안쪽 광활한 초원의 낮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고 기마상까지 낮고 긴 계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칭기즈칸 기마상은 몽골의 신흥 재벌인 젠코(Genco)에서 410만 달러를 투자하여 만든 것이다. 한 기업이 이곳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그만큼 몽골에서의 칭기즈칸에 대한 경외감이 크고 이러한 몽골인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칭기즈칸 기마상 건립이 수익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앞으로 칭기즈칸 동상 주위에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총 6구역의 테마파크형 게르 캠프, 즉 복합관광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백 개의 게르가 들어서는 초대형 게르 캠프가 완성되고, 이곳에 총 1만 개의 기병 동상이 세워지면 기마상 주변에 일대 장관이 펼쳐질 것 같다. 나는 같이 여행 중인 몽골 친구에게 이곳에 기마상이 들어선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몽골인들의 칭기즈칸에 대한 자부심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친구, 왜 하필 허허벌판인 이곳 초원에 칭기즈칸 기마상을 세웠지? 칭기즈칸의 역사와 관련된 장소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전설에 의하면 칭기즈칸이 큰 전투를 마치고 이 초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지. 그런데 도중에 바로 이곳에서 황금채찍을 발견했다는 거지. 그래서 황금채찍 발견 기념으로 이곳에 칭기즈칸 기마상과 박물관을 함께 세운 거야."
칭기즈칸의 무장들.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칭기즈칸의 장수들도 몽골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노시경
칭기즈칸 기마상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서 사람 크기와 칭기즈칸 기마상을 비교해 보니 기마상은 더 커 보였다. 이 계단의 맨 위에는 칭기즈칸 기마상을 호위하는 무장들을 동상으로 만들어놨다. 몽골이 세계적인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유라시아의 수많은 정복전쟁에서 선봉에 섰던 무장들인 수부타이(Subutai), 제베(Jebe)와 같은 부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몽골의 세계제국 경영이라는 업적은 결코 칭기즈칸 혼자 힘으로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고, 당대 최고의 지략을 가진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몽골이 당시 크게 뻗어나간 것은 이 인재들을 출신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중용했기 때문이고, 이 무장들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주군 아래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이 부하무장들에 대한 몽골인들의 사랑도 깊고 그들 동상 앞에서 몽골인들은 즐겁게 사진을 남긴다.

칭기즈칸 기마상의 아래 기단 부분은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전시관이니만큼 전시관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전시관 1층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을 막아서는 것은 몽골의 기마용 장화인 고탈(gutal)인데 장화가 엄청나게 커서 건물 2층까지 닿을 듯이 솟아있다.
칭기즈칸의 가죽 장화. 세계에서 가장 큰 장화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 노시경
이 대형 몽골 장화의 길이는 6m, 높이가 9m. 세계에서 가장 큰 장화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을 정도이다. 칭기즈칸 동상 아래에 있는 장화이니 장화 크기가 칭기즈칸 동상의 실제 발 크기와 같게 만들어졌다. 이 가죽 장화에는 무려 소 120여 마리의 가죽이 사용되었고 장화 내부를 채우는 시멘트도 7톤이나 들어갔다. 이 장화 앞에서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사람 크기가 장화의 발목에도 차지 않았다.

"몽골 사람들은 유목생활은 검소한데 의복은 정말 화려해."
"그래, 화려하지. 몽골 전통의상은 화려하게 장식된 의복 위에 전통 모자 말가이(Malgai)를 쓴 후, 가죽장화인 이 고탈을 신음으로써 완성이 돼. 외부가 모두 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칭기즈칸의 장화는 몽골에서 소가죽 장화를 만드는 전통 제작방식 그대로 만들어졌어."
칭기즈칸의 채찍. 칭기즈칸이 이곳에서 발견했다는 황금채찍을 거대하게 재현하였다. ⓒ 노시경
대형 가죽장화 옆에는 또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황금채찍이 있다. 채찍의 길이가 자동차 한 대의 길이보다 더 커 보인다. 크기가 너무 커서 채찍이라기보다는 요술 방망이 같이 보인다. 저 채찍을 만약 휘두를 수 있다면 채찍 소리가 아마도 천하를 진동할 것 같다. 황금채찍 아래에는 무언가 있어서 보았더니 몽골에서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천, 하탁(khatak)이 깔려 있었다. 하탁이 깔려 있다는 것은 이 채찍에 최고 존경을 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황금으로 만든 채찍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몽골에서는 남자들이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세 가지가 있어. 그건 바로 채찍, 젓가락, 코담배야. 채찍은 가축을 타고 이동할 때 필요하고, 젓가락은 남의 집 방문 시 사용하고, 코담배는 새로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필요한 거지. 특히 말을 키우는 몽골에서는 남자들이 말을 조련하는 채찍을 줍는 것을 큰 복이라고 생각하지. 거기에다가 채찍도 그냥 채찍이 아니고 황금채찍이니 레벨이 더 올라가지. 게다가 이 황금채찍을 우리의 영웅 칭기즈칸이 발견한 곳이니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겠어?"

우리는 황금채찍 뒤쪽의 계단을 이용해 건물의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보았다. 기마상 기단 건물의 지하에는 몽골의 역사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었다. 시대 순서대로 구성된 전시실에는 청동기 시대 및 흉노시대 유물들이 소장된 1전시실과 몽골 제국 시대 유물이 있는 2전시실이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구석기 시대 뗀석기는 다듬은 형태가 우리나라 뗀석기와 똑같이 생겼고, 곡식을 거두어 들일 때 사용하는 신석기 시대 반달 돌칼도 생김새가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똑같다. 몽골의 선사시대 유물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똑같은 것이어서 강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칼, 방패, 활, 화살촉에는 몽골 제국의 강력한 힘이 남아 있고, 말 안장 같은 승마도구, 전통 악기, 가죽 카펫, 게르에서는 유목생활 특유의 개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놀라운 것은 이 많은 유물들이 이 박물관을 세운 기업인 개인이 수집한 유물들이라는 점이다. 개인의 보물이라서 그런지 전시실 내부에서는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한다.

사진을 촬영 못하게 하니 유물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유물 전문가는 아니지만 진품 사이에는 최근에 모조한 가짜 유물들도 있어 보인다. 때깔이 너무 밝은 유물들이 가끔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함께 간 몽골 친구에게 일부 유물은 가짜인 것 같다고 했더니 모두 진짜 유물이라고 강하게 부인을 한다. 몽골인들은 과거 역사에 대한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다.

전시관 위층에 세워져 있는 칭기즈칸 기마상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다. 우리는 기마상 위에 마련된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서 2층으로 올라간 후 말의 뒷발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의 말 꼬리 위쪽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와보니 그곳은 칭기즈칸 말의 뱃속이었다. 우리는 말 갈기 쪽에 있는 전망대를 가기 위해 뱃속의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올라갔다. 말 몸통 내부의 계단은 상당히 비좁았다.
전망대의 여행자들. 말갈기 부분에 자리한 전망대 위에서 여행자들이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다. ⓒ 노시경
드디어 우리는 칭기즈칸의 말을 타고 올라가 전망대의 정상에 도달했다. 말의 몸통 밖으로 나오니 파란 하늘이 가까이에 있었다. 그곳에는 몽골 초원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칭기즈칸의 상반신이 정면에 딱 버티고 서 있다. 눈 앞에 사람 몸통보다 훨씬 거대한 칭기즈칸의 얼굴이 보이는데 그 위세가 자못 당당한 모습이다. 박물관에서 1차원적인 칭기즈칸 그림만 보다가 선 굵은 3차원적 조각을 보니 엄한 기상이 느껴진다.
바로 앞에서 본 칭기즈칸. 그의 얼굴에서 강한 기상과 힘이 느껴진다. ⓒ 노시경
눈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칭기즈칸의 얼굴이 장관이다. 몽골의 대표적 랜드마크가 된 이 기마상은 햇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고 있다. 기마상을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기마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채찍은 유일하게 황금색으로 도금되어 더욱 빛나고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만 해도 250톤이나 투입되었다고 하니 세계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정복한 몽골 민족의 스케일답다. 나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다는 기마상의 몸통을 손으로 두들겨 보았다. 반짝거리는 말의 몸통에서 통통거리는 소리가 났다.

칭기즈칸이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곳은 초원의 동쪽이다. 칭기즈칸 상이 한동안 몽골을 지배했던 중국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하여 중국을 노려보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닌 것 같다. 기마상 위의 칭기즈칸은 중국이 있는 남쪽이 아니라 동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태어난, 이곳에서 800km 떨어진 동쪽의 고향 땅을 바라보고 있다.

칭기즈칸이 바라보는 동쪽 방향을 보다 보니 저 멀리 동쪽 언덕에 또 다른 인물상이 세워져 있다. 나는 말갈기 전망대 위에서 바람을 쐬던 몽골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저 언덕 위에 세워진 인물상은 누구지? 한 여인인 것 같은데?"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에륜(阿額倫)이야. 동쪽 언덕에 어머니가 세워져 있으니 칭기즈칸이 동쪽의 고향 방향을 보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야. 칭기즈칸 어머니 동상은 공사 도중에 공사비용이 부족해서 공사가 중단됐다가 최근에 완성됐어."
"칭기즈칸의 어머니를 이곳에 함께 모신 것은 몽골인들이 그만큼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인가?"
칭기즈칸의 어머니와 초원. 동쪽 초원에는 칭기즈칸을 성장시킨 어머니의 상이 세워져 있다. ⓒ 노시경
"그녀는 칭기즈칸의 아버지 예수가이(Yesügei)가 다른 부족으로 시집가는 여인을 약탈하여 아내로 삼은 여인이지. 아버지가 독살당한 후 부족 무리에서 쫓겨난 칭기즈칸, 어린 시절의 테무진(Temujin)을 보살펴 살아남게 한 사람이 바로 호에륜이었지. 그녀는 칭기즈칸에게 적군과 아내에 대한 포용의 정신을 가르친 여장부였지. 그 포용의 정신이 결국 몽골 제국 정신의 바탕을 이룬 거야."

말갈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푸른 초원은 차를 타고 달리며 본 초원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늘에 구름은 낮게 떠 있고 초원 주변 풍광도 일망무제로 탁 트여서 시원시원하게 보인다. 그 초원은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누볐던 초원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다시 태어난 칭기즈칸은 지금도 이 초원을 내려다보며 몽골을 지키고 서 있었다. 칭기즈칸의 기마상은 초원으로 다시 원정을 나가고 있었다. 그 뒤에서 마치 수십 만 명의 칭기즈칸 호위 병사들이 지금이라도 다가올 것 같다. 칭기즈칸의 황금채찍을 쥔 손이 들리면서 전진하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몽골 제국의 힘이 비현실적으로 초원 위에 흐르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칭기즈칸이 탄 말 위에 서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천진벌덕, #칭기즈칸, #기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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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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