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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에 나락을 심은 시골지기는 이 한가을에 나락을 베느라 부산합니다. 제비는 일찌감치 바다를 가로질러 따스한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참새나 비둘기는 들판에 몰래 내려앉아 나락을 훑고 싶습니다. 뱀이나 개구리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이 날씨에 겨울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리라 느낍니다. 한밤에는 때때로 반딧불이가 나는데, 반딧불이를 비롯한 풀벌레도 곧 겨울이 다가오는 줄 느끼겠지요.

아침에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넙니다. 오늘은 읍내에 볼일이 있어서 곧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광에서 가방을 꺼냅니다.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세운 빨랫대 곁에 가방을 펼쳐서 햇볕을 쪼여 줍니다.

이렇게 하고서 물병이랑 이것저것 챙깁니다. 작은아이는 집에서 소꿉놀이를 하겠노라 말하고, 큰아이만 아버지를 따라 읍내마실을 하겠노라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제 가방을 들고 길을 나서려는데, 제 가방에 뭔가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햇볕에 가방을 말리는 사이, 흙사마귀가 찾아와서 알을 낳았습니다.
 햇볕에 가방을 말리는 사이, 흙사마귀가 찾아와서 알을 낳았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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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사마귀 한 마리가 제 가방 한쪽에 알을 낳았어요. 아니, 어느새? 어느 틈에 흙사마귀 한 마리는 제 가방으로 찾아들어 알을 낳았을까요? 몇 분 안 되는 그 짧은 겨를에.

우리 집에는 사마귀가 꽤 많습니다. 풀빛이 감도는 사마귀한테는 '풀사마귀'라는 이름을 붙이고, 흙빛이 짙은 사마귀한테는 '흙사마귀'라는 이름을 붙여요. 사마귀로서 잡아먹을 다른 벌레가 많으니 사마귀도 많으리라 느끼는데, 요즈막에는 마당 한쪽에 뒹구는 사마귀 주검을 곧잘 봅니다. 아마 알을 낳고 스스로 숨이 다한 사마귀이지 싶습니다.

가방에 생긴 알집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가방에 생긴 알집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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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흙사마귀하고 눈을 마주하며 지켜보았습니다.
 한참 흙사마귀하고 눈을 마주하며 지켜보았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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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짝짓기를 하려는 암수 사마귀를 보고, 암사마귀한테 머리를 잡아먹힌 수사마귀를 보기도 합니다. 나비를 잡아챈 사마귀를 보기도 하고, 이래저래 온갖 모습 사마귀를 늘 마주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제 가방에 찾아들어 알을 낳은 사마귀는 처음입니다.

이 흙사마귀는 제 가방이 아주 아늑하리라 여겼겠지요. 뜨끈뜨끈 볕도 잘 받았고, 가방 천이라 폭신하기도 하고, 구석진 자리도 있고, 여러모로 참 좋다고 여겼을 테지요.

아이들도 나와서 사마귀하고 눈을 마주합니다.
 아이들도 나와서 사마귀하고 눈을 마주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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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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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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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흙사마귀하고 눈을 마주하면서 마음속으로 말을 건넵니다. '얘야, 너는 이 자리가 가장 좋았나 보구나. 알았어. 네 알집이 다치지 않도록 잘 건사할게. 네 모든 기운을 쏟아서 지은 알집이고 네 숨결이 고스란히 깃든 알집인 줄 알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풀숲으로 고이 돌아가서 네 새로운 꿈길로 가렴.'

흙사마귀가 혼자 조용히 떠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줍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오니 흙사마귀는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사마귀 알집은 칼로 살살 떼어냅니다. 이 사마귀 알집이 가으내 겨우내 잘 있도록 돌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새가 쪼거나 개미한테 들통나지 않도록 잘 지켜 주리라 다짐합니다.

흙사마귀가 어디론가 떠난 뒤 알집을 살살 떼어냅니다.
 흙사마귀가 어디론가 떠난 뒤 알집을 살살 떼어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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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풀사마귀. 암컷입니다.
 우리 집 풀사마귀. 암컷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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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을 슥 둘러보면 쉽게 찾아보는 '우리 집 사마귀'입니다.
 풀밭을 슥 둘러보면 쉽게 찾아보는 '우리 집 사마귀'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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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시골노래, #시골살이, #고흥, #사마귀, #사마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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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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