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2016)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2016)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동호 이사장. ⓒ 이정민


2010년 명예롭게 퇴진했던 이의 귀환을 바라보는 영화인들의 심경엔 반가움과 우려가 공존했다. 김동호(79) 이사장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상영한 이후 1년 8개월에 이르는 시간 동안 부산시와 관계당국의 압력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예산 삭감, 감사원 감사 이후 검찰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고발 조치까지 이어진 일련의 상황으로 영화인들은 분노했고 영화제 보이콧을 외쳤다. 독립성과 자율성의 원칙이 깨졌다는 이유다. 그걸 나서서 수습한 이가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다. 이를 바라보는 영화인들의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개최 직전까지 9개 영화인 직능단체가 보이콧과 보이콧 철회로 반반씩 갈라졌다는 게 그 반증이다.

결국 제21회 부산영화제는 열렸다. 복귀 카드를 잡은 김동호 이사장은 개편된 조직위원회의 수장으로서 민간 체제를 열게 됐다. "어떻게 해서든 영화제는 열어야 했다"는 마음이 결심의 큰 이유였다. 동시에 함께 초기부터 영화제 산파역을 함께 한 이용관 위원장과는 다른 노선을 걷게 됐다.

영화계는 김동호를 얻었고, 이용관을 잃은 걸까. 호형호제하며 이십 수년을 함께한 이들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진 않을까. 지난 5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단독으로 만난 이후 어렵게 김동호 이사장을 영화제 기간에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전면에 서야 하는데 내가 나서는 게 부담스럽다"는 그를 겨우 설득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어지만 최대한 주요한 물음을 던지려 했다. (참고 기사 : "내 입장은 하나,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정관 개정" 이용관은 아직 싸우고 있다 )

설득의 과정들

- 명예 은퇴 후 복귀하실 때 강수연 위원장은 "다시는 이런 부담스러운 짐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초만 해도 조직위원장으로 복귀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모르는 일이라 했고, 이후 수락하셨다. 내면 갈등이 컸을 거라 짐작한다.
"지난 1년 반 가까이 영화제가 갈등을 겪고 있고, 파행으로 치닫고 있었다. 영화제를 만든 입장에서 안타깝기도 하면서 다시 영화제에 들어와 수습한다는 것 역시 주저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올 초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영화제에 출품할 작품 선정도 해야 하고 외국 영화인들에게도 알려야 하는 칸영화제가 임박하면서 더 이상 방치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에 영화인들 제안을 받아들이고, 수습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락한 것이지." 

-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선 정관개정의 약속을 부산시가 받지 않았고, 영화계에선 검찰이 무리하게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기소했다며 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했다. 결과적으로는 영화제 전 정관 개정이 이뤄졌는데 이사장으로서 어떻게 영화인을 설득했었나. 
"5월 24일 조직위원위장에 취임하자마자 바로 영화인 비대위 9개 단체장을 만나 정관 개정이 영화제 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 그 후 독립성, 자율성,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고, 5월 말부터 두 달 간 개정 작업에 주력했다. 정관 개정의 방향성을 9개 단체에 설명했고, 기자회견 때도 7월말까지 개정하겠다고 공식화했지만 그때만 해도 기자들은 물론이고 강수연 위원장조차도 믿지 않았다. 다들 불가능할 거라 예측했지만 난 확신이 있었기에 약속했고 그걸 지켰다. 개정 후 9개 단체장에게 개정 내용을 설명했다. 1차적으로 각 단체장들은 그 안을 수용했었다."

- 본래 일단 영화제를 치르고 내년 2월에 개정을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건 내가 한 말은 아니고 강수연 위원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이 5월 초 합의할 때 나온 얘기다. 날 후임 조직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영화제를 치른 다음 2017년에 정관을 개정하자는 게 시장과 위원장의 합의사안이었는데 막상 내가 취임하고 보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7월 말까지 개정하겠다고 한 거지."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 완벽히 보장될까

BIFF2016 기자회견, 역대 최장 시간 기록! 6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2016)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부산 일대에서 열릴 예정인 < BIFF2016 >은 초청작 69개국 301편과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23편이 5개 극장 34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개막작은 장률 감독의 영화 <춘몽>, 폐막작은 이라크 출신 후세인 하싼 감독의 <검은 바람>이다.

지난 9월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2016) 공식 기자회견은 역대 최장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만큼 기자들도 부산영화제 사태를 주요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다. ⓒ 이정민


- 정관 개정으로 영화제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 지켜졌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사회 구성에서 영화인과 부산지역인사가 5대5가 되면서 독립성 확보에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관 개정 내용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들이다. 종전 정관에선 (당연직인) 조직위원장이 임원회의를 구성하는 조직위원을 다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당연직도 물론 포함해서. 그래서 24명의 조직위원 중 두 분만 빼고 다 부산지역 사람들이었다. 바뀐 정관에 의하면 당연직은 없어졌고 이사장과 이사는 총회에서, 집행위원장도 총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 과거 집행위원장도 임명권을 시장이 갖고 있었는데 지금 정관은 이사장이 사실상 집행위원장과 이사들의 임명권을 갖고 있다. 물론 총회를 거쳐야 하지만 하나의 요건이지, 실제적으로는 이사와 집행위원장 선임권을 민간인 이사장이 갖고 있는 거다.

부산시에선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이 새 정관에는 아무 것도 없다. 흔히들 '왜 부산지역 인사가 절반을 차지하나'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임명은 이사장이 하는 거다. 또 이사진을 구성한다면 적어도 절반은 부산지역 인사가 들어와야 한다. 부산시 예산을 받고 있고, 협조를 많이 받아야 하거든. 균형 있게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게 부산시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9명의 부산지역 인사라 해도 부산시 영향력에서 벗어난 사람이 많다. 예컨대 부산교육감도 야당 성향이고, 부산영화제 후원회장도 시와는 관계가 없다."

- 부산시의 영향력 줄었다지만 정권 입맛에 따라 이사장이 바뀐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예전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때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고.
"준 게 아니라. 전혀 없는 거다. 부시장, 문화국장 등이 물론 조직위에 들어가 있지만 전혀 영향력을 끼칠 게 없다. 정권의 간섭도 전혀 없다. 정권이 이사장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총회에서 하는 건데 인데 아무 관계없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정부까지 다 부산영화제가 겪었지만 내가 집행위원장 할 때 어디에도 영향 받지 않았다."

<다이빙벨> 논란, 그리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이어진 질문은 부산영화제 사태의 핵심인 영화 <다이빙벨>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김동호 이사장은 "프로그래머가 택했다면 당연히 영화제에서 틀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지만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각론에선 다소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2014년 상영 직전에 김동호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봐야 할 영화"라고 말했고, 올해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한쪽에 치우친 편향적 다큐였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김동호 이사장과 부산영화제 초창기를 연 인물로 함께 산전수전을 겪었기에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김동호 이사장에 대해 이 전 위원장은 "부산영화제 사태는 정권 차원의 탄압인데 김동호 이사장께서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김 이사장도 살리고 영화계도 살려야 하기에 (김동호 이사장 선임을 조건으로 한 부산시와의) 합의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앞서 밝히기도 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15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보고를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부산영화제 결산 기자회견 당시 김동호 집행위원장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우측)의 모습. 당시를 끝으로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명예롭게 영화제 집행위원장 직을 내려놓는다. ⓒ 성하훈


-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다이빙벨>이 한쪽에 치우친 편향적 다큐였다. 하지만 어느 편에 서 있든 다큐로서 가치는 있다고 본다"고 말한 부분이 나온다. 정확히 하신 말씀이 궁금하다.
"정확하게 이야기 한 게 '<다이빙벨> 영화가 어느 한 쪽 입장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다. 그래서 편향적 영화일 순 있다. 그러나 다큐로서 가치는 인정해야 한다'였다. 좌편향, 우편향이든 좋은 영화든 나쁜 영화든 기본적으로 다 틀 수 있는 곳이 바로 영화제라는 얘기다. 아시다시피 <다이빙벨>은 그 제작자를 쭉 추적하며 인터뷰 한 내용 아닌가. 한 쪽 이야기를 담았기에 그래서 편향적일 수 있다는 거였다."

- <다이빙벨>을 만든 이상호 기자가 부천영화제에서 베를린영화제 초청 무산 건을 언급하며 사실상 김동호 이사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처럼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상호 기자는 내가 '좋은 영화든 나쁜 영화든 영화제에서 틀수 있다'고 한 얘기에 <다이빙벨>을 나쁜 영화 쪽에 붙여서 생각해 받아들인 건데 그건 아니다. 이상호 기자의 발언은 결국 베를린영화제가 부산영화제보다 못하다는 뉘앙스를 풍긴 건데 베를린영화제 입장에서 보면 수치스러운 이야기다. 부산에선 틀었는데 베를린에서 선정해놓고 누구 압력에 못 틀었다는 건 그 영화제가 우리보다 못하다는 뜻인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해선 검찰이 사실상 '혐의 없음'이라 해놓고 기소를 했다. 정치적 기소라는 말이 나오는데 동의하시는지.
"딱 그 표현에 동의하고 안 하는 것보다 우선 <다이빙벨>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안이고 그로 인해서 (영화제가) 감사원 감사를 받았고, 그 결과에 따라 부산시에 고발이 되었고, 검찰이 기소를 한 거다. 만약 <다이빙벨> 사건이 없었으면 감사원 감사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사안을 보면 된다. 그게 정치적 기소인지 아닌지는 보는 사람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핵심은 감사는 <다이빙벨> 사건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그 과정에서 행정적 잘못이 있었기에 기소가 된 거라고 봐야하겠지."

-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일관되게 언급하셨다. 동시에 '재판 결과에 따라서'라고 전제를 붙이셨는데 결과와 상관없이 이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지.
"상당히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안이다. 이미 검찰에 의해 기소됐고 재판에 계류 중인데 이걸 명예회복 시킨다 혹은 아니다 말하기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재판결과에 따라 명예회복이 될 조건이 갖춰질 수도 있고 안 갖춰질 수도 있기에 지켜본다는 것이다. 또 결과를 본인이 승복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내년, 후년까지 재판에 계류될 수 있기에 결과를 봐서 도와드려야 할지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 만약 재판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그러면 본인의사와 재판 결과를 보고 충분히 상의해서 어떤 방법으로 명예회복을 시켜야 할지 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 김동호, 강수연 두 분이 재판을 참관하는 게 상징적인 만큼 필요하다는 요구가 상당하다. 오는 10월 26일 선고 공판에 가실 계획인지.
"아시다시피 7월말부터 영화제 준비가 본격 시작됐기에 개최 전까지 강 위원장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갈 여건이 아니었다. 선거공판이 26일인데 공교롭게 25일부터 도쿄영화제가 개막한다. 공판 날짜가 정해지기 오래 전부터 우리가 초청받은 일정이다. 그래서 못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간 주도 영화제 첫해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배우 안성기

2011년 부산영화제에 참석한 김동호 당시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배우 안성기의 모습. ⓒ 민원기


올해가 곧 민간 주도 영화제의 첫해가 됐다. 정관 개정으로 당연직이던 부산시장의 조직위원장 체제가 이사장 체제로 개편됐기 때문이다. 지난한 갈등에 또 개막 직전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보는 등 악재가 겹쳤다. 그럼에도 김동호 이사장은 "외국 게스트 등이 초청작 수준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일부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 이사장은 "영화제 갈등과 태풍 영향으로 감독과 배우들 참여가 적었고, 관객 수는 아무래도 지난해보다 줄겠지만 관객들의 열기만큼은 여전히 뜨거웠다"고 평가했다.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수연 집행위원장에 대해서도 "리더십이 강하고 합리적이며 균형감이 있다"며 "강 위원장이 아니었으면 부산영화제 사태가 어떻게 흐를지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공보부 문화부 국장, 영화진흥공사 사장 등 정부 관료부터 영화제의 산파까지 분명 그는 숱한 질곡의 시간을 거쳐 왔다. 봉준호 감독 등이 "처음에는 낙하산 타고 어쭙잖은 관리가 떨어진 줄 알았는데 오로지 열정과 헌신으로 영화인들을 감동시켰다"고 말했듯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을 보였다.

"2회 때부터 정부예산을 받았는데 그 이후 지원 못한다고 했을 때도 위기였다. 당시 기획예산처를 만나 충분히 설득하려 했다. 다행히 10억 원 이상 예산을 받을 수 있었다. 초창기 당국의 검열문제도 컸다. 영화제에 상영하는 모든 영화가 심의를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공연윤리위원회와 협의해서 문제를 넘길 수 있었다. 세 번 이상 국제영화제를 진행한다면 심의를 면제하는 조항도 그때 생겨 이후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소됐다."

굳이 분류하자면 김동호 식 해법은 대화와 설득이다. 그리고 또 다른 위기의 중반에 와 있는 영화제에 그가 강수연 위원장과 함께 서 있다. "어떤 경우든 정부로부터 자치단체로부터 간섭은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자율적으로 영화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묘한 합치'. 올해 부산영화제 분위기를 두고 어느 감독이 한 말이다. 보이콧을 했던 참여를 했든 영화인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있진 않다. 이 모든 건 영화제의 산파들, 스태프들 나아가 자신들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사태 또한 슬기롭게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보태본다.

김동호 강수연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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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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