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피아노를 배웠다. 누구는 부모님이 보내서 꾸역꾸역 다니지만 (물론 나도 시작은 그렇게 했다)? 나는 어떻게 하다 보니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덕분에 내 보잘것없는 인생에 능력치 하나가 추가되었다. 사실 많은 아이가 부모님의 의지로 예체능을 접한다. 가장 흔한 것이 피아노나 발레, 혹은 방송 댄스 같은 것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예체능에 뜻이 있느냐와 무관하게 많은 아이가 그런 경험들을 했다.

물론 '예체능에 뜻이 있느냐와 무관'한지는 배우는 아이들의 입장이고, 많은 경우에 이건 '투자'다. 그냥 어린 날의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으라며 시켜주는 경험일 수도 있지만, 그 기저에는,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 부모들은 이 아이가 수영에, 발레에, 혹은 피아노에 재능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좀 더 돈을 쓰면 어떤 결실을 볼 거라고 희미한 확신을 하고 여기에 뛰어든다.

당장에 결과물이 없어도 어쩔 수 없다. 박태환도 김연아도 순식간에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이 아니니까. 어쨌든 누군가가 피나는 노력을 통해 저기까지 올라갔으니 이번에는 우리 자식이.

'노오력'이라는 폭력의 반복

 영화에서는 폭력이 반복되고 대물림되는 양상을 보인다. 노력을 강요하는 구조적인 폭력에 물리적으로 가해하는 폭력이 수반된다.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수도.

영화에서는 폭력이 반복되고 대물림되는 양상을 보인다. 노력을 강요하는 구조적인 폭력에 물리적으로 가해하는 폭력이 수반된다.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수도. ⓒ CGV아트하우스


영화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두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 선정 작품이다. <은교>로 유명한 정지우 감독이 연출하고 제작한 영화다.

갑자기 무슨 인권이냐 하면, 스포츠 선수들이 많이 겪는 인권유린에 대한 내용인데 그중에 정지우 감독은 수영에 초점을 맞춘 것. 영화는 수영선수 '광수'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촉망받는 수영선수였던 광수는 감독과 주변의 기대에 부담감을 가지지만 결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연습을 게을리하는가 하면, 아는 어른들과 모여 도박을 하느라 시간 가는지 모르곤 한다. 방탕하게 지내다가 며칠 만에 얼굴을 보이자 감독은 광수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전에 없던 일탈에 감독은 분노하며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이에 참지 못한 광수는 시합출전을 포기하고 빠져나온다.

시간이 흘러 영화는 광수보다 어린 초등학생 수영선수 준호의 일상을 비춘다. 수영을 잘하지만, 대회를 나갔다 하면 4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준호의 현실과는 달리 준호의 엄마는 준호를 수영선수로 키우고 싶어 한다. 아빠와 준호는 '그냥 즐겁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입장이다. 아뿔싸. 이런 견해 차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속 준호의 엄마도 준호의 수영을 투자라고 생각한다. 수영선수로 키울 작정으로 닦달하는 정도가 장난이 아니다. "너 인생을 꾸리꾸리하게 살거야?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너는?" 초등학생에게 수영을 강요해놓고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인생의 계획이라는 거시적이고 어마어마한 논제를 아이에게 제시하는 꼴이란. 진짜 화가 많이 났다 이 대사 들으면서. 애초에 너는 수영선수가 될 거다! 하고 아이를 바라보니 나올 발언 아닌가.

계속 성적이 부진하니까 메달 따게 해줄 감독을 수소문 끝에 찾게 되는데 그게 바로 광수. 하지만 광수는 준호를 폭력으로만 대한다. 때려놓고 나중에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면서 '원래 메달 따려면 다 이런거야'라는 식으로 나온다. 나는 여기서 노오력을 강요하는 폭력이 반복되는 것을 보았던 것 같다. 폭력의 희생자가 또 다른 이를 폭력으로 대하는. 그러면서 이를 당연한 것이라며 정당화하는.

이후에 준호가 생각보다 많이 맞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아빠는 분노하지만, 엄마의 대사에서 나는 공포에 맞먹는 감정을 느꼈다.

"나는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영화를 보면서 나는 준호에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았고 그걸 위해 배운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대학을 위해 공부했으니까. 성적이 떨어질 때면 부모님으로부터 온갖 욕설과 폭력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면서 '너는 노력이 부족하다'라는 말은 늘 들었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만 들었던 게 아니다. 미디어는 이런 노력의 미덕을 자꾸만 나에게 들이밀었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따위의 텍스트들은 사회가 노력을 해도 성취할 수 있는 구조인지에 대한 성찰보다는 개인적인 성공담을 얘기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도서가 되었고 독자들을 채찍질하곤 했다. 그뿐만인가. 자기계발서는 어찌나 그렇게 많던지. 나의 경우는 <아웃라이어> 같은 자기계발 복음서(?)는 얼마 읽다가 도대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그만 읽었는데 사회적으로는 인기도서가 되는 현상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노력중독' 사회 그 이면의 문제들

 영화 마지막에 준호는 1등을 한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1등을 해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진정 해피엔딩인가? 성공을 위해 잠을 자지 못하고, 항시 폭력에 노출되었던 현실에 대해서는 금메달 하나로 정당화가 되는 것일까?

영화 마지막에 준호는 1등을 한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1등을 해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진정 해피엔딩인가? 성공을 위해 잠을 자지 못하고, 항시 폭력에 노출되었던 현실에 대해서는 금메달 하나로 정당화가 되는 것일까? ⓒ CGV아트하우스


위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인권을 다룬 영화다. 열한 번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스포츠 인권에 대해 다룬 영화가 없길래 한번 도전해 봤다는 정지우 감독의 말처럼 스포츠 스타가 길러지는 시스템 이면에 감춰진 만연한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사회적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고발성이 짙은 영화라고 보긴 힘들다. 그저 한 아이가 그 시스템에 들어가 어떻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지, 그 시스템에 복무하는 엄마 역시 그저 평범한 한 개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사실은, 이 영화가 스포츠계의 폭력과 유린당하는 인권을 다루는 것이 중요한 소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친다. 그냥 이것은 노오력을 강요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도 겪었고 너도 겪었고 미래의 아이들도 겪게 될.
영화와 관련하여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소위 말하는 '헬조선'은 노력해도 되지 않는 사회를 자조하며 만들어진 핫한 용어다. 이제는 노력이 아니라 '노오력'을 해야 한다는, 그렇게 해도 간신히 성공할까 말까 하다는 그런 절망적인 현실 말이다. 그런 냉정한 현실을 목도하며 사회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라는 식의 주장들이 많이 나온다. 나도 동의한다.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영화 속에서 준호를 닦달하는 엄마도 준호를 용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고.

하지만 이 지점에 대해 한 번만 더 생각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싶다.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꿈과 희망을 품곤 하지만, 모두가 다 용이 될 수는 없으며,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며,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개천에서 난 용을 향해 박수를 치고 환호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살 만하다고 자위하는 동시에 '희망 고문'을 사회적 차원의 정책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일을 계속해오지 않았던가?" - 강준만,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 <한겨레>(2015년 3월 8일) 중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강준만의 저 칼럼이 생각난 이유는 결국 엔딩에서 준호는 1등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감독의 입장에서도 '준호는 1등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수영을 하게 되었답니다'라는 결론을 내버리면 너무 기만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폭력이 수반되는 환경에서 준호는 열심히 수영을 연습했고 그 결과로 1등 하는 서사는 큰 무리 없는 전개일 테니까.

문제는 준호의 1등을 '결국 연습하면 다 이룰 수 있다'로 받아들이는 순간 발생한다. 결국, 준호는 1등을 했지만 그로 인해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 잠도 제때 자지 못했고 가족과 같이 있을 기회를 많이 잃었다. 그리고 폭력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다. 이렇게 준호가 지속해서 받아왔던 폭력과 상처에 대해 금메달은 정녕 합당한 보상인가?

결론적으로 인용한 글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안에 용이 되기 위하여 지급해야 하는 고통과 희생을 말하지 않는 기만성이다. 그런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지 않고 '노오력'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사회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4등>은 스포츠에서 흔히 일어나는 폭력과 인권유린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다. 하지만 스포츠가 아니어도 '노오력'을 강요하는 풍토는 이 사회 전반에 걸쳐 생겨나고 있는 일종의 병폐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4등>은 스포츠에서 흔히 일어나는 폭력과 인권유린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다. 하지만 스포츠가 아니어도 '노오력'을 강요하는 풍토는 이 사회 전반에 걸쳐 생겨나고 있는 일종의 병폐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 CGV아트하우스



#4등 #노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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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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